e스포츠 협회의 사유화 아연실색…그렇다고 그대로 방치해선 안된다

김 영만 전 한빛소프트 사장과 프로게임협회 설립을 위한 절차 협의를 위해 시청 앞 조선호텔로 급히 달려간 건 1999년 5월의 이른 아침 시간이었다. 전날 게임리그 ‘배틀탑’ 이강민 사장과의 저녁 일정이 길어져 늦게 귀가한 탓에 약속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호텔 로비엔 이미 김 회장과 몇몇 게임계의 인사들이 서 있었다. 회의는 협회 창립을 위해 상당기간 준비를 해 왔기 때문이어선지 순탄하게 진행됐다. 이날 참석한 이들은 두달 후, 한국 프로게임협회 발기인 총회를 개최하고, 초대 회장에 김 영만 사장을 선출했다.

e스포츠협회의 전신인 한국 프로게임협회가 세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한국 프로게임협회는 이후 21세기 프로게임협회라는 이름으로 명칭이 변경됐고, 시대의 흐름에 걸맞은 협회 명칭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2003년 12월 e스포츠협회란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달게 된다.

e스포츠협회는 이후 대한민국 e스포츠산업을 이끌며 자리매김해 왔다. 종목 선정과 대회 개최지 선정, 프로게이머 소양 교육 등을 전담하면서 명실공한 e스포츠의 산실로 불려왔다. 협회가 이처럼 빨리 궤도 진입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업과 스포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 영만 이란 걸출한 인물의 리더십이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스타크래프트’란 게임을 국내에 들여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흥행을 이끌었고, 이를 토대로 e스포츠란 새로운 문화의 양태를 만들어낸 이가 다름아닌 그였기 때문이다. 김 영만은 실제로 자신의 사업 목적 보다는 e스포츠의 세 확산과 중흥을 위해 사재를 털어가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최근 그와 만났을 때 김 영만은 e스포츠에 대한 만감이 교체하는 듯 했다. e스포츠가 생활 문화 속으로 스며들며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불식시켜 줬다는 점에 대해 그는 큰 보람을 느끼는 듯 했으나 급성장하는 중국 e스포츠산업을 얘기했을 때는 못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내 e스포츠 산업의 무한한 성장과 가능성에 대한 비전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 e스포츠는 열화같은 팬들의 게임 사랑과 마중물이 된 게임 원로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e스포츠란 명칭도 그렇다. 해외에서도 각종 게임대회를 열면서 e스포츠란 용어를 쓰지 않았다. 대한민국 e스포츠계가 이 용어를 쓰기 이전까지는 그랬다. 그저 랜 파티 정도로만 불렸고, 아니면 게임 대회 명칭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e스포츠란 용어는 1999년 전자신문에서 e스포츠 섹션을 구성한 때부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 이전엔 외국과 마찬가지로 게임 프로리그란 이름으로 대회가 열렸다. 해외 언론에서 간간히 e스포츠란 용어를 쓰긴 했지만 일회성에 그쳤다. 게임대회가 전문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되면서 e스포츠란 용어는 사실상 대중화 됐다. 그런 측면에서 e스포츠는 우리가 만든 국제적 용어라 할 수 있다.

e스포츠계의 산실인 e스포츠협회가 최근 비리의 온상으로 비춰지고 있다. 거침없이 달려가도 경쟁국에 못 미친다 할 판에 게임계 농단사건의 중심인물로 협회 관계자들이 지목되면서 협회 업무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이 부문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 밝혀지겠지만 어떻게 만든 단체인데 마치 특정인의 개인 후원 기관처럼 협회를 운영했느냐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e스포츠와 협회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많은 게임계 인사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성장해 왔다. 협회 발기인으로 참여한 이들 뿐 아니라 자문역을 맡아 밤낮으로 도움을 준 이들이 적지 않다. 박 지원, 김 한길 등 전 문화부 장관들은 e스포츠의 산파역을 맡은 사람들이다. 유진룡 전 장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몇몇 함량미달인 자들이 서로 작당해 산업에 먹칠을 해 버렸다. 논란을 빚고 있는 아무개 비서관이란 자는 지금은 고인이 된 백 화종 전 게임물등급위원장이 직원 월급을 해결하기 위해 집을 저당 잡혀 가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위원회의 주요 자리까지 탐해 측근을 그 자리에 앉혔고, 주요 직책에 있는 협회 고위 임원들은 그 비서관과 함께 부화뇌동했다.

협회를 그렇게 사유화한 때문인지 역대 회장단 기록엔 프로게임협회 임원들의 이름이 없다. 오로지 e스포츠 협회 회장 이름만 남아있다. 이 뿐인가 명예 회장은 버젓이 두면서 회장이 유고인 상황임에도 신임 집행부는 구성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직책만 올려 사무국장을 사무총장으로 그럴 싸 하게 포장해 놓았고, 그가 협회의 대표이사라는 알 수 없는 직책으로 대외 활동을 하게 했다.

이같은 행태를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검찰에서 밝힌 협회의 비리는 제쳐 두고라도 이같은 협회 조직과 운영 체계는 비정상의 정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협회가 불과 3~4년만에 사유화 되는 등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를 감독하고 행정 지도를 해야 하는 정부는 도대체 뭘 했단 말인가.

더 큰 문제는 협회의 몰골이 이 지경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하늘만 쳐다보며 손을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 등 e스포츠 경쟁국들은 치고 달려가는 데, 대한민국 e스포츠는 마치 늪에 빠진 것 처럼 허우적 대고 있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방관만 하면서 마치 강건너 불보 듯 하고만 있을 것인가. 가타부타하고, 누군가가 나서 급한 불은 꺼줘야 하지 않겠나. 안타까운 점은 이같은 위기의 상황에 당당히 나서 줄 게임계의 의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그 잘난 흥행의 마술사들, 산업계 전문가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갑자기 게임계의 원로, 산업 맏형의 필요함이 절실히 느껴지는 건 단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더게임스 모인 뉴스1 에디터/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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