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 문제와 처신에 아쉬움 커…게임계 또다시 구설수 올라

한국 e스포츠협회가 세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 단체가 존재감을 보이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99년 한국 프로게임협회를 모태로 시작했으니까, 대략 18년 정도의 성상을 쌓았다 볼 수 있다. 하지만 협회로서 제 모습을 갖춘 것은 2013년께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전 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협회장으로 부임하면서 부터다. 이후 e스포츠협회는 괄목상대했다. 협회 행정이 자리를 잡았고, 각종 대회는 순탄했다. 그런 측면에서 전 정무수석은 e스포츠 발전의 최대 공신이다. 일각에선 그에 대해 ‘겜 대통령’으로 치켜 세웠지만, 이는 품격에 맞지 않는 표현을 자주 쓰는 일부 게임인들의 구상 유치한 수식이 그대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전 정무수석이 거기에 취했을까. 그는 18년된 협회의 장 자리를 그 누구에게 넘겨주려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게임계 인사들은 그가 때를 놓치고 있다고 했지만, 그는 스스로 내려오려 하지 않았다. 권력의 달콤한 맛을 알게 되면 결단코 아래로 내려오기 싫다 하는데, 그가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

18년의 박정희 정권은 그와 그의 주변사람들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 참담한 변란이 없었다면 과연 유신 정권이 종말을 고했을까. 18년의 역사를 가진 e스포츠협회가 전 정무수석의 뜻하지 않는 집착과 그 주변 사람에 의해 결국 만신창이가 된 꼴이 됐다.

자신은 비서진의 농단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하지만 그가 과연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제와서 하는 얘기지만 솔직히 그는 일찍이 e스포츠와 결별했어야 옳았다. 그랬으면 그는 e스포츠계에서 영원히 살았다.

여 명숙 게임물 관리 위원장은 전임 위원장의 중도하차로, 때 아니게 위원회를 맡게 된 학계 출신의 인물이다. 소신이 너무 강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지만, 때묻지 않는 그의 언행은 그 순수함으로 업계에 자주 회자되며 주목을 끌었다. 그런 그가 중앙 무대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최 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때 부터다. 최 순실과 그 주변 인물들이 문화계에서 농단을 부리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자, 그는 자신이 아는 바를 과감없이 세상에 들춰내 버렸다.

이번 국감장 현장에서 게임계의 농단 세력이 있다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인물도 다름아닌 여 위원장이다. 이같은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매우 충격적인 것으로 들렸겠지만, 이미 이를 알고 있는 업계 사람들에겐 더 이상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일개 국회의원 비서관에 의해 게임계가 농락 당했다는 게 부끄럽지만, 그 비서관의 비위에 대해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이 문제가 언제 터져 세상을 시끄럽게 할 것인가는 단지 시기상의 문제였을 뿐이다. 여 위원장이 이번에도 그 흉한 게임계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줬다.

양측의 대립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한쪽은 권력을 배경으로 풀려 했고, 다른 한쪽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몸부림친 것이다. 여 위원장이 누구처럼 총을 겨누고 나선 것은 더 이상 살아 있는 권력에 해 볼 재간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정곡점의 이면에는 마치 게임계의 계륵과 같은 사행 게임이란 게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2006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바다 이야기 사태’는 게임의 사행성 보다는 서민들의 주머니를 울렸다는 죄가 더 컸다. ‘바다 이야기’란 게임은 흔히들 얘기하는 아케이드 게임이다. 이런 게임에 사행성이란 것이 가미된 것은 그 게임의 특질로 인한 게 아니라 앞뒤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 식으로 찍어낸 상품권 남발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들 상품권업자들의 상혼으로 인해 아케이드 게임업계가 난도질을 당한 사건이 ‘바다이야기 사태’의 핵심이자 본질이다.

여 위원장은 게임 운용에 주변인들이 개입하면 사단이 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게임계의 흐름을 보고 보호 본능이 발동한 것일까. 사행게임에 대해 누구보다 당위성을 인정하고,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그가 왜 서슬 퍼런 국감장에서 그 것도 청와대 고위층을 향한 폭탄 발언을 했을까.

혹시 여 위원장은 이같은 자신의 발언을 통해 사행 게임이란 것을 업계의 화두로 끄집어 내려는 의도는 없었을까. 자꾸 손바닥으로 하늘을 감춘 채 사행 얘기를 하니까, 농단 세력이 생기고, 뒷 배경을 지니고 있는 세력들이 더 기웃거리는 게 아닌가 하는 계산을 여위원장은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놓쳐선 안될 것은 자신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렸어야 했다는 것이다. 전 정무수석 역시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e스포츠 협회에 그처럼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건 아닐까. 또 여 위원장의 폭로가 심정적으로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은 사안의 중대성이 가벼웠다기 보다는 자신의 직위와 신분을 잃은 채 제3자적 입장에서 돌출적 발언을 한 때문은 아니었을까. 고위 공직자라면 좀더 진퇴문제와 처신에 고민을 했어야 옳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결코 놓쳐서는 안될 것은 이번 사태를 부른 핵심 현안이다. 그렇다. 성인 게임으로 불리는 사행게임을 더 이상 세상 테이블 밑으로 감추려 해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젠 이를 드러내 놓고 논의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 때가 됐다고 본다. 자꾸 감추고 쉬쉬하니까 농단 세력이 생기고 말썽을 빚는 게 아닌가. 필요하다면 이 문제를 놓고 끝장 토론이라도 벌여야 한다. 그나 저나 부끄러운 게임계의 역사의 장이 또다시 기록되게 됐다. 게임계는 이를 또 어찌 감당하고 극복할 것인가.

[더게임스 모인 뉴스1 에디터/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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