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것은 굴레가 아닌 새로운 자리매김의 출발…덩치만큼의 역할을 할 때

문재인 정부의 산업 정책에서 핵심적인 사업은 정보통신기술(ICT)이다. 정부는 이를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만들고 수종 묘목으로 키워보겠다는 것이다. 더 이상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이같은 움직임이 조금 더 일찍 입체적으로 진행돼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크다.

ICT 분야는 자본 집약적인 성격을 띄고 있지만, 그렇다고 대기업만으로 해 낼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집단들이 모여 그 무엇 하나를 집대성한다는 측면에서 벤처형이자 창조형 산업이라고 해야 옳다.

김 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최근의 발언도 이같은 ICT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다가 나온 실언이 아닌가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언급은 ICT 대기업들이 너무 ‘하루살이’에 의지하면서 중소기업간 상생과 협력을 외면하는 등 경직된 투자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지만 특정기업, 특정인의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논란을 빚었다.

때 아니게 도마 위에 오른 이 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이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그의 절친인 이 재웅 전 다음 대표가 김 위원장을 향해 오만한 발언이라며 이 의장의 속마음을 대신 전하기도 했다.

어찌됐든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뒤따랐다. 하지만 세간의 여론이 뭐라고 하든, 그의 발언의 행간을 살펴보면 아주 한참을 잘못 나갔다고도 할 수 없다.

최근 ICT 대기업들이 대거 준 대기업에 편입되고 있다. 이 가운데 넥슨이 게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준 대기업으로 지정됐다. 여기서 준 대기업이란 대기업은 아니지만 상법상 그에 준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기업을 뜻한다.

과거 개발 도상국 시대에는 대기업에 안기는 혜택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정부의 그런 수혜적 지원은 다 사라졌다. 반면 기업공시 의무 등 법률상 공개해야 될 기업의 의무는 적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공정거래법에 걸려 각종 규제 대상에 묶여 곤욕을 치를 수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일괄적이고 기계적인 법 적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특히 제조업과 ICT 산업은 태생적으로 다르고, 게임을 비롯한 콘텐츠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정부가 좀 더 고민을 해 줘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대해 법 적용 대상 범위를 세분해 따로 운용할 생각은 없다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법대로 하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렇다. 못마땅하지만 받아 들이자는 것이다. 그로인해 정부의 간섭이 심해지겠지만, 그렇다고 역할을 마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이로써  게임업계가 제도권으로부터 어른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마지못해 끌려 가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다.

솔직히 그동안 게임업계는 제 식솔 구제하는 데만 급급했다. 조금 큰 기업들은 나름 사회적 공적 기능을 맡아 수행하긴 했으나 그 수준은 미미했으며, 그나마 흉내를 낸 곳은 다름아닌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NHN 등 이른바 게임 메이저로 불리는 대기업들이었다. 그러나 너무 전시성 행사와 성과에만 매달리면서 정작 거두고 챙겨야 할 주변 게임계에 대해서는 인색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뒷짐만 져 왔다.

현재 처해 있는 게임계의 모양새가 민둥산의 모습, 그 형국이라면 그 책임은 다름아닌 게임 대기업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아니라고 한다 하더라도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할 것이다.

그들이 딴 짓을 하는 동안 게임계의 문화는 초토화됐다. 산업계의 컨센서스 기능은 사라졌으며, 업계의 목소리를 조율하며, 업계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매체는 사경을 헤매게 됐다. 게임 대기업들의 덩치가 커지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는 이름아래 게임 전문지는 외면한채  슬그머니 이른바 조중동만 쳐다보기 시작한 때문이다. 그들은 이에대해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그로 인한 게임 문화계의 피폐는 말이 아닌 셈이 됐다. 게임 전문지들은 고만고만한 수준으로 전락했고, 취재 환경은 형편없이 악화되고 말았다.

게임 대기업들은 이를 두고 영향력과 맨 파워를 키워야 한다며 자생론을 먼저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 솟은 기업이 아니다. 제도권과 게임 전문지의 덕도 봤다. 그런데 덩치가 커지자 어느 순간부터 잔비에 옷 젖는 것 보다 한방의 큰 기사만 눈에 꽂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험상, 메이저 신문은 업계지 혹은 전문지로부터 필요한 메시지와 정보를 얻는다는 것이다. 사회 여론도 마찬가지다. 업계 전문지가 진원지다. 그럼에도 조중동 등 메이저 신문에만 손을 뻗친다. 매체의 영향력이라는 것인데, 그건 게임 대기업들이 일방적으로 기대하는 허상일 뿐이다.

맨 파워에 대한 자질 논란도 게임 전문지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황당한 주장이다. 업계지 만큼 전문 인력을 두고 있는 곳은 흔치않다. 다만 제도권에서 쓰는 보편적인 언어로 접근하지 않고,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일반인 관점에서 보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를 두고 맨 파워 운운하는 것은 상대를 아주 무시하는 처사다. 역설적으로 자신들이 그같은 색안경을 끼고 보니까 그렇게 비춰지는게 아닐까. 결국 자신들에게 침을 뱉는 격이다. 더군다나 업계의 독자는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덩치가 커지는 순간, 일부 게임업체들이 이를 잊어 버린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교만해 진 것이다.

이런 풍토이다 보니 업계의 목소리가 제대로 모아질 리가 있겠는가. 늘 모래알 처럼 흩날린다는 지적은 비단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 게임업계의 현주소가 그렇다.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산업지도를 완성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산업계의 변방으로 자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도권에서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다면 지금까지 못해 온 것까지 포함해서 더 철저히 수행해야 한다. 과거처럼 혜택 받은 게 없다며 말싸움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그 것이 ICT의 육성을 위한 길이고, 게임계를 제도권에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지금 정부와 제도권은 게임계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 까닭은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해 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대적 위기 속에 게임업계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긴요해 지고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게임 대기업에는 새로운 시대적 소명이 맡겨진 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덩치 값을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부 관계자들이 끄떡하면 제도권으로부터 혜택 받은 게 없다는 말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더게임스 모인 뉴스1 에디터 /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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