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그래픽카드 품귀로 몸살

가격 뛰면서 소비자 부담만 가중 ... PC방. 게임용 조립 PC업체들에 '직격탄'

최근 '가상화폐'가 투자자들의 큰 관심을 끌면서 이 불똥이 게임시장에 역풍을 일으키고 있다.

가상화폐 채굴을 위해 그래픽카드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때아닌 품귀 현상으로 게임업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카드를 시장에서 구할 수 없게 되면서 게이밍 PC 판매업체와 PC방이 연쇄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는 곧 시장이 안정되면서 가격도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그때까지 피해는 고스란히 소상공인과 개인 구매자들이 떠 안을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가상화폐는 컴퓨터로 수학적 암호를 풀어 채굴할 수 있는 전자화폐로, 채굴량 자체가 제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발굴하고 거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에서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가장 인지도가 높으며 다른 가상 화폐 역시 주목을 받고 있다.

가상화폐 채굴의 핵심은 채굴을 위해 제공되는 퀘스트를 풀고, 이를 반복하는 행위인데 그래픽 카드의 GPU가 다중 작업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시장에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AMD의 '라데온' 그래픽카드와 엔비디아의 '지포스 GTX 1060' 시리즈의 경우 이 연산 작업 효율이 높다고 알려지면서 품귀현상까지 나타났다.

문제는 가상화폐의 가치가 최근 몇 달 사이 급등하면서 나타났다. 대표적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전년 대비 최대 3500%의 상승세를 보이면서 국내에서도 새로운 투자 아이템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 PC방 창업에 찬물

이전까지는 국내에서 직접 가상화폐를 채굴하는 사람도 적었고, 투자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적었던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최근 1년 사이 가상화폐의 가치가 급등하면서 ‘투자 대비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가상화폐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이미 채굴된 가상화폐를 주식처럼 구매해 차익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가상화폐를 확보하기 위해 채굴 사업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최소 4개~5개의 그래픽 카드가 사용되는 '채굴용 머신'을 대량으로 확보해  본격적인 채굴 작업에 뛰어들었고, 이 과정에서 시장에 유통되고 있던 모든 그래픽카드를 사재기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여기에 심지어 총판 물량 공급 경매에 직접 참여해 대량으로 제품을 확보하는 행태도 나타났다.

이런 과정으로 인해 조립PC 판매 업체에서는 그래픽카드가 없어 PC 조립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했고, PC방 역시 새로운 PC를 구매해 새롭게 창업하는 것이 불가능해 다른 PC방에서 처분한 중고 부품을 활용해 창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해외 공장에서 물량이 긴급 공수되기도 했으나 가격 자체가 너무 높게 책정돼 소비자들이 구매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평균가 30만 원대 후반이었던 그래픽카드가 50만 원 대까지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제품이 없어 PC조립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 자체가 처음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 가치 폭락하면 중고제품 넘칠 듯

여기에 새로운 문제는 가상화폐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발생했다.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던 가상화폐 가치가 하루를 멀다하고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면서 화폐로써 가지고 있어야 하는 안정성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이더리움의 경우 몇 초 만에 300달러에서 10센트로 폭락하는 ‘플래시 크래시’ 현상을 보였고, 비트코인 역시 20%에 가까운 가격 하락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가상화폐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상화폐에 대한 채산성 역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업자들은 기존에 큰돈을 들여 준비했던 채굴용 머신을 다시 판매해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한 행보에 나섰다. 이미 중고 시장에 채굴용도로 사용됐던 그래픽카드들이 최소 10개에서 200개 단위로 나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는 이런 채굴용으로 중고 그래픽카드가 시장에 여러 모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신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의 경우 중고 매물의 증가로 신품 판매가 더욱 줄어들어 매출이 계속 하락세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는 채굴업자들이 중고 그래픽카드를 거의 신품에 가까운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어 이런 현상은 적지만 가격이 떨어질  경우 제품 판매에 큰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 중고 제품을 구매하는 개인 소비자들 역시 피해를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가상화폐 채굴에 사용된 그래픽카드의 경우 제품의 내구도 및 안정성에 있어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만큼 사기에 가까운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가상화폐로 인한 하드웨어 문제는 PC방 업계에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프랜차이즈 PC방의 경우 유달리 그래픽카드에 대한 AS 요청이 급증해 확인해보니 몇몇 매장에서 PC방 운영이 아니라 가상화폐 채굴 목적으로 PC방을 창업해 그래픽카드 소모 사례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시장 움직임에 대해 전문가들은 가상화폐에 대한 이슈가 잠잠해지면 다시 그래픽카드의 가격이 안정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측했다. 가상화폐라는 단일 종목에 대한 과도한 수요 집중 현상으로 인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관심만 줄어든다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스스로 가격이 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 장기적으론 안정화

특히 그래픽카드의 경우 새로운 제품이 매번 출시될 때마다 가격 변동이 심한 제품이기 때문에 가격 하락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그래픽카드 제조사에서 가상화폐 전용 그래픽카드를 출시한다는 계획을 밝혔고, 매년 새로운 그래픽카드 라인업을 공개하기 때문에 가격 인하는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을 중심으로는 가상화폐 거품이 쉽게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심할 경우 연말이 돼서도 그래픽카드 가격이 크게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사업을 빠르게 정리하는 채굴업자도 상당수 존재하지만, 반대로 신생 가상화폐로 채굴 대상을 변경하는 업자들도 적지 않아 한동안 가상화폐 이슈가 계속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이 가상화폐 이슈를 이유로 그래픽카드의 가격을 인상하는 모습도  보이면서 가격 인하에는 상당기간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근 가상화폐 이슈 이후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이 채굴용으로 잘 사용되지 않는 그래픽카드까지 가격을 올리는 모습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가상화폐 채굴을 목적으로 그래픽카드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것까지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런 수요를 예측해 시장에 공급을 해야 하는 생산자들까지 가격 인상을 부채질을 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라며 “가상화폐의 경우 1~2년 만에 시장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미 2009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상화폐 채굴용 제품 등을 준비할 여유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더게임스 김용석 기자 kr1222@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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