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후보 지지선언은 낯설기만 … 스스로 산업계를 지키려는 노력 절실

지난해 10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유명 연예인들이 잇달아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메릴 스트립과 팝계 여왕 마돈나, 레이디 가가, 비욘세, 엘튼 존, 아델, 퍼럴 윌리엄스 등 유명 연예인들이 거의 망라돼 있었다. 공화당의 지지세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연예계의 풍토를 감안하더라도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는 연예인들은 많지 않았다. 우리들에게 익숙한 배우 존 보이트, 팀 앨런 등 만이 그의 지지를 표명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 연예인들은 지지 후보가 있으면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이를 당당히 표현하고 알린다는 점이다. 이렇게 해서 특정 집단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거나 수모를 당하는 일은 거의 없다. 미국의 한 방송 시트콤에 출연중인 팀 앨런은 선거를 앞두고 트럼트와 공화당을 지지한다고 해서 배역에 불이익을 당한 적이 있다고 밝혀 논란을 빚기도 했지만, 특정 정당,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해서 역차별을 당하거나,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일은 거의 없다.

미국과 달리 한국의 정치 풍토는 그렇지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바로 직전 정권에서도 대중문화계의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특검을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그 이전 정권에서도 있어 오지 않았을까 하는 개연성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단지 리스트업을 해서 관리했느냐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의 차이 정도만 있었지 않았을까 미뤄 짐작할 뿐이다.

정권 차원에서 보면 ‘미운 오리새끼’가 있기 마련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표현하듯 그 때 그 때 터져 나오는 미운 오리새끼의 말이 주먹보다 더 아플 수 있다. 또 아킬레스건을 건들거나, 정권의 약점을 들춰내며 험담을 하고 다니면, 어떤 식으로든 손을 보고 싶다는 유혹을 받게 된다. 하지만 거기까지 라는 것이다. 블랙리스트의 작성은 괘씸죄를 권력의 힘을 통해 손을 보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것은 한국적 정치 풍토가 지금 어느 수준에 있는지를 가늠케 하는, 시대의 잣대라 할 수 있다.

게임계 인사들이 최근 잇달아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 주목을 끌고 있다. 더군다나 게임계를 대표하는 단체장들이 모여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같은 일은 게임계에서는 지금까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히 파격적인 집단 행동이다.

이에 대해 게임계는 여러 반응을 보이고 있다. 먼저 어디서 저 같은 용기가 났을까 하는 점이다. 지난 18대 대선에서도 침묵을 지키는 등 여간해서는 정치 성향을 드러내지 않던 곳이 게임계였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대선의 향배를 쉽게 예측할 수 있게 일찌감치 우열이 가려졌기 때문이 아니냐는, 다소 지지 성명의 의미를 깎아 내리는 견해도 있다. 예컨대 대선 판도가 접전의 양상으로 전개됐다면 과연 저같은 지지성명을 내 놓았겠느냐는 것이다.

또 진정한 결단이었고 시류에 편승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치적 뒷감당이나 이에 맞설 게임업계 역량을 감안하고 취한 행동이냐는 데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견해가 우세하다

선진 정치를 구현하는 나라들처럼 개인이나 단체에서 특정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일이 그릇치는 일은 아니다. 개인별, 업종별 특정후보의 공개 지지 선언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적 정치 풍토를 고려한다면 이같은 정치적 행위는 보다 많은 고민을 하면서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했다는 지적은 나름,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 게임계는 대표적인 정치 집단으로 불리는 노동계와는 투쟁 역량 자체부터 다르다. 한마디로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흩날리는 모래알과 같고, 유관업종인 영화계, 음악계의 그 것보다 훨씬 못하다. 특히 리더십을 보여야 할 대기업들의 입장도 첨예하게 갈리는 상황이다. 이런 처지에서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건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 때문인지 뜻있는 게임계 인사들은 뭣 때문에 그 같은 일을 사전 여론 수렴 과정 없이 결행했는지 매우 의아해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게임계의 지난 10년은 암흑기라 할 정도의 피폐의 역사로 점철돼 왔다. 성장 속도를 견인해도 시원찮을 판에 급제동이 걸렸고, 제도권으로부터는 사실상 유폐돼 듯 외면을 받아 왔다. 피해 의식이 이루 말할 수 없다 할 것이다. 그래서 찾아 나선 곳이 이번에 게임계 인사들이 지지를 선언한 그 당과 그 후보가 아니었을까 미뤄 짐작해 본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더 필요했다 할 것이다. 그 것이 민주적 절차다. 더구나 상대는 정치권이다. 언제든 등을 돌려 적으로 내몰 수 있는 데가 바로 그곳이다. 여기엔 여야, 요즘 흔한 말로 하는 진보, 보수가 따로 없다.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 언제든 취하거나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혹시 게임계를 정치권으로 끌어들인 이가 게임계 출신의 그 정치인이라면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아니할 수 없다. 그렇게 믿고 싶지 않지만, 자신의 정치 역량을 과시하기 위해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둬 왔던 게임계를 끌어 들인 것이라면 큰 실수를 한 것이다. 그건 답이 아니다.

재미 소설가 김 은국의 대표작 ‘순교자’는 12명의 순교자들의 허상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예수를 버린 목사들이 순교자로 불리우고, 오히려 자신의 신앙을 지킨 신 목사는 배신자로 낙인찍혀 돌을 맞는, 역설적 구조를 통해 진정한 구도자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렇다. 우리 게임인들은 과연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게임계를 구도하고 서광을 비춰줄 이가 따로 있다고 믿는가. 어림없는 소리다. 게임인의 땅을 지키고 게임인의 미래를 가꿀 수 있는 이는 정치인도, 제도권의 유력 인사들도 아니다. 오로지 한 밭을 내다보고 일궈 온 우리 게임인들 뿐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았으면 한다.

[더게임스 모인 뉴스1 에디터 /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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