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변했지만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정치권 법 개정 추진 그나마 다행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된 것은 1972년 여름의 일이다. 3선 개헌을 통해 재 집권에 성공한 박 정희 정권은 체제 안정을 위해 대국민 유화 정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문화예술진흥법이다. 당초 이 법안은 뜻있는 인사들에 의해 줄기차게 제기돼 온 문화계의 핵심 사안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박 정권은 법안 제정을 앞두고 무슨 연유에선지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문화예술진흥법은 그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문학과 음악, 연예, 출판 등을 문화 예술 분야로서 정의하고, 이를 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게 하는 법률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정부는 이후, 법안 개정을 통해 영화와 연극, 무용, 국악, 사진, 건축 등 그간 문화 예술분야에서 제외된 대중문화의 장르들을 이 범주안에 추가시켜 제도적인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된 그 해 가을 박 정희 정권은 자신이 단행한 3선 개헌을 골자로 한 국민 헌법을 한순간에 덮어 버리고, 종신 대통령제에 가까운 유신 헌법을 선포했다. 유신 헌법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민주주의 토착화란 거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실은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고 영구적인 집권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따라서 체제에 대한 저항이나 비판은 사실상 금기시 됐다.

유신 헌법이 제정된 이후 문화 예술계는 말 그대로 암흑기에 빠져 들었다. 60년대 후반, 순수, 참여시로 갈라진 문단의 건설적인 논쟁은 수면 밑으로 가라 앉아 버렸고, 영화계는 반공 소재의 영화가 아니면 술집 작부의 이야기를 담은, 아주 그렇고 그런 류의 영화들만 양산 됐다. 이후, 한국 영화계는 아시아를 제패한 무서운 호랑이에서 생쥐 조차도 잡지 못하는 집 고양이로 전략해 버렸다. 문단엔 새로운 담론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고, 대중 문화계는 오로지 사랑 타령이 고작인 셈이 됐다. ‘문진법’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박 정권에 편향된 기관과 단체에 대해서만 지원이 이뤄졌고, 그렇지 못한 곳은 밑거름 조차 주지 않았다. 이때 ‘문진법’에 의해 조성된 정부의 문화 예술 진흥 기금이 가장 풍요로웠다면 이같은 역설적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문진법’은 문화 예술에 대한 사회적 정의를 내리는 지위를 갖고 있다는 특질을 지니고 있다. ‘문진법’에서 명시한 분야와 장르만이 예술이란 법적인 지위와 자격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제도권 진입 여부는 곧 ‘문진법’에서 지위를 획득하느냐 마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무려 30억 달러가 넘는 콘텐츠 수출을 하고 있는 게임계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몇 억불의 수출 탑은 받을 순 있지만, 대중문화 창달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 훈장은 받을 수 없다. 제도권의 어떠한 지위와 명예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각종 세제상의 혜택과 지원을 받을 수 없고, 각 지자체로부터 정책 지원을 얻는 일 또한 쉽지 않다. 이런 게 모두 게임이 ‘문진법’에서 명시한 대중문화 예술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문화 산업계에서는 ‘문진법’ 개정을 통해 게임이 문화 예술의 장르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 왔으나 제도권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게임은 ‘아이돌 문화’일 뿐이며, 문화의 생산적인 순기능보다는 역기능 측면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웃 일본은 우리보다 한참을 앞서 자국의 문화예술진흥 기본법에 게임을 문화의 한 장르로 정의하고 있으며, 미국은 지난 2011년 연방법원 판결을 통해 게임을 예술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게임계는 왜 지금까지 대중문화 예술로서 제도권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1차적인 책임은 게임계에 있다 할 것이다. 그동안 업계는 제도정비보다는 오직 게임 흥행에만 매달려 왔다. 그 모래알 같은 성향으로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해 왔고, 태생적인 문제점만 탓하며 대 사회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축소 지향적인, 낮은 자세를 견지해 왔다. 문제가 생기면 내 탓이란 자책이 컸다. 산업의 규모가 커지고, 경제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커지게 되면 그 만큼의 사회적 역할도 달라져야 했지만 그렇지가 못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제도권, 특히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할 것이다. 경제 분야 만큼은 미래의 먹거리를 창출하며, 그 길을 안내해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했지만 그렇지가 못했다. 기업에 대못 박기와 한탕주의에만 익숙했고, 유권자들의 일방적인 눈만 의식했다. 그 것이 문화,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나몰라 식이었던 것이다. 게임에 대해서도 그랬다. 그저 중독성과 폭력성, 사행성만 들먹였을 뿐이다.

그렇게 짓밟히고 뭉개진 대한민국 게임 산업의 현 주소는 어떠한가. 세계 유일의 온라인 게임 테스트 베드라는 지위는 날라 가고, 모바일 게임은 중국의 그 것보다 못한 수준이 됐다. 내수 시장은 쪼그라들고, 업체들은 기회다 싶으면 하나 둘씩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돈도 없고, 명예도 없는 그 버려진 땅에 더 이상 머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게임이 꼴도 보기 싫으면 시장도 없애고 산업도 걷어차 버릴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게임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던가. 게임은 이미 첨단 제품의 수요를 이끄는 리딩 산업이 됐고, 대중문화의 꽃으로 불릴 만큼 예술의 경지에 올라 있다. 던져 버리고 싶어도 그렇지가 못한 것이다.

제도권의 문화 환경이 바뀌었으면 수용 태도 또한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게임은 이미 우리들이 쓰는 대중 언어가 됐다. 산업적 측면에서는 킬러 콘텐츠이자 내일의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제도권에 편입, 이를 가꾸고 다듬는 노력을 기울어야 하지 않을까.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문진법’을 개정, 게임을 예술의 장르로 정의하고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건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게임을 더 이상 변방의 문화라고 얕잡아 보고 이를 깎아 내리려 해선 곤란하다 하겠다. 현실을 외면하고 침묵하는 건 책임을 방기하는 죄악이다. 게임에 대해 법률적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것은 시대적 소명이자 산업계의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다는 점을 정치권 전체가 함께 공감했으면 한다. 늘 그곳이 말썽이긴 하지만 말이다.

[더게임스 모인 뉴스1 에디터 /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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