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치적 공백 파고들어…함께 할 수 있는 '윈윈전략' 찾아야

한한령의 발단은 작년 말부터였다.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DD 배치가 결정된 이후부터 중국의 보복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문화산업 업체들이 계약에 따른 정당한 수익을 받지 못함은 물론이거니와 공연과 한국 연예인의 출연 금지까지 뒤따랐다. 수많은 계약이 해지되거나 보류되었고, 개발에 대한 투자계약도 물거품이 된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한류를 주도했던 연예 기획사의 시가 총액은 순식간에 떨어졌고, 앞으로 거둬들일 수익까지 합치면 그 피해액이 수십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분위기는 출판, 방송, 연예, 애니메이션, 음악뿐만 아니라 문화산업 전 분야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직은 타 분야보다 타격이 덜하다는 게임 산업 분야도 중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혔을 뿐 아니라, 수출이 되더라도 협상력이 떨어져 좋은 콘텐츠를 보유한 한국의 게임개발사마저 ‘을’의 위치로 전락해 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배경 탓에 중국의 대형 퍼블리셔뿐 아니라 중견기업들도 한국 게임을 헐값에 사 가려고 해도 한국의 게임 개발사들은 뾰족한 선택지가 없다.

그나마 중국에 수출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할 형편이다. 문제는 우리가 중국 시장이 막혔으면 다른 나라로 수출하면 되는데, 현재까지 수출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그만한 대체 시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게임 대기업들은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 게임을 수입하여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한국 시장에서의 생존도 어려운 중소 게임개발사들은 진퇴양난의 위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에도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중장기 대책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최근 들어서 사태가 심각해지니, 한한령으로 인한 피해 규모를 조사하고, 제작지원 예산을 조기 집행한다는 대책을 내놓은 것뿐이다.

중국은 한국의 국가적 리더십 공백으로 대외 교섭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사드 보복을 핑계로 한한령을 이용하여 자국 내 문화산업을 육성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런 사태를 만들게 된 배경에는 근시안적이고 수동적인 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이 가장 큰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외교와 경제, 대외 수출과 문화산업 등 연관된 산업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갖고 정책을 결정했어야 했는데, 그저 미국의 눈치만 보며 국내 정치의 환기구로 사드 배치를 결정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그렇다고 땅을 치며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가 어렵사리 발전시켜온 문화산업과 온라인 산업을 정부 탓만 하며 이렇게 쉽게 망가져 버리게 할 수는 없다. 민간 차원에서라도 다양한 대책과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 문화연대에서 문화정책의 대안 모색을 위한 연속 토론회가 개최되어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와 문화산업 지원정책 등에 대한 토론이 있었고, 국회에서 게임산업에 대한 세미나도 열렸다. 하지만 이는 모두 과거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조만간 국회에서 차기 문화산업 정책에 대한 세미나도 개최된다고 하니 작은 기대를 해본다.

이제 대선 일정도 확정되었다. 과거의 비판에만 에너지를 집중할 때가 아니다. 차기 정부가 문화산업 정책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진흥정책으로 전환되도록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가 제안되고 충분히 검토되고 채택 되어야 한다. 차기 정권을 잡을 대선 후보들에게 더욱 명쾌한 문화산업 정책을 제안하고, 곧바로 채택할 수 있도록 더 구체적인 정책 방향과 실천 계획이 요구된다.

중국에서 본 관점으로 조언하자면, 어렵게 키워온 한국의 온라인 게임 산업의 뿌리까지 흔들리지 않게 하려면, 중국을 이기려는 전략보다는 공존하면서 모두 ‘윈-윈(win-win)’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민간 차원부터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윤형섭 중국 길림애니메이션대학교 게임대학장 quesera2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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