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스스로 이름 외면 안타까운 현실…참다운 게임인이 절실히 필요

게임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정의를 쉽게 내릴 순 없다. 하지만 게임에 대해 놀이가 아니냐고 하면 쉽게 이해한다.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호이징아(Johan Huizinga)는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Homo Ludens)를 통해 인간의 특성을 유희적(놀이)적 동물이라고 정의했다. 인간은 놀이를 즐기는 영장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놀이를 문화의 한 요소로 이해하지 않고 놀이가 인류의 문화를 꽃피우게 했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의 제자로 불리는 로제 카이와 (Roger Caillois)는 ‘놀이와 인간’이란 저서를 통해 놀이를 보다 세분해 제시함으로써 스승의 이론을 뒷받침했다. 그는 경쟁놀이와 우연놀이에다 모방 놀이, 현기증 놀이를 추가해 놀이의 문화를 정의해 놓았다.

그에 이론에 따르면 경쟁 놀이는 이기려는 의지와 규칙이 있는 것인데, 예컨대 스포츠 경기가 이에 속한다. 하지만 규칙은 있으나 의지가 반영되지 않는 놀이가 있다. 동전 던지기 또는 룰렛 게임이 그렇다. 또 의지는 있지만 규칙이 느슨한 놀이가 있다. 소꿉 장난이나 칼 싸움 등이 대표적인 놀이라 할 수 있다. 그네나 회전목마 등은 아예 의지나 규칙이 없다. 오로지 머리에 힘만 쏟는 것이다. 이 것이 현기증 놀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게임이란 것은 바로 이러한 놀이의 특징들을 잘 녹여 만든 것이다. 게임이 감히 문화의 줄기라고 언급하는 것도 이 때문이며, 문화의 중요한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척도로 꼽히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같은 게임들이 세상천지의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누구보다 게임이란 단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다름 아닌 게임인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협회 이름에서 조차 게임이란 단어를 슬그머니 던져 버렸다. 표면적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우리만 게임이란 단어를 가져다 쓸 뿐, 외국 게임 관련 단체에서는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006년 터져 나온 ‘바다이야기’ 사태는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충격을 안겨줬다. 급기야 국무총리까지 나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게임을 잘 알지 못하는 대다수 국민들은 모든 게임을 ‘바다이야기’로만 알고 게임계를 비난하며 깎아 내렸다. 게임계는 그러나 온라인게임과 ‘바다이야기’란 게임의 태생적 환경과 차이점에 대해 한마디 변명도 못했다. 숨는 데만 급급했던 것이다. 그 이후 게임은 세상사람들로부터 부끄러운 단어가 됐다. 감춰 버리고 싶은 흉한 상처가 됐다. 그렇지만 과연 그렇던 가.

김 범수 초대 회장이 게임산업협회를 출범시키면서 고민한 것 중 하나는 협회 이름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실제로 미국, 일본, 유럽 협단체에서는 게임이란 용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게임이란 단어를 고집하며 그렇게 이름을 쓰기로 했다. 그는 게임이란 단어에 놀이의 상징성을 두기로 한 것이다. 남 경필 전 회장에 의해 기기묘묘하게 바뀐 협회 이름을 두고 김 전 회장을 만나 이에대한 입장을 물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필자에게 쓴웃음만 지어보였을 뿐이다. 그게 답이었다.

온라인 게임이란 용어가 점차 신문지상에서 사라지고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그 자리에는 대신 PC 게임이란 용어가 들어 앉아 있다. 플랫폼 구분에서 PC 게임은 온라인게임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되는, 그리고 이미 주류에서 밀려난 올드보이 게임의 장르를 일컫는 용어다. 지금도 일부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즐기는 장르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장르에다 온라인게임을 얹혀 부르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은 우리 게임인들이 만들어낸 놀이 상품이다. 일등 콘텐츠에다 세계 일류화 제품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게임 산업을 있게 한 장르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저버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장르라 할 수 있다. 외국인들도 한국이 온라인 게임의 본산이 된 점을 부러워한다. 어떻게 온라인 게임으로 비즈니스를 완성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이 장르의 게임을 통해 부분 유료화와 정액제란 여러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냈다. 자랑스런 장르로 여기고, 닦고 기름을 쳐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런 온라인 게임이란 용어를 외국에서는 PC게임 장르로 뭉퉁거린다 하니까 우리 스스로 무대 뒤편으로 끌어 내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대한민국 게임인 대상' 시상식이 있었다. 게임에 주는 상이 있긴 하지만 게임인을 상대로 시상하는 상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 상의 제정 취지는 진짜 게임계를 위한 게임인을 발굴해 그들의 마음을 보듬으며 위무해 보자는 것이었다. 한편으론 이를 통해 우리 게임인들의 사기를 북돋는다는 점도 고려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게임을 사랑하고 게임계를 지켜 나가고자 하는 이들을 통해 대한민국 게임 산업의 역사성과 게임의 문화 전통을 이어가고자 했다는 점을 굳이 감추고 싶지 않다.

이런 이들로 게임계가 무장한다면 게임이란 단어를 쉽게 저버리거나, 역사성이 있는 사건들을 시대의 흐름이 바뀌었다고 해서 마구 버리거나, 땅에 묻어 두지는 못할 것이란 생각에서다.

온라인 게임을 PC게임 기반으로 ‘퉁쳐’ 부르려 하는 것은 선진국 게임업체들이 한국 게임인들의 장인 정신을 시기하고 이를 깎아 내리려는 숨은 의도가 깔려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고민해 볼 순 없었을까. 그런 속셈도 모른 채 그게 정답인 것처럼 우리가 따라 하기에 급급했다면 정말 한심한 일이다.

또 외국의 사례를 들면서 협회 이름에서 게임을 솎아 낸 데에 대해서도 우리 스스로 게임은 아주 천박한 것이라며, 이같은 허물을 감추고픈 심정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솔직히 이렇듯 반문을 거듭하게 되는 것은 게임계가 그간 보여준 행실이란 게 너무나 경박하기 때문이다. 상은 마다하면서 오로지 대박만 좆는 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 볼 것인가. 업계에 참다운 게임인들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들이 머리에서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같은 일들이 앞으로도 또다시 벌어질 개연성이 적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지금 게임계는 학연과 지연에 의한 파당 세력과 어느 순간, 족벌이 돼 버린 또 다른 세력들이 지배하다시피하고 있다. 이들의 특성을 보면 게임의 뒷 편에 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박이 나면 회사 대표 자리는 내 주고 자신은 이사회 의장이란 직책으로 숨어 버리고, 당당히 세상을 향해 외쳐야 할 때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보니 이들에겐 문화는 없고 오로지 흥행만 있을 뿐이다. 업계의 주인 의식이 있을 수가 없다.

게임이 무슨 죄인가. 당신들 때문에 게임계가 제도권으로부터 얕잡히고 산으로 가고 있음에도 말이다.

[더게임스 모인 뉴스1 에디터 /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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