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관심 못받는 현실 반영…게임진흥원 독립시킬 절호의 기회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연루된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파란이 일고 있다. 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단체나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전통예술에서부터 기타 문화일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문화산업을 육성해야할 전현직 문체부 고위관계자들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가담했다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블랙리스트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게임'관련 단체나 ‘게임인’은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게임계가 문화계블랙리스트의 된서리를 피했다는 안도감도 있지만, 필자를 위시한 게임인들은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게임인들은 최근 몇 년간 ‘게임은 문화’라는 주제로 수백 명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개최해왔으며, 그 때마다 ‘게임’도 당당한 ‘문화’산업의 반열에 올랐다는 자긍심을 피력해왔다. 뿐만 아니라, 게임이 문화를 넘어 ‘예술’적 지위향상을 위해, 국회토론회장에서까지 ‘게임은 예술인가?’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정작, 위정자들과 문체부 관계자들의 눈에는 게임인들은 문화계의 범주에 속하지 않은 주목받지 못하는 이방인이었으니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게임의 주무부처인 문체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 작년 초에 발간한 ‘2015 콘텐츠산업통계’에 따르면, 게임이 ‘문화계’ 전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문화콘텐츠산업 전 분야의 수출액 현황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56%에 이르며 약 30억달러(3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렇게 게임이 차지하는 문화계에서의 비중이 상당하거늘, 대한민국 정부나 문체부 공무원들에게 게임은 이도저도 아닌 그저 계륵으로 전락할 때, 중국이 게임을 집중 관리하기 시작한 2009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09년부터 우리나라의 정부산하 유사기관의 통합 정책이, 한국게임의 위상 추락에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2009년 5월, 한국정부는 문체부 산하의 ‘한국게임산업진흥원’ ‘한국 문화콘텐츠진흥원’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문화콘텐츠센터’와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의 일부를 통합하여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를 출범시키며, ‘게임’을 여타 문화콘텐츠들과 뒤섞어 존재감을 희석시켜왔다.

같은 해 10월, 중국정부는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산업 집중육성 쪽으로 급선회한다. 중국은 신문출판총서의 업무(게임,애니메이션, 출공판물 등 콘텐츠 전반의 업무)로부터 온라인게임과 애니메이션을 떼내어 문화부에서 전담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중국 게임시장규모는 수 년 만에 2배 이상 급증하며 2013년 이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게임강국으로 도약한다. 2009년을 기점으로 한국과 중국의 게임산업의 위상은 크게 바뀌게 된 셈이다.

이렇듯 중국이 거세게 치고 올라오는 동안, 한국에서의 게임은 체계적 지원은 커녕 여타의 문화콘텐츠 산업의 들러리로 전락한 양상이다. 그럼에도, 문화계블랙리스트에서 여실히 드러났듯 정부와 문체부는 ‘게임=문화’로 인정해 주지도 않으면서 왜 게임을 붙들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

현행의 문체부와 kocca의 게임에 대한 직무유기 상태에서라면, ‘게임’은 여가부, 복지부, 정치권 등에서 언제든 공격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이며,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나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는 물론이고 여타 부처에서 틈만 나면 게임에 눈독들일 것은 자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IT융합산업의 결정체로서 모바일게임이 급부상하며 미래부가 주무부처로 제격이라는 주장도 설득력 있거니와, 게임을 미래 먹거리 전략 산업으로 확실하게 성장시키기 위해 산자부의 비즈니스마인드와 수출인프라가 훨씬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처럼 문체부와 kocca에서 게임이 어정쩡한 ‘들러리’로 취급받으며 문화도 아니고 무엇도 아닐 바에야 국가개조의 절호의 기회인 지금 ‘게임의 판’도 완전 개조할 절체절명의 찬스다.

이에 정부와 문체부에게 기댈 것이 아니라 우리 ‘게임인’ 스스로 게임의 판을 바꿀 방안을 제안한다. 우선 정부산하 게임관련 기관(센터)장들의 철저한 인사검증에 우리 게임인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인검증시스템’을 구축하자.

이렇게 게임인들이 검증한 납득할 만한 인사들과 게임인들이 함께 숙의하여 ‘게임발전전담기구(가칭)’를 새롭게 발족시켜야 한다. 문체부가 주무부처인 현재 상황에서 최선책은 kocca에서 ‘게임’을 완전히 독립시켜 게임전담기구를 신설해야만 ‘게임강국코리아’의 부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부득불 kocca에서 분리될 수 없다면, 최소한 ‘게임기여도’에 걸맞은 인력지원과 자금지원을 보장받는 지위격상을 보상받아야 한다. 지금처럼 문체부나 kocca에서 ‘문화’도 아니고 ‘예술’은 더더욱 아닌 ‘이단아’로 푸대접을 받을 거라면 게임은 뛰쳐나와야 독립해야한다.

끝으로, 우리 게임인의 손으로 검증한 인사들과 함께 전담 기구를 발족시킨 후, 제대로 된 ‘게임마스터플랜’을 정립해야 한다. 미래의 후배 게임인들을 위한 ‘미래먹거리’로서의 게임도 고민하고, 게임인들이 자유롭게 연구도하고 네트워킹하면서 즐기는 창작의 장을 마련할 수도 있다.

국내외의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게임작품들을 아카이빙하는 것도 바람직하고, 날마다 신바람나는 게임스타트업 용광로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게임이 문화인가’라는 질문을 할 필요도 없는 ‘게임=문화’가 되고 ‘게임=예술’이 될 그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 날을 앞당기는 것은 게임인들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김정태 동양대 교수 thats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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