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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가이드라인 없어 '갈팡질팡'…당장 11월 '지스타'에 영향 줄 듯
지난 달 28일부터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김영란법)’이 게임업계에도 직격탄을 날림에 따라 기업과 단체들의 대외행사에도 비상이 걸렸다.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지스타’의 경우 최근 열린 설명회에서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못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그리고 ‘누가 처벌 첫 케이스가 될 것인가’하는 두려움 때문에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모습이 곳곳에서 관측되고 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 언론인 등이 1회 100만 원, 연간 합계 300만 원 이상의 금품을 받을 경우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금품 상한선은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으로 정해져 있다.
이 법의 적용 대상자는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 언론계 종사자, 사립 유치원·초·중·고·대학 임직원 등 전국 4만여 기관 240만 명이고 배우자까지 포함하면 40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에 접대를 한 민간인까지 쌍방 처벌이 되는 구조이며, 현금이나 상품권은 물론 할인권, 초대권, 관람권, 교통·숙박 등 편의 제공도 금품에 해당돼 사회 만연에 퍼져있는 대외활동 문화 자체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 첫 본보기 안 되려고 조심조심
김영란법 시행과 관련해 게임업체는 전체적으로 몸을 사리고 있는 분위기다. 법 시행 초기에 첫 케이스로 적발돼는 불상사를 피하고 모델 케이스가 생기면 이를 참고해 대책을 세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법이 시행된 지난 달 28일부터 게임계 관련 행사는 연기되거나 시기를 다시 조율하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게임 출시 예정일 때문에 행사를 미루지 못하는 경우 법무팀 및 변호사들의 의견을 듣고 이를 조율해 행사를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게임업체들은 이 법의 시행에 따라 행사에 참가하기를 꺼리는 기자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김영란법에 의거해 행사를 준비했다’라는 내용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가장 큰 당면 문제는 내달 부산에서 개최되는 ‘지스타 2016’이다. 이 행사 역시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행사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명확한 기준 등에 대한 입장이 나오지 못하면서 이 행사에 참가할 업체들과 매체 모두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스타조직위원회의 경우 취재지원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잡지 못해 행사 준비에 차질이 생긴 상황이며, 부산시 역시 전시 규모 및 구성만 대략적으로 잡았을 뿐 행사 세부 내용을 아직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참가업체들 역시 부스에서 실시할 부대행사의 내용과 구성에 대한 고민으로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게임 라인업과 부스 구성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외국 게임업체의 경우도 김영란법의 첫 본보기가 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미국에서 대형 행사를 준비중인 라이엇게임즈와 블리자드의 경우 행사 서포트를 사실상 크게 축소함에 따라 작년과 같이 많은 매체들이 행사관련 기사를 출고하기는 힘들지 않겠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업계는 김영란법이 도서정가제나 단통법과 비슷한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법 시행 이후 사실상 모든 활동이 위축되면서 법 시행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될 것이란 주장이다.
실제로 많은 업체들이 김영란법 시행 날짜인 지난 달 28일 전까지 거의 모든 행사를 집중적으로 소화하면서 지스타가 개최되는 11월 전까지는 이렇다 할 큰 행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코에 걸면 코걸이?
김영란법의 취지는 매우 혁신적이고 시의적절한 것이지만 현장에서의 반응은 당황스럽다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청탁 금지를 목표로 재정된 법안이 사실상 행사 및 홍보활동까지 위축시켜 마케팅 업무에 큰 지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법이 주목을 받은 이후 가장 큰 이슈가 됐던 식비 3만 원 제한 역시 행사 준비에서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홍보팀과의 미팅 또는 소규모 행사의 경우 문제가 없지만 큰 규모의 행사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대형 홀이나 호텔 등을 빌려야하는데 법을 어길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대부분 대형 홀이나 호텔의 경우 행사 대관에 식비가 포함이 돼 있는 구조인데, 이 비용이 식비 제한 금액인 3만 원은 물론이거니와 선물 상한액인 5만 원을 넘어서는 경우도 비일비재해 대관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도시락 등으로 대체하거나 식사 자체를 제공하지 않으면 문제는 없으나 대관 등에 있어 호텔 측의 반발도 적지 않아 행사 장소를 마련하는 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법 조항에 따르면 행사 지원뿐만 아니라 게임 타이틀 및 게임 하드웨어 리뷰를 위한 제품 지원 역시 부정청탁에 해당될 여지가 있어 제약을 받게 될 전망이다. 콘솔게임 타이틀의 경우 대부분 5만 원 대 후반부터 가격이 시작이 되기 때문에 리뷰용 코드 제공 자체가 김영란법에 위반이 된다는 것이다.
단순 대여의 경우에도 제품 가격과 대여 기간 등을 고려해 하루 대여료를 산정, 대여비를 주고받아야 한다는 법 해석이 나오면서 게이밍 노트북과 하드웨어 등 하드웨어 업체에게도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특히 몇몇 하드웨어 업체의 경우 정가가 500만 원이 넘는 게이밍 노트북 등을 출시한 상황에서 누가 이 제품을 리뷰하고자 하겠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김영란법’의 영향으로 지방 및 해외 출장 업무 건수도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업체 역시 1인 미디어나 SNS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인 법적 분쟁이 더해질 경우 사실상 홍보 창구 자체를 줄여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시간 지나면 자리 잡아 갈 듯
전문가들은 김영란법의 시행과 관련해 초기에 많은 잡음이 발생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큰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이란 의견을 내놓고 있다. 법 시행 이후 여러 논란이 발생하더라도 사회의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부정청탁 등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특히 게임업계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행사 등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이미 김영란법이 규제하고 있는 부분보다 훨씬 적은 규모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추후에도 혼란은 그렇게 크지 않을 전망이다.
물론 부정적인 의견 역시 적지 않다. 과거 시행 이후 논란이 됐던 금주법과 마찬가지로 모든 행위가 음성적으로 전환돼 더욱 부패의 뿌리를 뽑을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김영란법’의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다양한 분야에서 이 법을 피해갈 수 있는 편법을 제시하면서 부패 근절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여럿 나온 바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이 게임업계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걸쳐 투명한 사회 구성을 위한 방아쇠 역할을 할 것이란 의견에는 대다수의 국민들의 동의를 할 만큼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관행’으로 여겨지던 여러 악습이 이 법의 시행을 계기로 하나씩 고쳐져 청렴사회로 나갈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려질 것이란 주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회 전체에 김영란법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적어도 지금의 청소년들이 사회 주축이 되는 약 15년은 지나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며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역시 가볍게 볼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김영란법이 눈에 보이는 부정청탁만 막는 법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의 인식 자체를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게임스 김용석 기자 kr1222@thega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