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의 정신적 질환 학설 뒤집어
건국大 정의준 교수 “사회적 요인에 의해 더 영향 받아" 주장

 

그동안 학부모 및 정치권은 게임을 중독 물질로 규정하며 사회악으로 몰아가는 것이 낯선 일이 아니었다. 특히 게임을 병리적 중독으로 진단할 수 있는 정확한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잘못된 인식이 뿌리내리고 말았다.

그러나 최근 과몰입 현상은 게임 자체가 아닌 사회적 관계를 비롯한 외부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에 따라 게임을 중독 물질 및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했던 기존의 가설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에서는 게임을 부정적으로 여기며 경계하는 방향으로 한 연구도 계속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한번 깊게 박힌 편견을 바꾸는 일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지난 2013년 이른바 ‘신의진법’으로 알려진 게임을 중독 물질로 규정하는 법안이 발의됨에 따라 게임업계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이는 게임을 마약 등과 동급으로 두고 정신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질병의 대상으로 여기겠다는 논리였기 때문이다.

‘신의진법’은 다행히 폐기되긴 했으나 당시 신의진 의원을 비롯한 정치권 인사들이 게임 산업을 이 같은 인식으로 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업계는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이 게임을 정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할 중독이나 질병의 원인으로 몰아가는 행보를 보였으나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지도 못하고 속만 태워왔다.

그러나 최근 열린 ‘게임패널 심포지엄’을 통해 청소년 게임과몰입은 부모와의 관계를 비롯해 외부 요인이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업계 이목을 끌고 있다. 특히 이전까지 만연한 부정적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청소년 집단을 대상으로 게임 과몰입에 대한 요인을 파악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게임이 좋고 나쁘다는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게 아니라 게임 문화 현실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보는 시도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게임의 역기능효과에 대한 원인 규명을 위해 인과적이고 장기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미국정신의학회가 발간한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에 따르면 게임 과몰입 정신질환 논의에는 다양하고 엄밀한 실증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또 게임 자체를 원인으로 규정하는 병리적 견해와 사회적 요인이 게임 과몰입으로 발현되는 인지적 견해 모두 아시아적 환경을 고려한 데이터가 부족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함께 장기적이고 실증적인 검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가 추진됐다는 것이다.

#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이에 따라 정의준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청소년 2000명을 대상으로 2년간의 추적 분석에 나섰다. 또 이를 통해 게임 과몰입에 가장 밀접한 것은 스트레스가 높을수록 저하되는 ‘자기통제’ 능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정 교수는 ‘게임이용’과 ‘자기통제’를 비교 요인으로 두고 2년여 간 과몰입 원인과의 관계를 연구했다. 이 결과 또래문화를 비롯해 심리, 사회적 원인이 게임 이용시간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부모의 과잉간섭으로 학업 스트레스를 높이는 것을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이 같은 사회적 요인이 자기통제 능력을 저하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반면 부모의 관심어린 대화는 스트레스를 낮추고 자기통제를 높이며 게임 과몰입 수치를 감소시키는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처럼 외부적인 요인이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게임 자체가 과몰입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병리전 견해를 부정했다. 또 이 같은 견해에 대해 게임(이용시간)이 직접적 원인으로써 과몰입이 일어난다는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연구 데이터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병리적 중독 견해는 이처럼 체계적인 연구 결과가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과몰입의 원인을 게임 그 자체로 보고 있다. 또 이를 통해 내성, 금단, 의존 등 사회적 부적응의 중독증세가 발현된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이에 대립되는 인지적 문제의 견해의 경우 게임은 단순한 매체이며 이를 이용하는 개인과 사회의 문제가 게임 과몰입을 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의 심리를 비롯해 주변환경, 사회적 취약성이 자기통제를 저하시키고 이로 인해 게임 과몰입이 발현된다는 설명이다.

# 부모 과잉간섭이 스트레스 원인

장예빛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부모의 심리와 양육태도의 효과’를 주제로 게임과몰입에 주목했다. 특히 자기통제에 영향을 주는 긍정적, 부정적 변수를 찾아내 큰 패턴을 살펴보려 했다.

장 교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녀가 스스로 자기통제를 키워나가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왜 과도하게 게임에 몰입하는지 원인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는 결국 자녀가 스트레스를 받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탐색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가 자녀의 자기통제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항상 일관되고 합리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모 역시 일정 수준 자기통제를 보여줘야 하며, 자녀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아닌 자신감을 고취시킬 정도의 수준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유승호 강원대학교 영상문화학과 교수는 ‘게임이용 시간의 장기적 추이와 영향’을 주제로 게임 이용 상위 30%(2시간 이상) 청소년을 추적 관찰했다. 이 결과, 시험기간 등 주변상황 및 개인 의지에 따라 게임 시간을 조절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2시간 이상 게임을 즐기는 청소년들의 성적은 54%가 중상위권을 차지하며 한 부분에 편향되지 않는 정규분포를 보였다고 밝혔다. 게임 이용은 성적뿐만 아니라 자기통제 손상 및 교우관계 문제 등에 장기적인 영향력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유 교수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그는 중독 물질에 노출되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병리적 관점의 논지는 게임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자기통제 및 스트레스 등이 평균보다 나쁘거나 게임에 의해 일시적으로 낮아진 자기통제가 회복되지 않는 취약층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한덕현 중앙대학교병원 교수가 ‘게임 이용자의 생물학적 반응에 대한 논의’를 주제로 게임을 주제로 다뤘던 임상의학의 연구흐름과 최신동향에 대해 발표했다. 또 김붕년 서울대학교병원 교수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와 IGD(게임 과몰입군)의 뇌발달 특성’이라는 주제로 ADHD와 MDD(우울증) 환자 등 게임 과몰입에 취약한 공존 질환군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까지 게임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결론을 내기에는 현 단계의 연구가 부족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추적관찰군의 수가 적어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특히 김 교수는 지난 1년간 100명을 순수 게임과몰입군(31명)과 게임과몰입-ADHD군(31명), 순수 ADHD군(24명), 게임과몰입-MDD군(14명) 등으로 구분해 뇌 구조변화를 관찰-연구했다. 게임과몰입군과 ADHD군이 유사한 증상을 보이긴 했으나 인과관계를 확정하기에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 부정적 견해에 과학적으로 대처해야

그러나 여전히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최근 지상파TV를 비롯한 다수의 매체들은 미국 소아과학회(AAP)가 발표한 임상보고서 자료를 소개하며 ‘게임’이 청소년 자살률과 관계가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 매체들은 인터넷 및 게임 중독 증상을 보이는 청소년들이 우울증을 앓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하루 5시간 넘게 비디오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을 이용하는 ‘병적인 사용’이 청소년들의 자살 생각 및 시도와의 상관관계를 보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보도 방법은 마치 게임이 자살률을 높이는 치명적인 원인으로 밝혀진 것처럼 몰아가 게임업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 보고서는 뉴스 및 커뮤니티에서 자살 소식을 듣는 것을 비롯해 왕따 피해 등 다양한 요인과의 자살률에 대한 상관관계를 밝히고 있으나 국내 매체들은 마치 게임이 직접적인 원인인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게임 과몰입을 둘러싼 부정적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게임 자체가 과몰입으로 이어지거나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한 만큼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물론 지속적인 추가 지원에 나서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또 게임 역기능에 대한 연구는 사회악으로 몰아가는 것에 반발해 객관성을 잃을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현재 게임의 순기능, 역기능에 대한 연구 및 자료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인 만큼 단편적인 결과를 내리기에 앞서 지속적인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더게임스 이주환 기자 nennenew@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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