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놓치면 재기 어려워 ...가능성 있는 업체 적극 발굴해 육성을

1970년대의 코닥(Kodak)은 지금의 애플(Appl)이나 구글(Google)과도 같은 회사였다. 2005년 연 매출이 140억 달러(한화 16조)인 세계 최고의 기업 중 하나였다. 또한 1865년 핀란드의 에스푸(Espoo)에 설립된 노키아(NOKIA)는 2007년 헬싱키 주식시장의 1/3을 차지한 핀란드의 국민기업이었으며 2010년 3사분기 세계 휴대전화 점유율 40%를 거머쥐고 있던 세계 최대의 휴대폰 생산 기업이었다.

이 두 개의 위대한 거대기업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찬란한 명성을 뒤로 한 채 2012년 1월 19일 코닥은 파산선고를 했으며 노키아는 2013년 4월 5일 상하이의 최대 플래그쉽 스토어를 공식적으로 폐쇄했다.

너무나 아이러니하게도 필름산업의 최고 강자로 군림하던 코닥은 자신들의 발명품인 디지털카메라에 의해 더 이상 설자리를 잃고 무너져 내렸다.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한 코닥은 고화질의 종이사진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버렸다.

전 세계 핸드폰 사용자 10명중 4명이 노키아가 생산한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노키아는 애플과 삼성에 왕좌를 너무나 손쉽게 넘겨주게 된다.

두 거인의 몰락은 공통점을 갖는다. 둘 모두 새로운 시대적 패러다임의 변화에 빠르고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라는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이들이 한순간에 망했다.

우리는 지금 또 하나의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 앞에 직면해 있다. 가상현실 VR(Virtual Reality)이라는 변화의 물결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 인류를 지배하던 평면적인 2D영상 콘텐츠의 시대가 저물고 360도 입체영상 콘텐츠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를 보고 영감을 얻은 19살 청년의 작은 욕망으로 시작된 가상현실 기기의 개발은 이제 게임 산업을 포함한 IT산업의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으며 무한한 성장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언리얼 엔진의 개발사인 에픽 게임즈(Epic Games)의 팀 스위니(Tim Sweeney) 대표는 매년 개최되는 ‘언리얼 서밋’을 통해서 가상현실게임의 시대가 도래 할 것을 시사했으며 밸브(Valve)사는 최근 가상현실 콘텐츠 개발자에 자사 게임 서비스 플랫폼인 '스팀'에서 제공하는 가상현실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전용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를 무상 제공하는 행사를 시작했다. 전 세계의 게임관련 업체들이 빠르게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과연 우리의 게임 산업은 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몇몇 작은 업체들의 시도가 가끔씩 게임관련 기사를 통해 알려지고 있지만 메이저급 대형 업체들이 가상현실게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을 수가 없다. 세계적인 움직임이 이미 연구단계가 아닌 상용화단계의 성과물들을 쏟아내기 시작하고 거대 시장이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자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허겁지겁 우르르 몰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미리 준비하여 시장이 열렸을 때 선점하지 못하면 가상현실 게임 산업에서도 후발주자로 뒤처지게 될 수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하는 주인공 자리를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미국이나 일본에 내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코닥이나 노키아와 같이 변화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한 순간에 몰락 할 수도 있다.

건강한 생태계 마련이 중요하다. 망가져버린 스마트폰 게임 생태계를 거울삼아 정부에서 전략적으로 가상현실게임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과 대응이 필수적이다. 가능성 있는 업체들을 대상으로 마음껏 개발하고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주고 중소개발사들이 서로 상생하며 산업을 풍성하게 가꿔갈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서 초기생태계 조성을 빠른 시일 내에 완료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 게임 산업이 가상현실게임 산업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지난 10일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오큘러스VR과 모바일 오픈마켓 자체등급분류협약을 체결했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오큘러스VR과의 협약 체결이 가상현실 게임이 미래 창조경제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시점에서 건전한 게임생태계 조성을 위한 상호협력이라고 밝혔다. 이번 협약 체결이 새롭게 다가오는 게임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시발점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최삼하 서강대 게임교육원 교수 funmaker@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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