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 망령 언제까지(상)]…정치적ㆍ사회적 이슈가 배경

신의진 의원(새누리당.사진)은 게임을 마약 등과 함게 '4대 중독'에 포함시킨 법안을 발의해 업계의 강한 반발을 산 바 있다.
‘게임중독’이란 용어가 최근 보건복지부의 광고로 인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잊을 만 하면 다시 되살아나는 지긋지긋한  '망령'을 보는 듯 하다. 이제 '게임중독'이란 용어는 사회 곳곳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마치 ‘마약중독’이나 ‘알콜중독’처럼 ‘게임중독’도 당연히 있는 것이고 그 때문에 없어져야 할 사회악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게임중독’이란 현상이 과학적,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사실이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계와 법조계, 심지어는 정부에서조차 ‘게임중독’이라는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다.

더게임스는 ‘게임중독’이란 단어가 더 이상 사용되지 못하도록 하는 근본적인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데 주목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게임중독'이란 망령은 언제 어디에서든 되살아나 게임업계의 목을 조를 것이 분명하다. 더게임스는 사회 곳곳에 퍼져있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3회에 걸쳐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해보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게임중독’이란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0여년 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에도 게임중독이란 개념이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대중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세계에서 정치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최초의 게임은 1978년 등장한 아케이드 게임인 ‘스페이스 인베이더’였다. 1981년 영국 노동당 하원의원 조지 폴크스(George Foulkes)는 ‘스페이스 인베이더 (기타 다른 전자오락들) 통제 법안’이라는 정치적 법안의 초안을 제출했는데, 이는 이 게임이 ‘중독성’이 있고, ‘일탈’을 초래해 이를 금지하려는 것이었다. 법안은 국회에서 논의되었고 114 대 94로 부결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후반부터 게임중독이 종종 사회문제로 등장했고 1990년대 말에는 인터넷의 보급과 온라인게임의 급성장으로 관심을 끌게 됐다.

현재의 게임중독이라는 개념은 인터넷중독이란 개념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다. 1996년 골드버그(Goldberg)는 정신장애분류체계인 ‘DSM-Ⅳ’의 물질중독 기준을 근거로 해 최초로 ‘인터넷 중독 장애’라는 용어와 개념적인 진단 준거를 만들었다. 이 용어는 최근 ‘병리적 컴퓨터 사용(Pathological Computer Use)’이라는 용어로 대체됐다.

이 개념에 게임을 연관시키면서 ‘게임중독’이란 말이 생겨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게임중독에 대한 구체적인 진단 기준은 없으나 DSM-Ⅳ의 ‘병적 도박’의 진단 기준을 적용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강박적인 사고와 내성, 금단현상과 의도한 것 이상의 과도한 사용, 과도한 게임으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 무시 등을 특징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게임업계와 의학계 내부에서도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학계에서는 ‘게임중독’이란 용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정신과 진단 기준에서도 ‘게임중독’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중독’이란 용어는 미디어나 정치권, 정부 관계자 등 매우 광범위한 곳에서 사용됐고 마치 실재하는 현상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게임중독’이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게 된 것은 크게 세가지 요인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첫째는 지난 2006년 발생한 도박게임으로 야기된 ‘바다이야기사태’다. 두 번째는 병영에서 발생한 총기난사사건, 청소년의 부모살해사건 등 폭력적 사건의 배후에 게임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게임이 청소년들의 학업에 절대적인 방해가 되고 있다는 학부모들의 반발심리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쌓이면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게임은 ‘중독물질’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예로 든 세가지 요인은 모두 ‘게임중독’ 현상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중독일 것이다’라는 피상적인 근거를 들어 게임중독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신의진 의원(새누리당)이 게임을 마약, 도박, 술과 함께 4대 중독물로 규정하려 한 ‘4대 중독법’ 공청회에서 “게임은 알콜, 마약 등과 달리 비(非)물질적인 것”이라며 “이것은 정서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며 특히 현재 법안에서 규제하려는 것이 인터넷인지 게임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또 “‘중독법’은 현재 국민의 가장 대표적인 놀이문화 중 하나인 게임의 산업적, 문화적 가치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며 “특히 게임이 중독물질인지에 대해 과학적, 임상적, 사회적 합의가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적 문제들을 게임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정치적 나쁜 습관”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게임산업을 관할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식적으로 ‘게임중독’이라는 용어 대신 ‘게임과몰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부정적이며 병적인 이미지를 주는 중독이라는 용어 대신 과몰입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중립적인 이미지를 전달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정부 내에서조차 ‘게임중독’이란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등 통일이 되지 못한 상태다.

이에따라 게임업계에서는 정부 내에서만이라도 우선 용어와 개념을 통일시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또 의학계나 심리학계의 용어도 통일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와 학계에서부터 먼저 ‘게임중독’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한 다음에 미디어와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인식을 전환시키는 것이 순서라는 지적이다.

[더게임스 김병억 기자 bekim@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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