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년만에 귀국한 후배가 새삼 자신의 나이를 들먹이며 멋쩍은 듯 웃어보였다. 돌아와 보니 동기들이 하나같이 이선으로 물러나 있거나 현역에서 은퇴해 있더란 것이다. 그는 겨우 불혹의 나이를 슬그머니 지났을 뿐인데, 한국적인 풍토인지 아니면 시대적 흐름 때문인지는 알 수 없겠지만 불과 40대 중반에 있는 이들이 다들 뒷방을 차지하고 있는 데 대해 깜짝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그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잘 나가는 정보통신(IT)기업 대표다. 그런 그가 잠시 한국을 떠난 것은 더 이상 늦추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미국으로 유학 길에 오른 것이다.

그가 돌아와 현업에 복귀하면서 제일먼저 느낀 건 과거에도 그랬지만 기업 환경이 예상보다 더 요동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트렌드의 변화가 빨랐고, 두 번째로는 6개월을 내다보고 경영 지표를 세울 수 없을 만큼 시장이 긴박하게 돌아간다는 것이었으며, 마지막으론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구체화할 수 없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자리에 돌아오자 마자 다짐했다고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친구들처럼 결코 연구하는 현장에서 물러나 있지 않겠다고 말이다.

정보통신기술을 기저로 삼는 상품은 트렌드에 매우 민감하다. 소비의 흐름이 급변하는 정도가 아니라 순서가 뒤바뀌기도 하기 때문이다. 순풍이 아니라 요동치는 바다라면 바닷길을 잘 아는 선장이 나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잔잔한 물길이 아니면 선장은 결코 조타실에서 물러나 있는 법이 없다. 그가 진두지휘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빠른 결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경제가 침체의 국면에서 허덕이고 있다. 올해도 잘해야 2~3%의 성장률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모든 역량을 경제 살리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야당에선 그의 그같은 움직임에 대해 평가 절하는 모습이지만, 새해는 그의 바람대로 경기가 빨리 회복됐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관의 톱니바퀴가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일을 해야 할 선장들이 가시권에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 최부총리 경제팀에 결정적인 흠결이라 할 수 있다.

재벌 총수들의 사면과 가석방 문제는 경기 부양책 일환으로 제기되고 있다. 전시적인 것이 효과가 있겠느냐는 지적도 만만찮고 법의 형평성 등 논란의 여지가 적지 않지만 투자 확대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우리 경제를 살릴 방도가 없다는 점에서 또다른 방도라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무조건 안된다가 아니라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굳이 감옥의 방이 아니어도 다른 방식으로 갱생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선례 차원에서는 그렇지만 시기적으로 보면 그렇게 나쁘다고 몰아붙일 일만은 아니다.

게임계의 사정도 우리 경제와 엇비슷하다. 경기불황과 관계없는 꾸준한 수요 흐름을 보여주는 게 게임시장의 지표였는데 최근 1~2년 사이 그 변주곡은 수직하강으로 바뀌어 버렸다. 일각에서는 모바일 게임으로 인한 신규 수요를 감안하면 온라인 게임 수요 감소분에 대한 벌충이 이루어진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분석에 대해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맞다고도 할 수 없는 고민이 따른다. 전체적인 양으로 보면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함량에서 몹시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임계의 문제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산업의 무게 중심이 사라지면서 과도기적 산업 지형에 아무런 대응도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모바일 게임하니까 모두 모바일게임 개발만 매달려 종주국이라고 자부해 온 온라인게임은 온데 간데 없이 만들어 버린 것이다.

2013년 이후 최근까지 대한민국 온라인 게임은 씨가 말라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외국 게임업체들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다소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아직도 수요가 적지 않고 가능성이 높은데 왜 온라인게임을 개발하지 않고 뒷짐만 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모바일게임은 향후에는 몰라도 여전히 온라인게임의 종속 변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게임 산업이 이처럼 흐트러진 배경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게임 개국 공신들이 모두 이선에 물러나 뒷방에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예컨대 대표이사직은 내주고 이사회 의장이란 타이틀만을 거머쥔 채 뒤에서 쥐락펴락하고 있는데 그 명령이 과연 제대로 먹혀들겠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먹혀들리 없다고 단언한다. 뒷방에서 듣는 청력과 최 일선에서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의 귀와 눈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문제는 이들이 겨우 40대에 불과하고, 한참 현장에서 일할 나이인데 때 아니게 이선을 사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 외 산업 현장을 지키고 있는 1세대 게임인이 거의 없다는 건 매우 충격적이다.

경제가 어렵고 게임산업 역시 힘겨운 을미년 첫째 달이다. 게임계가 혹 신선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이 기회에 자성해 볼 일이다.
현장에 창업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엔씨소프트는 IMF 때보다 힘겨웠다는 지난해에도 거친 풍랑의 바닷길을 헤치며 거뜬히 빠져 나왔다.

[더게임스 인 뉴스1에디터/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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