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흥행에만 혈안 ... 미래의 가치까지 내 팽개쳐

월트 디즈니사가 극심한 불황 한파에 시달리면서도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에 게을리 하지 않았던 건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겠다는 설립자 월트디즈니의 기업 정신을 결코 저버리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경영 모토는 회사 재정을 크게 악화시켰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기업 파산까지 걱정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불러 왔다.

그러자 임원진 일각에서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덜한 일반 영화를 제작, 배급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주장이 나왔고, 이 같은 의견은 난상토론 끝에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월트 디즈니라는 브랜드로 영화를 제작하는 데 대해서는 하나같이 반대했다. 어린이들에게 가치 혼란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이른바 월트 디즈니에 대한 브랜드 로열티 하락을 우려한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할리우드픽처스와 터치스톤 픽처스라는 영화사와 브랜드였다.

이 두 영화사의 성향은 터치스톤의 경우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주로 선보인다는 것이었고 할리우드픽처스는 터치스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이었다. 할리우드 픽처스를 통해 ‘더록’‘지아이제인’ ‘식스센스’ 등이 제작, 배급됐고 ‘에어포스 원’‘ 아마게돈’ ‘니드포 스피드’ 등이 터치 스톤에 의해 제작됐다.

나중에는 이 두 회사의 영화 제작 성향이 엇비슷해 지면서 브랜드에 대한  경계선이 아주 애매모호해 졌지만 어찌됐든 두 회사의 브랜드는 그렇게 만들어 졌고 월트디즈니사는 이들 영화사와 브랜드를 통해 버텨냈다.

이처럼 자신들의 브랜드 로열티를 지켜낸 월트디즈니의 기업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디즈니’라는 브랜드 하나의 가치가 약 3백억 달러에 달하고 애니메이션 주인공‘ 푸의’의 가치가 150억 달러에 이른다. 또 지난해에는 70조원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치열하게 자신들의 브랜드를 지키고 닦음으로써 무형의 자산을 만들어 낸 것이다.

기업 브랜드와 브랜드 로열티에 대한 국내 게임계의 인식은 거의 제로 수준에 가깝다. 그러나 이웃 일본 게임업계만 하더라도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자사의 게임 캐릭터를 함부로 유출했다간 난리가 나고 광고의 카피마저도 맘대로 쓰지 못하게 한다. 자신들이 마련한 기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됐다’ 는 사인을 내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게임계에는 그런 게 없다. 엔씨소프트가 2011년 프로야구단을 창단해 운영하는 것이 고작이다. 시내버스 옆면에다 하던 광고를 접은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얼마를 벌겠다고 브랜드 가치를 내 팽개치면서까지 그런 광고를 하느냐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내 게임기업들은 브랜드에 대한 가치와 브랜드 네임을 그렇게 의식하지 않는다.

브랜드 로열티를 생각하기 보다는 모로 가든지 대박만 터트리면 된다는, 오로지 흥행 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까닭이다.

솔직히 적당한 표현인지 알 수 없지만 품위를 잃은 기업 브랜드와  생명이 없는 브랜드가 적지 않다. 과연 저 같은 인물이 저 회사의 대표로 앉아 있는 게 회사 이미지에 걸맞은 일인지 의구심이 드는 경우 또한 허다 하다.  회사 이미지와 게임 흥행과는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업 브랜드에 대한 회사 오너의 인식이 없거나 매우 낮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게임계에서는 기업 이미지가 좋고 대표의 인심이 후한 기업은 경영이 어렵고, 그렇지 않는 야박한 기업과 그 대표의 기업은 흥한다는 웃지 못 할 말들이 자주 회자된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없지 않다.

A회사는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도 좋고 대표도 빼어난 인품을 지니고 있는 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흥행시장에선 큰 재미를 못보고 있다. 많은 돈을 들인 작품들이 모두 흥행에서 참패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대박은 터트리지 못하고 있지만 꾸준히 실적은 이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브랜드 이미지가 국내외로 알려지고, 대표 성품이 이쪽저쪽에 전해지면서 스테디셀러 작품들이 잇달아 양산된 때문이다.

반면 B사는 대박 작품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받았다. 그리고 코스닥에도 상장했다. 하지만 그 걸로 끝이었다. 회사뿐 아니라 회사 대표의 이미지까지 안 좋았는데 , 브랜드마저 받쳐주지 못했다. 이 회사는 현재 시장에서 바닥을 헤매고 있고, 일각에서는 퇴출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경쟁업종과 달리 게임시장에서는 브랜드나 그 프리미엄에 대해 그다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게임이 재미있으면 흥행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흥행시장에서 실패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로지 거기에만 집중할 뿐 브랜드 관리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정말 그렇다면 게임산업은 아주 불행한 콘텐츠 업종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매일같이 유저 입맛에 맞춘 작품을 내놓고 승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알린다고 해도 아주 제한적이고 한정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기업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까지 없다면 그 마켓 비용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할 것이다.

게임을 비롯한 콘텐츠는 대중의 얼을 담고 있다. 그 걸 빼면 아무 것도 아니다. 게임도 , 영화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면 그 땐 엔터테인먼트라 할 수 없다. 월트디즈니가, 닌텐도가 흥행못지 않게 지키려 몸부림쳤던 것이 바로 자신들의 얼을 상징하는 브랜드의 가치에 있었던 게 아닐까.

게임계도 이젠 이 부문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답을 내놓을 때가 됐다. 산업의 규모도 그렇고 시장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하루 벌고 하루 정리하는 어린 장사치처럼 징징대는 기업들은 또 뭔가.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까 ‘아이돌 산업’ ‘혼이 없는  산업’이란 지적을 받는 게 아닌가.

[더게임스 모인 뉴스1 에디터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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