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것은 경북 칠곡의 계모 살인사건과 울산 계모 살인사건이다. 두 사안 모두 범행 대상이 어린 자녀였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고 가해자 또한 우연찮게 두사람 모두 계모였다는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주초 또다시 충격적인 사건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게임에 미쳐 두 살배기 아기를 죽인 비정의 아빠가 뉴스의 중심에 섰다. 아빠라는 사람은 매일같이 게임을 하기위해 PC방에 눌러 살았고, 게임에 빠져 가정조차 돌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끝내는 아내가 가출하자 게임 놀이를 방해하는 아기가 귀찮다며 코와 입을 막아 질식사 시켜 길에 내다 버렸다는 게 두 살배기 아들을 죽인 게임중독 아빠 이야기의 전말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이었다. 더군다나 게임에 중독돼 천륜을 짓밟았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세 사건 모두 아동학대와 아동 폭력으로 빚어진 우리사회의 참극이다. 또 가정 폭력으로 인해 믿고 싶지 않는 일들이 적지 않게 벌어진다는 점에서 더 이상 충격적이라 할수 조차 없다.

하지만 경북 칠곡과 울산 사건과는 별개로 게임중독 아빠 사건은 상당히 작위적이란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두 사건에 대해선 언론에서 밀도있고 세밀하게 문제점과 현상을 파고 든 반면 게임중독 아빠 사건은 상당히 자극적으로만 접근하고 있는 부문이 눈에 띠었기 때문이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도 게임이 어린 아기 살해의 직접적인 동인이 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보다는 사회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는 가난과 사회 안정망에서 소외된 철없고 생각 없는 아빠의 일탈 행위로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 까 생각된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 게임중독이란 형용사를 슬그머니 얹혀 놨다.

앞선 두 사건은 ‘콩쥐와 팥쥐’란 민담소재를 고루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히 자극적인 표현을 동원할 필요가 없었지만 게임중독 아빠 사건은 액면 그대로 나쁜 아빠의 살인극이기에 더 이상 극적인 요소를 찾아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장치가 필요했고, 그 것이 사회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게임이었다면 대단히 불쾌하고 바람직 하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에 대한 사시적인 접근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 시각의 중심에는 게임은 ‘아이돌 문화’라는 저급한 문화라는 인식에서 시작하고 있다. 또 그 것은 문화의 줄기가 아니라 머나먼 변방이고, 문화로 여기기 보다는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읽으려 하는 데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 게임계에 대해서 만큼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제도권의 기득권 지키기 심리가 한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분석 가운데 다른 건 몰라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게임계를 왕따시키고 있다면 상황은 자못 심각해 진다.

게임의 연륜이 쌓이지 않아 문화 줄기로 받아 들이기엔 시간이 필요하다면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 또 ‘아이돌 문화’라는 데 대해서도 청소년들이 주 고객이고 이용층이니까 굳이 아니다라고 변명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게임이 변방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더 이상 항거할 필요가 없다 하겠다.

그렇지만 분명 실체가 있는데 ‘노는 물’이 저급하다는 이유로, 또는 변방이라는 점 때문에 제도권에서 존재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따돌리는데 대해서는 절대 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륜이 짧다 보니까 제도권에서 쓰는 용어와 습관 정서 등의 차이는 확연히 존재한다. 예컨대 제도권에서는 대표끼리 만나 비즈니스 얘기를 주고 받다가 서로 절충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게임계에서는 절충보다는 아니면 전무일 경우가 허다하다. 또 제도권에서는 상식으로 통하지만 게임계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같은 게임계의 의식과 행동이 무례로 비춰지기 일쑤다. 솔직히 간단한 사례를 언급한 것이지만 제도권과의 이러한 사고의 충돌과 갈등은 적지 않다.

언필칭, 게임계를 깔아 내리기 위해 자행되는 제도권의 음모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이번 게임중독 아빠 사건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본질을 외면한 황색 저널리즘에 의한 조어일 뿐이다. 저급한 피의자이니까 별수 있겠나 하는 선민적 사고와 문화적 우월주의에서 게임을 맘대로 끼워 넣은 게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즈음에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그렇게 과장해 표현하지 않아도 실체를 다 알고 있다는 걸 왜 모르는지 정말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독자들에게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어주겠다면 이참에도 게임계가 참아볼 용의가 있다. 그렇지만 더 이상은 곤란하다. 게임이 동네 북이더란 말인가.

게임중독에 빠진 아빠는 우리 주변에 분명히 없었다.

[더게임스 인 뉴스1 에디터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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