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형 인간의 대명사로 꼽히는 스티브가 잡스가 다니던 대학을 때려 치고 입사한 곳이 게임업체 아타리(atari)였다. 아타리는 잘 알려져 있듯이 업소용 게임의 전설 ‘퐁’이란 작품으로 일약 세계적인 기업으로 떠오른 게임계의 전설적인 명가다.

이 기업을 만든 놀런 부시럴(Nolan Bushnell)은 그다지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게임 비즈니스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일본 게임 기업인 닌텐도에 자리를 내 주기까지는 분명 그가 세계 게임계의 레전드였다.

하지만 ‘아타리 쇼크’라고 불리는 치명적인 매출 부진으로 기업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했다. 경쟁작이 쏟아져 나오고 새로운 게임 플랫폼이 등장하는 데도 그는 시장을 계속 장악할 것이란 믿음만 키웠다. 1971년 단돈 500달러로 세운 아타리사는 이후 가정용 게임기(콘솔)의 거센 도전과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본 게임기업 닌텐도의 도도함은 놀런 부시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큰 부침 속에서도 신기하게 오뚝이처럼 살아났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천박한 기업이었던 닌텐도는 마치 그 것을 감추려는 듯 도도한 정책만을 고수했다. 독자노선만 걸었고 폐쇄적인정책이 한 때는 발목을 잡을 뻔했다. 그럼에도 승승장구했다. 어려운 고비 때 마다 이겨냈고 이를 극복해 냈다.

그러나 창조형 인간 스티브 잡스엔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당했다. 폐쇄적인 정책은 엇비슷했지만 그가 세상에 선보인 스마트폰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닌텐도의 지난해 매출실적은 전년의 절반수준인 5900억엔, 영업손실은 350억엔에 달했다. 전성기 때와 비교하면 영업이익 수준의 매출을 기록한 것이다. 닌텐도가 또다시 시장에서 재기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이젠 거의 없다.

재미있는 점은 아타리를 무너뜨린 닌텐도가 아타리의 장학생인 스티브 잡스에 의해 무릎을 끓었다는 점이다. 또다른 사실은 양사가 태생적인 약점을 지닌 때문인지 기업을 세상에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닌텐도의 경우 이를 감추기 위해 미 프로 야구단을 인수하는 등 고고(高高) 전략을 폈지만 아타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아타리에 대한 후세들의 역사적 평가는 후하지 않다. 물론 닌텐도에 대한 기업 평가 역시 부정적이다. 그러나 아타리에 대한 세평은 그냥 업소용 게임의 명가로 제한됐다. 세상으로부터 얻은 만큼 사회에 기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컴퓨터 게임을 인류에 최초로 선보인 사람은 미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하긴보섬(William Higin Botham) 박사다. 그는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을 뒤늦게 알고 종전 후 부룩헤이븐 국립연구소로 자리를 옮긴다.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반성과 참회를 위해 그는 순수 학문연구에만 집중했다. 그런 그가 게임을 만든 것은 연구소에 견학을 온 학생들의 지루함을 덜어주기 위함이었다. 대기 시간을 지루해 하는 학생들에게 재미를 안겨주기 위해 그는 ‘테니스 퍼 투’라는, 후에 세계적인 바람을 일으킨 ‘퐁’ 게임의 모티브가 되는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게임이 큰 관심을 모으자 그의 주변 사람들은 이 게임에 대한 저작권 등록을 서두르자고 제안하지만 그는 일언지하 이를 거부했다. 그 까닭은 이 장르의 무한한 시장 가능성 보다는 인류에게 즐거운 발명품으로 안기길 바랬고, 후세들에게 게임은 좋은 선물이 될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그가 만든 컴퓨터 게임은 아타리의 탄생을 있게 했고 닌텐도와 소니 세가란 세계적인 명가 게임기업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인류에게 즐거운 선물이 되기를 바랬던 윌리엄 하긴보섬의 기대와 희망은 갈수록 희미해 지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게임산업계를 들여다보면 희망이 아니라 좌절이고 기대감은 절망으로 바뀌고 있다.

게임 오락은 이제 사행성으로 불리고 있고, 안겨주는 재미와 창조성은 게임의 중독성과 폭력성으로 인해 평가조차 외면 받고 있다. 게임계의 지칠 줄 모르는 탐욕과 천박함으로 품위조차 지키지 못한다는 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온 얘기다. 아타리가 무너지고 닌텐도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몸부림치는 것은 트렌드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게 아니라 오로지 매출에만 혈안이 된 실적주의와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한 도도함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고만고만한 기업만이 잉태되고 있는 것이 결코 우연이라고 하기엔 대한민국 게임계의 의식실종병이 너무 깊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세울 만한 사람도 기업도 없는, 무주공산의 게임업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여기저기 돈만 잘 벌겠다고 야단이다.

희망의 손길을 찾을 수 없다면 그건 지옥이다. 윌리엄 하긴보섬 같은 이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은 게임계에도 봄이 올 것이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천민자본의 전형을 보여준 아타리나 닌텐도의 기업 풍토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게임계에 진정한 봄날을 기대해 본다.

[더게임스 모인 제1뉴스 에디터 /건국대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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