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독일 쾰른에서 개최되는 유럽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DC Eroupe 2013)에 참가 차 독일에 들렀다가 세계 최초이자 하나 밖에 없다는 베를린의 컴퓨터 게임 박물관을 찾았다. 독자들도 이미 알고 있다시피 독일은 2차 대전에 패전한 이후 동서로 분단되어 우리나라와 같이 세계에서 몇 개 남지 않은 분단 국가였으나 1990년 과거 독일민주공화국(동독)에 속하던 주들이 독일연방공화국(서독)에 가입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통일 국가이다.

필자가 방문한 동베를린 지역은 공산주의 하의 계획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베를린 컴퓨터박물관은 계획 도시 내의 대로에 위치하고 있었다. 외관은 보통 단독 건물과 비슷했지만, 일단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툼레이더’와 ‘젤다의전설’의 주인공 캐릭터들이 반겨주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부모와 같이 오는 사람들도 많았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들도 많았다. 얼마 되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는 게임 산업 분야이지만 잊혀져가고 없어져 가는 귀중한 자료들을 모아서 박물관을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시장에는 최초의 게임은 물론이거니와 명예의 전당에 오른 유명한 게임 개발자들의 사진과 업적, 그리고 최초의 게임 관련 서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콘솔 게임과 아케이드 게임들이 시대별로 잘 전시되어 있었고, 최근에 개발된 동작 인식 게임들은 직접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빠와 초등학생 아들로 보이는 관람객들이 아빠의 어린 시절과 게임의 발전사를 아들에게 얘기해주면서 정답게 같이 게임을 즐기던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공간이 생긴다면 새로운 관광자원이 될 뿐 아니라 가족 간의 대화도 늘어날 수 있고 부모와 가족 간의 거리는 좀 더 가까워질 것이며 게임 중독에 대한 우려도 말끔히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게임이 하나의 미디어 예술로 인정되어 세계 최고의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비롯하여 여러 박물관에서는 자주 게임 관련 전시회를 기획하여 전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여당 의원이 4대 중독법에 ‘게임’을 포함하는 입법안을 제출하여 게임업계가 혼란에 빠져 있다. 게임업계 전체가 당황하고 있고,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게임을 마약으로 본다면서 반발이 만만치 않다.

다양한 인터넷 사이트와 카페, 그리고 SNS에는 '게임 산업을 진흥한다고 했다가 게임을 마약 취급한다'면서 정부의 이중적이고 편파적인 입장에 대해 많은 비판이 일고 있다. 심지어는 게임이 문제라면 어떤 게임이 문제인지 지적해달라면서 “게임 제목 묻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문화콘텐츠 중에서 게임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마어마하다. 10개 콘텐츠 중에서 게임의 수출액은 나머지 9개를 합한 것보다도 많다. 이렇게 국익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미래 창조산업의 핵심인데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구박덩이로 몰아가는지 모르겠다. 다행이도 최근에 몇몇 지방자체단체에서는 서울 경기권이 아니더라도 게임 박물관을 잘 짓는다면 새로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준비를 하고 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시도는 온라인 게임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세계에 보여줄 수 있을 뿐 아니라 흩어져 있는 게임 관련 사료들을 한 곳으로 모아 기록하고 보관하여 후손들에게 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새로운 관광 콘텐츠로도 주목받게 될 것이다.

필자가 작년 ‘한국 게임의 역사’를 공동 집필해 책을 출간한 것도 이러한 안타까움에서 시작되었다. 보다 철저한 준비로 국내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반드시 찾게 되는 게임 박물관의 건립이 머지않아 이루어지길 간절히 희망한다.

[윤형섭 게임학 박사 quesera21@daum.net]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