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운영자금소요 ‘엄두 못내‘

차려준 밥상 내던져 버린 꼴…결국 열쇠는 ‘재정조달’ 여부

정부와 업계가 함께 추진해왔던 온라인게임 등급심의업무의 민간이양 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당초 게임문화재단이 이 업무를 이양받기로 했지만 운영자금 마련이 여의치 않자 이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어렵게 만든 기회를 게임업계가 스스로 차버리고 말았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에서 상을 차려놨는데 이 상을 걷어차 버린 것 아니냐는 것이다. 또 한편에서는 일부 메이저 업체들이 자사이기주의에 빠져 게임업계 전체를 위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게임에 대한 등급분류 업무 민간이양 작업이 속도를 내기는커녕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게 됐다. 그동안 유일한 등급분류 업무 수탁기관 후보였던 게임문화재단이 한국게임산업협회와 협의 끝에 중도에서 포기했기 때문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회장 남경필)는 새로운 단체를 찾기로 결정하고 원점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당초 예정대로라면 이미 지난해 7월 게임자율심의기구가 출범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자율심의 기구 설립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뤄지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 어쩌다 이지경까지

한국게임산업협회가 등급분류업무 이관 작업을 백지화 한 표면적인 이유는 게임문화재단이 정부가 제시한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협회 차원에서 이를 보완하겠다는 차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단 한 관계자는 “정부의 요구안을 맞추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결국 한국게임산업협회 내부에서 새로운 단체를 내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협회 한 관계자는 “그동안 문화재단이 게임등급분류업무 수탁기관으로 되는 것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며 “지난달부터 게임등급분류 업무를 이양할 새로운 단체를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오고갔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협회 내에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향후 계획에 대해 내부적으로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 있는 중”이라고만 밝혔다.
이에대해 주무부처인 문화부는 기한에 구애받지 않고 민간자율심의기구 설립 과정을 충분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문화부 한 관계자는 “우선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필요가 있다”며 “등급분류 업무 수탁 기관 선정 공고 시기는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등급분류 업무 민간 이양 작업이 미뤄지는 요인을 자율심의기구의 수익대비 고비용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돈이 문제라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게임자율심의기구의 주 수입원은 심의수수료가 될 전망인데 수수료만으로 심의기구 운영이 힘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자율심의기구 운영비로 연간 16억원이 사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는 등급분류회의 운영비와 각종 행정지원비, 인건비, 전산개발비 등이 포함된다. 현재 게임위의 심의수수료 매출이 연간 12억원이다. 영업이익만 따진다면 12억원 이하란 계산이 나온다. 결국 최소 4억원 이상의 적자가 나는 셈이다. 심의수수료만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처럼 적자가 불보듯 뻔해 등급분류 업무 수탁기관을 자처하는 단체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문화부는 자율심의기구 자격 요건으로 3년간의 운영자금 확보 조항을 내걸었다. 정부는 매년 3년간 10억원씩 계산해 총 30억원의 운영자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업계에서는 추가적인 자금 출연에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재의 게임산업진흥법에서는 자율심의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결국 게임자율심의기구가 운영되려면 심의수수료를 인상하거나 게임회사들의 지원을 받는 방안이 유력하다.

그러나 심의수수료 인상은 자칫 게임회사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심의기구 입장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다. 특히 중소게임회사는 비용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운영비용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심의수수료 인상까지 안하게 된다면 심의 기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주일에 2번 있던 심의가 1번으로 줄어들어 심의 기간이 길어지게 되고 업계에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심의수수료 인상은 등급분류 업무 민간이양 의미도 퇴색된다는 시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율심의를 통해 게임등급분류위원회 시절보다 나은 서비스가 필요한데 심의수수료 인상은 자율심의를 실시하는 의미가 없게 된다”고 밝혔다.

# 자사 이기주의가 원인?

그렇다면 문제는 게임업계에서 심의기구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하며 이 돈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의 사안으로 귀착된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업체들이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자금 출원에 대해서는 업계에서도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있으나 규모나 기준에 대해 업계 간 의견 조율이 어렵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게임산업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격변기에 서있는 만큼 업체들은 긴축경영을 펼치고 있어 자발적으로 비용 지출을 감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반면 게임 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필요한 자율심의기구 설립이 양보 없는 자사 이기주의로 인해 어려워지는게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게임문화재단은 그동안 심의기구의 경비 마련을 위해 심의목적의 기부금을 추가로 받는 방안을 구상하고 기부금 성격에 대한 기준과 회원사 확대 여부, 기부금 규모 등에 대해 내부에서 논의해 왔지만 결국 게임산업협회로 공을 던졌다. 게임문화재단의 입장에서는 심의관련 제반 경비 마련과 조직 구성에서 정부가 제시한 요건을 충족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부 메이저 업체들에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중소업체들에 부담을 지울 수 없는 상황일 것”이라며 “특히 게임 산업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분야인 만큼 몇몇  업체가 많은 비용을 부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부는 자율심의기구가 사회의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충분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수명 문화부 게임콘텐츠산업과장은 지난 1월 더게임스 신년좌담회에서 “자율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게임등급분류에 대한 권리를 갖는 대신 이에 대한 비용부담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업계가 자율적으로 등급분류 작업을 실시한다면 거기에 맞는 책임과 권리가 동시에 주어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등급분류 업무 지원금으로 전체 비용의 30%를 지원했지만 민간자율심의 업무가 민간에 이양되면 지원이 어렵다는 의미다. 

# 대안은 있나

등급분류업무 민간이양 과정은 앞으로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자율심의기구의 수익구조를 개선하지 않고는 등급분류수탁기관 후보 단체를 찾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협회는 준비위원회를 통해 새로운 단체에 맡기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협회 관계자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다”며 “업계와 회원사,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포괄적으로 수렴해 게임문화재단에서 수립한 계획을 보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협회는 현재 준비위원회를 조직해 자율심의기구 설립 방안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앞으로 과제는 문화부에서 요구한 수준을 어떻게 맞출지가 관건이다. 또 메이저 업체와 중소 업체 간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할지도 중요한 문제다. 특히 심의수수료에 대한 업계 간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게임업계가 경제적인 부담을 감수하지 않는 한 자율심의기구의 출범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덩치 큰 메이저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재정을 부담해야 하는데 모두가 ‘발등의 불’을 끄느라 급급해 여유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관계자들은 이렇게 될 경우 게임등급심의 업무가 공중에 붕 떠버리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동안 등급심의업무를 맡아왔던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존속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인 탓이다.  
황승흠 국민대 교수는 “자율심의로 가면 수수료를 인상할 수 밖에 없다”며 “다만 수수료 인상에 있어 중소기업 지원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메이저 업체와 중소업체 간 심의수수료 비율이 똑같았다. 심의건수가 많을수록 수수료 부담이 증가한 셈이다. 이에따라 등급심의업무가 민간에 이양되면 등급수수료 정책을 업체별로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더게임스 김성현 기자 ksh88@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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