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블 뉴웰. 그가 새삼스럽게 언론에 회자되고 있는 것은 최근 국내 최대 게임업체인 넥슨의 김정주 회장이 인수 의향을 표명해 관심을 모은 미국 밸브코퍼레이션의 설립자이자  주인이기 때문이다. 

 게이블 뉴웰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둔 뒤 친구인 마이크 해링턴과 함께 밸브소프트웨어란 회사를 창립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가 잘 나가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사표를 내고 회사를 만든 배경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35세의 그가 회사를 관두고 밸브사를 창립한 데는 당시 신기루처럼 불어 닥친 실리콘 벤처 바람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어찌됐든 그가 만든 밸브사는 ‘하프 라이프’란 게임을 선보임으로써 세상에 비로소 이름을 알리게 된다. 정확한 표현을 빌면 이 게임 하나로 게이블과 밸브사의 존재감을 한껏 심어준 것이다.

그의 밸브사는 이후 FPS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카운트스트라이크’를 시장에 선보임으로써 사실상의 터전을 다지게 된다. 

  그러나 밸브사의 힘은 단지 유명 타이틀 발매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엔진기술과 이를 집대성하는 힘은 밸브사를 따를 경쟁사가 없다고 할 만큼 가히 발군의 역량을 보였다. 

 더욱이 유명타이틀로 기억되는 게임들 대부분이 모드게임이었는데, 이를 상품화해 성공한 것은 높은 친화력을 전제하지 않고선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만 했다. 이후 사명을 밸브코퍼레이션으로 바꾼 게이블은 엔진 개발에도 주력, 스팀이란 뛰어난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밸브코퍼레이션은 좋은 회사이지 덩치가 큰 메이저급은 아니다. CEO인 게이블도 큰 회사보다는 자존감을 느낄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기회가 주어질 때 마다 이를 강조해 왔다.

 넥슨 김 회장의 언급은 이같이 밸브사와 같은 좋은 기업이라면 인수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밸브사를 정말 인수해 보겠다는 것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정작 당사자인 밸브사는 회사를 매각하거나 지분을 넘길 의향이 없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넥슨과 양대 진영 수장으로 불려 온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이 최근 대한민국 게임대상 시상식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지분 매각에 대한 소회를 밝히면서 김정주 회장과 큰 그림을 도모한 것이 넥슨에 지분 매각을 추진한 결정적 요인이 됐다는 얘기를 소개해 주목을 끌었다. 

 이를 놓고 추론하면 김 회장의 밸브사 인수의향과 이에 대한 언급은 그냥 한 소리가 아니었으며, 당시 협상 과정에 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즉 밸브사를 인수하려 했는데 상대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시사점은 좋은 기업을 인수해 더 좋은 기업으로 만들고 성장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인수합병을 통해 더 덩치가 큰 기업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태도와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기업이란 추상적인 단어는 분초를 다투며 시장 경쟁을 치르는 기업에는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일 수 있다. 또 세금만 잘 내도, 혹은 고용 창출한 것만으로도 스스로 좋은 기업이라고 자부하는 기업인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그 기준을 가져다 대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해당 산업으로 제한해 렌즈의 초점을 맞췄을 때는 사정이 다르다. 산업에는 나름대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기업을 인수해 더 좋은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데 나쁘다 할 수 없다. 

 하지만 인수합병이 오로지 덩치를 키우기 위한 시도라면 그 것은 산업에도, 민생에도 결코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동의할 수 없다. 특히 엔터테인먼트산업에서의 대기업은 좋은 기업으로 장수하거나 성공한 사례가 없고 한국산업 실정에도 맞지 않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 대표적 사례는 잘 나간다고 하는 액티비전블리자드의 모회사인 비벤디 그룹이다. 이 회사는 인수합병을 통한 구조조정 속에서도 계속 허우적거리고 있다.

EA의 사정도 엇비슷하다. 규모만 컸지 속빈강정이라는 것은 주식시장 주가가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이 뿐인가. 이른바 영화 메이저들의 처지도 비슷하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버티고 있는 것은 금융시장에 맡겨놓은 담보같지도 않은, 예컨대 끄떡 잘못하면 함께 줄 도산할 수 있다는 협박용 무기만 있을 뿐이다. 

 더욱이 우리나라 시장 상황을 통해 반추해 보면 엔터테인먼트 기업군 내 대기업형은 마치 안 맞는 옷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그나마 퍼블리셔를 포함한 유통은 일정 규모에 올라서야 한다는 데 동의할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으로 대기업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옳다 할 수 없다. 

 좋은 기업 만들기. 그 일이 덩치만 키우는 것이라면 잘못 들어서는 길이다. 오히려 잘 하는 걸 더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기업, 경쟁력 있는 기업을 만드는 첩경이 아닐까. 덩치만 큰 기업이 좋은 기업, 성공한 기업은 아니다. 

 밸브사의 성장 사례는 그 때문에 게임업계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다.

[모인 편집국장/ 건국대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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