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CEO들의 공통된 말은 지금보다 예전의 그 시절이 좋았다는 것이다. 이 말 속에는 복합적인 뜻이 담겨져 있다. 과거보다 못하지만 그럭저럭 괜찮다는 뜻과 절대적 박탈감에 의한 후회와 회환의 뜻이 갈무리 돼 있는 것이다. 여기서 후자의 의미로 오늘을 바라본 것이라면 내일을 장담할 수 없지만 전자의 경우라면 고무적이고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중견기업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중견기업의 몫과 역할이 점차 줄어들고 사라지고 있느냐에 대한 명확한 답을 구해야 한다. 그렇지만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게임시장에서 중견기업의 롤이 분명히 있고, 그 역할은 메이저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국내 게임시장은 중견기업들이 떠받쳐 왔다. 메이저들이 수요를 창출한 다며 집안 살림에 신경 쓰지 않고 밖으로 나 다닐 때 이를 뒷받침해 온 이들이 다름 아닌 중견기업이라고 불리는 바로 이들이다. 

 그들의 수도 많지 않다. 엠게임 한빛소프트 YD온라인 드래곤플라이 그리고 엘엔케이로직 코리아 웹젠 라이브플렉스 정도다. CJ는 최근 어정쩡한 위치에 처해 있지만 곧 자신의 자리를 되찾아 갈 것이 거의 확실하고, ‘크로스파이어’의 스마일게이트는 매출 규모로는 중견기업을 능가한다. 그렇게 쳐도 그 수를 헤아려 보면 초라하기 그지 없다. 

 그나마 내실만이라도 튼실해야 하는 데 이마저도 장담하기 어렵다. 메이저들이 저질러 놓은 정부 규제책에 끼이고 메이저들의 거침없는 자금 공세에 차이고 있는 게 중견기업이다.
 그래서 변변한 작품조차 내 놓지 못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마케팅도 눈치보며 치러야 했고 이도 저도 어렵게 되자 그 하찮다는 웹게임에도 손을 대 봤지만 재미를 보지 못했다. 

 중견기업 CEO들의 한숨은 여기서 시작되고 있다. 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을 찾고 있는 건 중견기업들 뿐 아니다. 버거운 경쟁상대자인 메이저의 처지도 다를 바 없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중견기업들에는 메이저와 다른 경쟁력이 있다는 점이며 몫과 역할 또한 크게 다르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견기업의 경쟁력은 우선 메이저와 다르게 유연성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이미 일부 메이저들은 공룡기업이 됐다. 동작이 느리고 결정력도 예전과 다르다. 오로지 많은 유저만 울타리 안에 모아 뒀을 뿐이다.

 반면 중견기업들은 판단이 빠르고 의사결정 과정 또한 신속하다. 싱싱한 생선을 빨리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는 콘텐츠 사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경쟁력이다. 괜찮은 작품만 제대로 만들고 이끌어 낸다면 충분히 겨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잘 달리지도 못하는 공룡기업 따라 하기를 무심코 흉내 내 왔기 때문이다. 또 블루오션을 찾아야 했는데 레드오션을 찾은 것이다. 특히 작품 성격은 헤아려 보지 않고 무조건 대작 위주로 작품 개발에 나선 것이 뼈아픈 일이 됐다. 그러다 보니 수익보다는 비용 지출이 더 많아지는 등 손익 구조를 크게 손상시키는  화를 불러왔다.

 결국 중견기업에 대한 비전이 흐린게 아니라 전략 수립에서 엇 나 간 셈인데, 이러한 필패 전략을 지금까지도 버리지 못하고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중견기업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답이 보이지 않은 것이다.

  중견기업은 많을수록 좋다. 시장규모로 보면 메이저는 4~5개사면 적당하다. 지금처럼 제몫을 하지 않는 메이저라면 10개가 있어도 소용 없겠지만, 시장유통 질서를 지키기 위해선 많으면 많을수록 계산이 복잡해 지고 손해만 난다. 

  그러나 중견 기업은 그렇지 않다. 많으면 많을수록 시장은 튼실해 진다. 

  이로 인해 산업구조를 바꾸기 위한 기업 순환 움직임이 꾸준히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중견기업은 메이저가 되기 위해 치고 올라가고, 중소 개발사들은 중견기업으로 발돋움하려는 기업 순환 구조를 촉진, 산업의 역동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중견업체들은 그렇게 치열한 과정을 겪지 않았다. 어찌하다 보니 동선이 그어지고 그 역할에 충실해 왔을 뿐이다. 서로 치열하게 치고받는 등 선의의 경쟁도 제한적이었다.  말 그대로 뜨겁게 타 올라야 하는데 열정만 담은 마음 뿐이었다.   

 중견기업의 역할은 막중하다. 개발사를 이끌고 또 한편으론 침체된 시장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시장 환경 변화가 뚜렷하다.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찬란했던 과거사 타령만 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한 상황을 맞고 있다. 다행스러운 건 그나마 시장 외적인 요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하기 나름이라는 것인데, 그 큰 물줄기의 기류가 그다지 낯설거나 부정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그 때가 좋았다고? 하지만 미래의 게임시장이 더 좋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게임시장을 살펴보면 블루오션이란 이름의 미 개척지가 수두룩하다. 때마침 새로운 기류까지 밀려들어 오고 있다. 그 것은 대기업이 맡아 수행할 영역이 아니다. 오로지 중견 기업만이 할 수 있는 몫이다.  

  중견 기업 시대. 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도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또다시 게임의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고 있고, 그 성패의 향배가 안주하는 기업보다 유연성이 뛰어난 기업에 유리하도록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게임스 모인 편집국장/ 건국대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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