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하긴보섬(William Higinbotham). 그의 이름은 낯설지만 게임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인류 최초의 전자 게임인 테니스 게임(Tennis Or Two)을 만들어 게임의 아버지란 소리를 듣고 있다.

그가 만든 테니스 게임은 이후 상용 게임의 시초라 불리는 아타리사(Atari)사의 ‘퐁(Pong)'게임에 모티브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큰 관심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월리엄 하긴보섬은 전문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다. 그는 미국 코넬대학 출신으로, 미 국방성에서 추진한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인 ‘맨하탄’ 관련 사업에 참여한 물리학자였다.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 제어 부문의 회로 설계를 맡았던 그는 이 프로젝트가 성공리에 마무리되자 곧바로 뉴욕주에 있는 부룩 헤이븐 연구소로 자리를 옮긴다. 

 부룩 헤이븐 연구소는 자기 부상열차의 기본 개념을 세계 최초로 정립한 미 국립기관으로, 초전도체 등 사회 간접자본 프로젝트를 전문으로 수행하는 연구소로 잘 알려져 있는 곳. 그는 여기서 최초의 전자 게임을 만들어 냈다.

 그가 전자 게임을 만들 생각을 한 것은 연구소에 견학자들이 많이 찾아오는 데서 출발했다. 지루한 시간을 대기해야 하는 견학자들에게 좀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그 무엇, 그 어떤 꺼리를 제공해 줄 수 없을까 고민하던 그는 오실로스코프를 이용한 테니스게임을 구상하고 만들어 낸 것이다. 

 
 그의 이런 엉뚱한 제품 개발과 발상은 그가 단순히 견학자들에게 재미를 안겨주기 위한 것 만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훌륭한 학문과 기술은 인류 발전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는 자신 소신과는 달리 과거 전력이 지워지지 않았고 그 회한과 아픔이 가슴 속 깊숙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는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그는 고통스러워 했던 것이다. 

 그는 게임을 개발하고 선보인 이후 게임시장의 무한한 가능성과 게임이 인류에 미칠 엄청난 영향력을 전망하기도 했는데, 주목을 끄는 것은 그런 부가가치와 시장 가능성에도 자신의 신념 때문이었는지 특허를 신청하지 않은 것. 요즘 눈살 맞게 특허 전쟁을 벌이고 있는 스티브잡스의 애플과는 사뭇 다른 생각과 판단을 했던 것이다.

 때 아니게 그의 이름을 불러내고 그를 언급한 것은 게임이 첫 만들어져 나오던 때와 너무나 다른 평가를 받고 있는 오늘날의 게임판 때문이다. 아마도 애플과 같이 특허 전쟁을 벌였으면 그는 이 시대 최고의 갑부 반열에 섰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는 그러한 족쇄를 달지 않았고 손발조차  묶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게임을 통해 실현해 주기를 바랬다.
 

 그런데 지금의 게임판은 어떠한가. 부끄럽다 못해 수치스러울 때가 많다는 게 뜻있는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이를테면 보편적 가치실현은 둘째 치고 게임의 역기능으로 사회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점 한 가지는 그러함에도 부끄러워하거나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는 커녕, 그럴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의 질타가 쏟아지면 겨우 그냥 하는 정도의 시늉일 뿐이다. 자발적이고 시스템으로 진행되지 않고 즉흥적이고 일시적인 것으로 이뤄지고 있으니 게임판을 곱다고 볼 수는 없었을 터이다.
  
 월리엄 하긴보섬. 그의 얼굴이 새삼 떠오르는 것은 자신의 전력에 대한 반성을 놓치지 않고 인류에 보탬이 되는 이기 개발에 고민했던 그의 사상을 게임계가 반추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결과적으로 보면 게임으로 인해 우리 주변 청소년과 아이들이 과몰입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았지만 그런 현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과 청소년과 학생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구도자처럼은 아니어도, 게임계가 높은 도덕성은 보여줘야 하고, 그런 사회적 책임을 통렬히 느껴야 한다는 점이다. 도서관을 찾아 책을 기증하고 결식아동들에게 나눔의 사랑을 베풀고, 소외된 이웃에 대한 도움의 손길도 그 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게임계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게임이다. 예컨대 본전을 다 뺀 게임을 무료로 제공할 수는 없는지, 또 그렇게 줄기차게 업데이트를 하면서 까지 어린아이들을 게임에 묶어둬야 하는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처럼 오락용 게임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해되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기능성 게임, 교육용 게임을 충분히 만들 수 있고 보급할 수 있다. 하지만 결단코 안한다. 그저 몇몇 업체서만 관심을 보일 뿐이다.    

 게임이 사회로부터 격리당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말 그대로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여가를 제공하고 재미를 안겨주는, 영화 등 경쟁 미디어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이 게임에 대해 사시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면 게임계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게임계여, 과연 당당한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여했으면 하는 월리엄 하긴보섬의 뜻과 바람을 게임계가 결코 잊지 말았으면 한다.

[모인 편집국장 / 건국대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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