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계가 외화내빈의 현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산업계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주변인들은 내수도, 수출도 꾸준한데 무슨 소리인가 하고 되묻겠지만, 속을 뻔히 들여다보고 있는 업계 전문가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산업계가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산업의 숲을 들여다보면 하늘로 치솟은 몇 그루의 나무가 전부다. 그나마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숲을 이루는 잔디와 묘목들은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이러다가 숲은 끝내 사라지고 민둥산으로 변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대한민국 게임산업계가 불과 몇 년 사이 이렇게 됐다.

산업의 젖줄이 돼 온 정부의 정책자금이 허투루 쓰여 지면서 숲속 계곡물이 마르기 시작했고, 산업계가 생태 환경을 외면하면서 중소업체들이 설 땅을 잃어버렸다. 쓸만하다 싶은 재목은 닥치는 대로 베어 가거나 자기 정원에 옮겨 심었다. 야생의 성을 잃어버린 정원의 나무는 번식력을 상실했고, 베어진 나무는 생명력을 잃은 채 그 나무를 벤 사람의 장식장이 되고 말았다.  

 또 이 시기, 우연찮게 전문 경영인들이 산업계 전면에 많이 나섰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후일 다시 재론해 봐야 하겠지만, 엔터테인먼트계, 특히 게임산업계에 전문 경영인이 필요한지의 여부와, 과연 그들이 제 몫을 제대로 했는지를 반드시 따져 봐야 할 것이다. 

 이들의 관심사는 산업보다는 금융시장의 목소리였다. 게임유저보다 증권가 사람들이  더 긴요했고, 게임 트래픽도 그 것이지만, 금융 시장 반응에 더 민감했다. 어떻게든 빨간색의  아라비아 숫자를 붙들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금융시장의 논리와 산업계의 생존 방식이 다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같다고 할 순 없다. 

개발비는 콘텐츠 기업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투자임에도 금융시장에서는 비용이다. 더 나가서는 재고이며, 제대로 론칭을 못할 땐 악성 재고로 산정될 수 있다. 작품 소싱(구매)도 마찬가지다. 대차대조표 상 오로지 재고일 뿐이다. 회사의 미래가치를 염두에 두지 않고 물리적 현상과 수치에 의해 기업의 가치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즉흥적이고 단기적인 성과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반면 산업계의 생존방식은 끊임없이 개발하고 무엇을 만들어야 숨 쉴 수 있는 구조다. 수치적 논리로 보면 상상할 수도, 일을 할 수 없다. 금융시장에서는 최대 최소한도가 그어져 있지만, 산업에는 그 한도의 범위가 없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즉, 100만원의 개발비를 들였지만 100억원의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고, 1억원의 가치를 지닌 작품이 10원이 될 수 도, 그 이하가 될 수 도 있다. 그 것이 다름 아닌 산업계의 법칙이다. 장기적이며 수요 예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판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늘 크다.

  그동안 몇 년사이, 게임산업계를 지배하고 주도해 온 게 산업적 관점의 논리보다 금융시장의 목소리가 아니었는지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근거로는 장르의 획일화와 안정적인 작품 기획, 그리고 고착화한 퍼블리싱 구조를 꼽을 수 있다.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들은 모두 모험보다는 안정을 꾀하고, 시험적 도전을 하지 않음으로써 기업에 안겨줄 리스크를 최소화한 것이 특징이다. 결국 고만고만한 작품으로 연명하고, 투자도 하지 않으며, 새로운 인재들 조차 발굴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작금의 게임산업계가 딱 그 모습이다.

‘시나브로’란 우리말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이란 뜻의 부사다. 긍정적인 뜻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게임산업계가 그렇게 ‘시나브로’란 뜻 그대로 조금씩 조금씩 허물어져 내린 것이다. 
 
금융시장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시장이 왜곡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상당부문 그 논리를 시장의 바로미터로 사용한 이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일반 제조업처럼 성상이 많이 쌓인 곳이라면 유연성을 발휘해 고비를 넘길 수 있었겠지만 게임업계는 말 그대로 일천한 역사를 가진 곳이다. 금융시장 반응에 전전긍긍할 수 밖에 없고, 그럴 수 밖에 없었을 터이다. 문제는 이를 악의적으로 이용한 이들과 꾼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산업계 생존 방식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지금처럼 획일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작품으론 시장을 견인할 수 없고, 그 잘난 안정적인 기저의 목소리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렇기 위해선 묘목부터 다시 키우고 가꾸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유저의 눈높이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과감한 도전을 시도해 봐야 한다. 이런 노력 없이는 치유될 수 없다.  게임업계는 지금 중병을 앓고 있다. 
 
언필칭, 지금 게임산업계에 필요한 절대적 가치는 안정적인 시장 흐름 보다는 보이지 않는 묘목과 그 수요를 찾는 일이며 그런 노력을 처절하게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업계의 외화내빈 현상은 결코 쉽게 걷히지 않을 안개가 확실하다. 이를 구조적으로 풀수 없다면 중대 결단을 통해서라도 풀어야 한다. 더 이상의 금융시장 논리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모인 건국대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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