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의 지분 매각은 가히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멘탈 붕괴 수준이다. 이같은 반응의 배경은 이렇다. 도대체 김 대표 주변에 무슨 변고가 생겼느냐는 것이며, 좀 더 들여다보면 김 대표의 지분 인수를 추진한 넥슨의 김정주 회장과 김 대표 간 무슨 언약이 있었길래 이같은 전격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확실한 건 김 대표가 자신의 지분 14.7%, 금액으로 환산하면 800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넥슨에 넘긴 것 외는 아무 것도 없다. 넥슨과 엔씨소프트측이 동시에 밝혔듯이 전략적인 협업을 위해 양사가 결단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김택진, 김정주, 이 두사람의 상징성은 대한민국 게임계를 대표하는 인물일 뿐 아니라 온라인 게임산업을 일군 장인이라는 점에서 아주 특별할 수 밖에 없다.

한 사람은 ‘바람의 나라’ 라는 게임을 가지고 그래픽 온라인게임의 새 장을 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리니지’를 통해 온라인게임이 산업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인물이다. 또 두 사람은 앞서거나 뒷서거니 하면서 선 후배이자 동료로서, 때로는 경쟁관계의 기업인으로서 서로 마주해 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성향은 비슷해 보였지만 달랐다. 한 사람은 완전히 은둔형의 경영인이라면, 다른 한 사람은 낯가림으로 인해 산업 전면에는 나서진 않았지만, 시의 적절한 화두를 던지면서 현업에 발을 디뎌 왔다.

또 한사람은 유유자적, 풍류를 즐기는 편이지만, 다른 한사람은 세속보다는 동료 후배들과 일에 몰두 하는 스타일이다.

 

그 때문인지 주력 분야도 달랐다. 김 회장은 캐주얼게임 분야에 힘을 기울여 온 반면, 김 대표는 캐주얼보다는 RPG분야에 매달려 왔다. 그림으로 치면 김 대표가 화려한 필봉을 자랑했다면, 김 회장은 순수미술보다는 응용 미술 분야에 더 관심을 가져왔다 할 수 있다.

그런 두 사람이 협업과 전략적 제휴란 수사를 내세워 순혈주의의 질서를 파괴해 버렸다. 그리고 함께 협력해 더 큰 그림을 그려 나가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이를 지켜본 이들이 패닉상태에 빠진 것도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바로 이 두 사람이, 절대 섞일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온라인 게임산업을 일군 그 때, 그 심정으로 돌아가, 또다시 일을 만들겠다며 초심과 일성을 강조하고 나선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왜일까.

게임산업계 양대 진영이라고 불려온 두 기업의 협업이란, 그 믿기지 않는 단어보다, 두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만나 ‘도원결의’를 맺고, 이를 실천할 밑그림을 그렸을 터인데, 이를 꼭꼭 숨겨 놓은 채 보여주지 않는 데 따른 것이다.

엔씨소프트의 입장을 보면 힘을 충전하기 위한 재원이 부족하거나, 당장 급전이 요구되는 사정도 아니다. 곧 ‘블레이드&소울’이란 대작을 선보일 예정으로 있다. 시장 반응도 매우 긍정적이다. 그런데 지분매각이 이뤄진 것이다.

그나마 넥슨측 입장에서 보면 엔씨소프트보다 투자 명분에 설득력이 있다. 중기적으로 캐주얼게임으로 시장을 주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일본상장을 통해 마련해 놓은 1조5000억원의 자금은 써야 한다. 가둬 놓기에는 아까운 돈이다. 그러나 일본은 금리가 제로다. 쟁여 놓고선 아무 쓰잘 데가 없다. 게임시장의 환경은 점차 성인층으로 넘어가고 있다. 따라서 넥슨에 입장에선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에 서 있었다는 점에서 엔씨소프트에 대한 지분 투자는 결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손익계산서를 놓고 볼 때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보고 있는 기업은 분명 엔씨소프트다. 지분 매각도 헐값이라는 지적까지 있다.

그렇다면 김대표가 이를 몰랐을까 하는 점이며, 이를 간과하면서까지 받아들인 또다른 사연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양측이 멘탈 붕괴 수준에 이른 시장 분위기를 달래 줄 새로운 빅카드를 서둘러 꺼내 들지 않을 경우, 넥슨보다는 엔씨소프트가 불리해 지고, 더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시장에선 결코 두 개의 태양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같은 양사의 불확실한 관계 구도를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게 뻔하며, 이를 잠재우지 않을 경우 더 큰 혼란을 야기할 것이란 것이다.

 

‘Winner Take All’ 이른바 승자 독식이란 논리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할 지라도 시장에선 벌써 그런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것은 다 그 때문이며, 힘의 쏠림 현상에 의한 엔씨소프트의 흠집 내기는 앞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청사진을 서둘러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다. 그 것이 시장을 안정시키고 양사의 발전적 융합(Convergence)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첩경이다. 그나마 업계와 시장에서 나름 의 평가를 유보하고 있는 것은 다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룬다면 한쪽은 자칫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예컨대 현재의 상황은 한쪽에는 반전의 카드가 없는, 결정적인 국면을 맞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할 것이다. 엔씨소프트여, 진정 순혈주의를 저 버리고 시장에서 견딜 수 있는가.

 

[더게임스 모인 편집국장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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