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의해 줄 서기를 당하는 일 만큼 불쾌한 게 없다.

 

좋은 일도 그렇지만 나쁜 일로 줄을 서게 되면 더 그렇다. 어떤 이들은 긴장 초조, 더 나가서는 공포감까지 느끼게 된다고 의학계에서는 지적하기도 한다.

 

줄세우기는 같이 어울려 다닌다 하여 패거리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굳이 무리라는 단어를 두고 패거리라는 명사를 끄집어 쓰는 이유는 이 단어 역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줄을 세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때 우리 영화시장이 외화로 얼룩지던 80~90년대 시절, 워너브라더스, 콜럼비아트라이스타, 20세기폭스 등 이른바  외국 직배 영화사의 콧대는 가히 하늘을 찌를 듯했다.

 

직배 영화 상영이 바로 극장 수익과 직결되는 수익구조로 인해 극장주들이 마치 주인 모시듯 이들을 떠받들었다. 어쩌다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대작을 들여올 때 쯤이면 직배 영화사 사무실은 이들에 의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비디오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직배 영화의 비디오를 판매해야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었기 때문에, 연말 판권 계약 시기가 되면 대기업을 비롯한 중소 비디오 전문업체들의 판권경쟁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만큼 치열했다. 말 그대로 첩보전쟁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이같은 줄서기는 그나마 생산적인 목적을 두고 하는 일인 만큼 이로인한 스트레스가 화로 치닫지는 않는다.


그러나 죄 없는 사람이  동일선상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패거리로 몰려 예외 없이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땐 얘기는 달라진다. 맞는 고통보다 억울함과 비분함이 뒤섞여 끝내는 병을 얻고 만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게임계에 불어닥친 게임 과몰입의 문제점과 그 처방전에 대해 끊임없이 말들이 쏟아지고 논란을 지피고 있는 것도 다름 아닌 업계를 때 아니게 패거리로 몰아 붙인 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좋은 일에 줄을 세워도 시원찮을 판에,  게임을 사회의 악으로 규정하고 몰아붙이는 분위기속에서 게임업계를 단지 문제를 일으킨 업자와 같은 동일선 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패거리로 싸잡아 끄떡하면 반성문을 쓰게 한 것은 정부의 결정적인 패착이다.


더욱이 자신들에게 가당치도 않는 처방전을 문제의 업자와 함께 상시 복용하라고 함으로써 초록은 동색이 아니냐는 세상 사람들의 의심을 사게 됐고, 결국 업계가 결정타를 맞게 됐다.

 

쉽게 표현하면 넥슨이 세간의 문제를 일으켰고, 그 중심에 서 있는데 왜 엄한 이들까지  불러들여 함께 단죄하며 깔아 뭉겼는지 이해할 수 없다. 수혜나 각종 혜택은 넥슨이 누리고 게임업계는 넥슨의 뒤치다꺼리를 한 셈이 되고 만 것인데, 어떻게 이런 것마저 줄을 세운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로인해 문제풀이가 더 복잡하고 난해졌음은 물론이다. 즉 아주 제한적이고도 국지적 문제가 될 뻔한 일에 패거리라는 이름으로 업계를 모두 불러들이고 줄을 세움으로써 사회의 현안으로 만들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아 싸움의 의미는 퇴색하게 됐고, 게임을 보호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던 이들마저 왜 이렇게 몸부림쳐야 하는지, 과연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끝내 회의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을 게 분명했다.

 

정부가 단순하고 명쾌하게 이 문제를 정리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학교 폭력 뒤에 게임이 도사리고 있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인과 관계다. 그러나 상당수 학생들이 게임 과몰입 상태에 있고, 그 배경엔  ‘메이플스토리’란 게임이 있다고 했다면 문제는 쉽게 풀렸을 게 분명했다.


해당 게임의 제작사를 불러들이고 이 회사의 게임이 청소년들에게 많이 노출되는 것을 막으면 될 일이었다. 이도 부족하면 청소년들의 접근을 원천봉쇄 하는, 이 작품에 대한 셧다운제를 시행하면 됐다. 그도 불안하다면  업데이트를 제한하고 이벤트를 하지 못하도록 초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 도 있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동업자라는 이름으로 파당을 만들고, 패거리란 이유로 게임업계를 한 뭉텅이로 솎아 버렸다.


셧다운제가 전 작품에 걸쳐 시행토록 했고, 전체이용가 게임을 서비스하지 않는 업체들까지 된서리를 맞게 했다. 또 정부의 대책 회의란 데는 패거리란 이유로 끊임없이 불려 나가야 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 기업과 그 기업 게임 때문에 불려 다니는 게 억울하고 괘씸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는 한 게임업체 CEO의 토설은 결코 그 만의 하소연으로 들려오지 않았다.


결국 게임이 유해 매체에 버금가는 엔터테인먼트 장르가 됐다. 그러나 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게임과 그 업체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근 이 문제의 기업이 이웃한 게임업체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외국기업 타이틀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정말 한심스런 작태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동종업체란 사실이 참 부질없다 느껴진다. 더 이상 패거리로 묶고, 동업자란 이름으로 줄을 세워 길을 들이려 해선 곤란하다. 그건 결코 원칙에도,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또다시 그렇게 줄을 세우려 한다면 그땐 거센 저항의 액션이라도 보여주면서 부당하다고 표현해야 옳지 않을까. 왜 게임계 모두를 싸잡아 탓하는 것인가.

 

[더게임스 편집국장 모인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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