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인력 등 선결과제 수두룩…준비 안되면 게임위가 담당

 

오는 7월 1일부터 일부 게임에 대한 민간자율심의가 이뤄지도록 됐으나 3개월이라는 짧은 준비기간과 예산과 인력 등의 문제로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게임업계에서는 오랫동안 게임등급심의를 민간기구에서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해 왔다. 그리고 그 바람대로 오는 7월부터 민간자율심의기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법이 만들어졌어도 이를 주도해야 할 게임업계의 준비가 지지부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최근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과 아케이드 게임을 제외한 모든 게임물의 연령등급심의를 민간기간에 이양하는 것을 골자로 삼은 게임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7월 1일부터 일정 요건을 갖춰 문화부 장관에 기관설립을 신청해 허가받을 경우 게임심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7월부터 민간심의기구가 발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관을 설립하기 위한 인력과 예산, 그리고 전문성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 준비 기간 너무 짧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의 준비상황을 봤을 때 3개월 후에 민간자율심의기구가 발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 이유는 시간과 돈, 그리고 인력 등 핵심 요소들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게임에 대한 심의가 민간으로 이양되면 게임위는 청소년 이용할 수 없는 모든 플랫폼의 게임과 아케이드 게임물 심의를 담당하게 된다. 산술적으로 게임위 전체 업무의 60% 정도가 민간단체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문화가 입법예고한 게임산업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민간심의기구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7개의 조항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 중 핵심은 문화산업, 청소년, 교육, 게임, 정보통신, 언론 등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7인 이상으로 구성된 민간자율등급 분류기구를 갖추고 게임물 등급분류 업무지원을 위해 사무국장 1인과 등급분류 업무 경험이 있는 3인을 포함해 6인 이상으로 구성된 사무조직을 구성하는 것이다. 또 3년간 기관을 운영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먼저 3개월이라는 준비기간이 너무 짧다고 지적한다. 3개월 만에 게임위가 수년 동안 맡았던 등급분류 업무를 전문성이 부족한 민간단체에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또 기관을 운영하려면 적어도 20억 이상이 예산이 필요한데 문화부와 게임산업협회 등에서 이 부분에 대해 아직도 준비를 못하고 있는 상태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정교하게 구성되는 온라인과 콘솔, 모바일 등급분류를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전문지식을 갖춘 심의위원이 필요한 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 예산확보 나 몰라라


민간단체 선정을 앞둔 지금 가장 큰 걸림돌은 ‘예산 확보’다. 문화부는 입법예고안을 통해 민간단체에 지원하는 자격 요건으로 ‘3년간의 기관운영에 필요한 적정한 자금을 확보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다시 말해 문화부는 예산 쪽에서는 한발 물러서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간기구에서 알아서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데 게임산업협회의 경우 이 문제에 대한 아직까지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김성곤 게임산업협회 사무국장은 “민간기구의 설립에 관해서는 지금 아무런 입장도 정해진 것이 없다”며 “민간기구설립 추진단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안건들이 논의될 예정”이라고만  말했다.


현재 민간기구가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은 심의수수료 외에는 없는 상태다. 심의수수료란 게임을 의뢰한 업체로부터 게임위가 받는 일종의 행정 비용으로 PC게임의 경우 24만원이다. 최근에는 모바일 게임의 자율등급이 늘어나고 있어 심의 건수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게임위 관계자도 “심의수수료만으로는 절대 단체를 운영할 수 없다”고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건물 임대료, 직원들 연봉, 그 외 들어가는 비용을 따져 봐도 최소 20억은 돼야 민간기구를 운영할 수 있다”며 “가장 시급한 일이 예산 확보인데 어느 부처에서도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 갈수록 정교하게 구성되는 온라인 게임물을 민간단체에서 등급을 분류하며 업무를 맡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게임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온라인 게임물은 전문가조차 쉽게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때문에 게임위도 의뢰가 들어오는 게임물을 며칠 동안 자세하게 뜯어보고 살펴봐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얼핏 보면 정상적인 게임물 같아도 속을 보면 사행성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심의를 쉽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새롭게 등장한 패턴과 시스템으로 단속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게임업계가 이번 민간단체 이양을 기회로 불법 게임물이 극성을 누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 게임위의 깐깐한 심의 절차에 유통시키지 못했던 게임을 다시 출시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게임위측도 이 부분을 걱정했다. 한 관계자는 “정부에서 결정한 사항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게 맞지 않지만 사실 게임물 등급분류가 심히 걱정스럽다”며 “관리가 허술한 민간단체가 제대로 검사하지 못하고 사행성 게임물을 유통시켜 사행성이 난무하는 게임들이 활개칠 수도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게임위 인물들이 대폭 민간단체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게임위 위원을 제외하고 등급분류를 해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전문성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문화부가 게임위 핵심 인물을 민간단체로 보낼 수도 있다”고 했다.

 

# 올해 안에는 출범시켜야


7월 이전에 민간 자율심의기구가 출범하지 못할 경우 청소년게임 등에 대한 심의는 종전과 같이 게임위가 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올해 말까지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지난 해 게임법을 개정하면서 게임위에 대한 예산 지원 시한을 2012년 말로 못 박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문화부측은 7월 1일은 행정절차가 마무리되는 날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쉽게 말해 무조건 시행일부터 업무가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민간기구 설립을 위한 모든 준비가 마무리 된 이후가 실질적으로 이 제도를 시행하는 시점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문화부의 게임심의 민간이양 정책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왔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최근 민간 게임물자율심의기구 사무국장직 공모에 나서는 등 조직 구성에 들어간 상태다.

 

[더게임스 최승호 기자 midas@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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