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계가 안팎으로 수난을 겪는 것은 산업이 성숙되지 않고, 문화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사업 특성상 리스크 부담이 절대적으로 크다는 이름아래 앞만보고 달린 까닭이 결정적이다 할 것이다.


 이러한 강박증은 때론 산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안겨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작품에 대한 완벽을 꾀할 수 있다는, 또는 주변을 살펴보지 않고 오로지 한길만 판다는 느낌을 줄 수 있겠지만 자기 외에는 남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는 외고집통으로 비춰지거나, 타인과 어울리지 못할 사람이라고 지레짐작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곤 한다.


 그러다보니 서로 어울리는 일이 거의 없다. 기껏 동문끼리의 만남이 고작이거나 과거 알고 지냈던 직장동료나 상사가 대화 상대의 전부다.

 

이런 관계를 사회 친화적 만남이라고 할 수 없다. 습관적이고 본능적인 만남, 그저 그 것일 뿐이다. 이같은 상황을 가정해 볼 때 산업이 결코 유기적이거나 역동적이지 않다는 걸 단숨에 알 수 있다.


반면 일명 선수라고 칭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이른바 게임계 외부에서 수혈한 사람들을 총칭한 말인데, 일부에서는 이들을 전문경영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들을 불러와 성공한 기업도 있지만 멍든 기업도 적지 않다. 특히 이들 선수로 인해 돈도 잃고 회사 명예와 이미지도 잃어 버렸다고 하소연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애초부터 일회성으로 게임계를 기웃거린 데다 세상물정 모르는 게임계 사람들을 주무르기에는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이들의 이력과 속성은 대부분 명문대 또는 대기업 출신에다 수치에 밝다는 점이특징이다.

 

따라서 결코 손해 보지 않을 뿐 아니라 대차대조표 상 잔고도 좋게 만든다. 그러나 속내를 살펴보면 브랜드와 기업 이미지가 형편없이 망가진  댓가라는 사실을 게임계 인사들은 잘 모른다. 이를 뒤늦게 알고 손을 쓸 때에는 이미 때를 놓친 경우다.


이런 풍토아래 산업이 숨 쉬고 문화가 바로 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인은 뒷짐 지고 있고,  일꾼은 자기 배만 챙기고 있는데, 논밭의 곡식과 채소가 제대로 성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일회성으로 기웃거렸으니 소명의식이나 책임감, 그리고 산업 역사관이란 게 있을 리가 없다.


게임계가 10여년의 성상을 쌓았음에도 나이테를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나름의 문화를 담보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같은 함량 미달의 전문 경영인들과 의식 없는 게임인들이 산업의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게임계가 각종 미디어로부터 수모를 당하고 거침없이 난타를 당한 건 게임계의 자업자득이다.


산업을 제대로 키워왔다면 이렇게 함부로 난도질을 못한다. 아주 힘겹더라도 기업문화를 만들고 산업의 문화를 일구겠다며 자그마한 정성과 성의를 보였다면 그렇게 그들이 무례하게 게임계를 흔들지 못했을 터이다. 그들에게 비춰진 게임계의 모습은 오로지 탐욕에 빠진 우레우스였고, 젊은 스쿠루지의 환생이었을 뿐이다.


 언필칭, 게임계는 게임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고로 개발자와 게임만 즐기는 유저만의 세상도 아닌 것이다. 이를 떠받치고 있는 많은 스텝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곳이다.

 

더 나가서는 더 큰 업종과 이웃, 경제와 사회와의 교류를 통해 지켜 나가야 하는 공간이다. 그 하나 하나의 요소의 높낮이를 구분할 수 없으며, 또한 한 가지라도 빠져서도 존립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게임계는 오직 게임과 돈과 유저들만이 숨을 쉬고 존재했을 뿐이다.


제2의 게임계의 수난시대를 불러오지 않게 하기 위해선 산업과 문화의 지평을 열어야 한다.그 것은 다름아닌 기업의 윤리이고 산업의 법도이며 문화의 자긍심이다.

 

이런 정신적 기반없이 산업적 대우를 기대하는 건 넌센스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지 못함은 물론이다. 이럴 경우 게임이 또 다른 저급문화의 대명사로 불리울 건 명약관화한 일이다.  


기업윤리를 바로 세우고 산업의 법도가 무엇인지를 이번 기회를 통해 배웠으면 한다. 또 한 게임문화를 키우려는 노력도 기울였으면 한다. 올곧은 업계 전문지가 없다는 건 매우 슬픈 얘기다. 그 수난 속에서도 게임계를 대변하는 논객 한사람 갖지 못했다는 것은 뼈가 시리고 아프게 다가온다.
 

게임계가 이젠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주변을 살피고 이웃을 바라보며 함께 달릴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안타까운 점은 변하지 않는 주류들이 문제이긴 하지만, 이젠 정말 그럴 시기가 됐다. 더 밤이 깊어지기 이전에 말이다.

 

[더게임스 모인 편집국장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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