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물등급위원회의 전신인 공연윤리위원회는 ‘고무줄 심의 잣대’ 로 정평이 나 있었다. 어제는 그 장면이 삭제됐는데, 오늘은 무사 통과됐다. 그런데 이날 오후 늦게 제출한 다른 영화의 그 장면은 삭제됐다. 그러자 관계자들은 도무지 공륜의 심의 기준을 종잡을 수 없다며 투덜댔다.  그 당시, 말도 안되는 심의 현실을 비약해서 한 얘기지만, 공륜은 이 문제로 인해 하루가 멀다 할 만큼 문화 연예면에 오르내리는  단골손님이 됐다.


 한마디로 심의 기준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고인이 된 서기원 선생을  우연찮게 만날 수 있었다.  작가이자 방송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그는 당시 공륜 위원장직을 맡고 있었고 , 필자와는 취재원으로서, 또 학교 문제로 교류가 있었다. 선생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공륜의 고무줄 심의 잣대로 모아졌는데,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고, 아무리 기준을 마련해서 시행해도 지켜지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재밌는 사실은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한가지 만큼은 분명했다고 했다. 그 한가지 기준은 매우 엉뚱했다. 시장이 달아올랐을 때는 더 쳐내고, 처져 있을 때는 슬그머니 문제의 장면을 넘어 가자 하더라는 것이다. 또 어려운 영화사에는 ‘배려’를 아끼지 말자는 것이었다.


 황당한 심의 기준이었지만 선생이 위원장을 맡을 때는 심의 기준 보다는 정부 기관에 의해 대중 예술이 재단되고, 심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데 대한 논란이 더 컸다.  


 전체 이용가 게임이 최근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다. 그  한가운데 서 있는 게임업체는 다름 아닌 넥슨이고,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게임은 이 회사에서 만든 ‘메이플스토리’라는 온라인 게임이다. 회원수만도 1000만이 넘는다고 한다. 이 회사의 전체 회원수로 보면 거의 4000만을 육박한다.


 그런데 이 회사에서 만든 상당수 게임들이  전체 이용가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카트라이더’는 어린이들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즐기는 레이싱 게임으로 꼽힌다. 그래선지 건전한 게임을 만드는 게임업체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넥슨이란 기업명 뿐 아니라 이미지도 긍정적이었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이상을 심어 준다는 일본의 닌텐도와 같은 기업이라는 생각도 했을 게 분명했다. 


 이같은 넥슨에 대한 학부모들의 긍정적인 반응은 최근 1∼2년 사이, 싹 바뀌고 말았다.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변하고 말았으니, 냉 온탕을 오고 가고 있는 셈이다.


솔직히 지난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이전부터 시장에선 넥슨 게임에 대해 말들이 무성했다. 그 가운데 어린이들을 게임에 너무 혹사 시키고 있으며,  코흘리개 어린이들의 돈을  남김없이 쓸어간다는  지적이 많았다. 더우기 대한민국 어린 청소년들이 한해 3만원 이상을 넥슨 게임에 헌상한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학부모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결코 많지 않은 어린이들의 용돈 가운데 3만원이면 엄청 큰 돈일 뿐 아니라,  거의 그 돈이 넥슨쪽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놀라움이 분노로 바뀌어 버렸다.


이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말할 것도 없이 넥슨측에 있다. 기업이 아무리 이윤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포켓 머니사업이라 해도, 이는 금도를 넘어선, 맹신의 상업주의가 넘실대지 않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넥슨측에선 아무  말이 없다.  아니, 노코멘트 정도가 아니라 전혀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다. 


 유저정보 유출 파문에 이어 ‘메이플’이란 게임으로 인해  어린 미소년의 자살 사건이 빚어져 온나라가 흉흉하는 등 들썩이고 있는마당에 ,  나는 모른다는 듯이 TV 황금 시간대에 논란의 게임 광고를 선전했고, 일본에선 모기업으로 재포장한 관계사를 통해 기업을 공개했다. 마치 사회정서를 뒤집어 가거나, 반대로 가면 길이 열리는 것 처럼 엉뚱한 짓은 계속 됐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이를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정부, 특히 문화부가 한창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수출시장에서 달러를 벌어 들인다 하니까 무조건 감싸 주기만 했다. 지식시장의 꽃인 콘텐츠 산업의 아이콘이라고 불러 주기만 했지 사후관리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메이저라고 불리는 일부 게임업체들은 자신들만의 풍요로움의 혜택을 즐겼을 뿐인데, 정부는 그들을 위한 부양책만 만지작 거렸다. 그 사이 산업의 중간허리는 붕괴됐고, 영세업체들은 힘에 겨워 주저 앉아 버렸다.


 문화부는 과연 그들을 조율할 힘이 있는가.  버릇없는 건 두 말할 나위 없고, 엉뚱하고 황당한 행태가 계속되고 있는 데도 속수무책이다.  몰지각한 이들로 인해 게임계 전체가 욕을 먹고, 진흙탕물이 되고 있는데도 나 몰라라 하며 뒷짐을 져 왔다.


서기원 전 위원장은 후에 이런 묘한 말을 했다. “이해 할 수 없겠지만 심의로 인해 두드러지게 불이익을 당한 기업은 없었다. 하지만 조금 부족한 기업에는 도움이 되도록 노력했다. 그릇의 물이 차면 다른 부족한 그릇에 물을 담아 주는 식이다. 그렇지 않으면 꼭 찬 그릇들이 말썽을 일으키거나 일을 그르치고 만다.” 당시 공륜의 힘은 절대 권력에 가까웠다. 그런데 아이러니컬 하게도 우리 영화는 그 시점에서 르네상스를 열기 시작했다.


 정부가 물이 넘치는 기업에 계속 물을 퍼붓고 있는게 아닌지 묻고싶다. 그렇게 기울어 있는데도 바로 잡으려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으니까 그 모양이 아닌가. 달아 오른 쪽은 쳐 내고  어려운 쪽은 부양하고 배려하는 정책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런 정책이 이른바 고무줄 정책이라고 불려도 게임계에 네오 르네상스 시대를 안겨준다면  어떻겠는가. 어쩌면 이것이 더 공정한 정책이랄 수 있지 않겠는가.

 

[더게임스 모인 편집국장 inmo@thegames.co.kr]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