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만난다는 건 아주 즐거운 일이다. 이론적으로는 갖추지 않았으나 문제 제기하는 머리와 가슴은 늘 냉철하면서 따뜻하기 때문이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그런 자리를 찾는  이유는 바로 그런 그들의 순수함에 있다.


달포 전 모 대학 강단에 섰을 때의 일이다.  게임계에 롤모델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예상외로 답은 쉽게 돌아 왔다. ‘모르겠는데요’라는 답이었는데, 학생들은 게임산업계의 인물들을 전혀 모르는 듯 했다.


겨우 몇몇 학생 정도가 엔씨소프트의 김택진사장과 엑스엘게임즈의 송재경 사장의 이름을 떠올리며 ‘리니지’라고 했다. 게임은 잘 알지만 게임계를 모르는 학생들의 처지와 속성을 백번 인정하면서도 전공이 게임이면서도 게임계를 파악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무관심에 못내 섭섭하기 까지 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가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고학년 학생들은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는 듯 했다. 게임기업들의 이름이며 대표자, 유명 게임 개발자 등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똑같이 게임계에 롤 모델이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게임계의 여러 인물들이 언급됐다. 김택진, 송재경에 이어 ‘라그나로크’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김학규 , 김태곤 등이 바로 그들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저학년 고학년 모두 롤 모델로 꼽은 인물이 게임 개발자들이었을 뿐 게임 경영자는 단 한사람도 없었다는 점이다. 재미있는 게 아니라 당연한 결과였다.  개발자가 다름아닌 그들의 스타이고 롤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강연을 마친 후 다시 질문한 게임계 롤 모델에 대한 학생들의 기준은 상당히 조심스러워져 있었다. 게임이 개발자에 의해 탄생한 것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됐고, 그 것은 마치 영화처럼 종합예술이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면서 각자 맡은 부문 작업의 긴요성까지 깨닫게 된 것이다.


 연조가 짧은 업종은 안팎으로 예우면에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업종별 서열에서도 옥석 가리지 않고 말석으로 밀리기 일쑤고, 사회적으로도 선호도에 밀려 미운 오리새끼와 같은 취급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임이 그나마 별종 대우를 받지 않는 것은 고부가 가치가 뛰어난 상품인데다 수출시장에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덕분이다.


특히 미운 오리새끼가 아니라 백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스타의 부재 속에서 이 정도로 터를 일구고 가꿔온 것은 게임인들의 피땀어린 노력과 게임에 대한 큰 애정 덕분이다.
롤 모델을 언급하며 존경심을 나타낸다는 것은 그 만큼의 산업 위상도 곁들여져 있음을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또 게임이 예술적 장르이다 보니까 이를 완성한 장인들이 그 롤 모델로 회자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롤 모델이란 것이 아주 제한된 곳에서, 그리고 그마저도 몇몇 울타리 안에서만 오르 내린다면, 그 것은 말 그대로 우물안의 개구리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성과 엄청난 파급력을 지니고 있는 게임계의 현주소가 그렇고 그 정도의 수준에 그치고 있다면 얘기는 심각하다.
앞서 말 한대로 스타의 부재가 결정적이긴 하지만 궤도를 이탈한 톱니바퀴처럼 각자 따로 돌아가면서 힘을 쓰지 못한 때문이  아닌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력해 온 분야는 콘텐츠였고 그 가운데 코어는 게임이었다.  DJ정부 이후 노무현 정권때 까지 게임은 그 우산아래 성장했다. 그같이 열과 성을 다해온 지자체들이 서서히 발을 빼려 하고 있다.  전체 예산이 줄어든 게 아닌데 게임 예산은 감축되거나 아예 항목이 사라진 곳도 있다.


왜 그러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한마디로 돌아오는 게 없다는 것이다. 하필 많고 많은 아이템 가운데 왜 게임이냐는 주민들의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투자하고 힘을 모아왔는데 그 결실은 하나도 안보이더라는 것이다. 지자체 뿐 아니다. 사회 일각에서는 게임이 사회에 안겨준 게 게임 중독과 사행성을 야기한 것 밖에 더 있느냐며 못마땅하다는 투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은 정작 키워 놓으면 함께 나눌 생각은 않고 제 잘났다고 보따리 챙겨 도망치듯 떠나가더라는 것이다.


 강단에서 만난 대학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게임계를 몰라서 롤 모델이 없었던 게 아니라 그만한 사람을 찾지 못해서 롤 모델이 없었던 건 아닌지 헷갈렸다. 또 지자체가 발을 빼려는 게 게임이 고부가 가치가 없는 상품이 아니라, 오로지 물만 부어 주기를 바라는 밑빠진 독처럼, 그들에게 그처럼 이기적인 집단으로만 비춰진 것은 아닌지 고민스러웠다.


그래서 게임하면 인생의 롤 모델 보다는 킥 모델, 즉 게임계의 안티한 모습만 그들에게 투영된 것일까.  순간 절벽에서 떨어지는 듯한 충격이 다가 왔다.
게임계가 이 사회의 킥 모델이라고?      


[더게임스 모인 편집국장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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