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3일은 지금은 정부기념일에서 사라진 학생의 날이었고 동시에 만화인의 날이었다. 이날 이현세, 강풀 등 만화인 400여명이 모여 ‘2011 만화인 선언’을 발표하고, 만화진흥법 제정의 목소리를 높였다. 온라인에서는 지금 만화진흥법 제정 지지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11월 23일 만화진흥법 공청회도 열렸다. 똘똘 뭉쳐 열심히 뛰는 만화인들을 보며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셧다운제 실시를 계기로 다시 돌아본 게임계의 이기적 행태, 최근 굴지의 업체와 PC방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불협화음, 지도력과 권위를 상실한 듯한 게임산업협회의 현 상황 등이 떠오르자 부러움과 한숨은 동시다발로 터져나왔다.


동료, 동지라는 의식은 빈약한 가운데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함의 훈김은 거의 없이 과당경쟁이 판치는 게임업계. 공동대처해도 힘이 모자랄 일에는 눈감고 제 밥 챙기기에만 열을 올리는 선도 업체들. ‘콩가루 집안’이라고 비판을 받아도 묵묵부답인 업계 지도자들. 게임업계는 고려대 강수돌 교수가 말한  팔꿈치 사회의 전형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깊어진다.


 노파심이나 기우(杞憂)라면 좋을 듯한 이런 우려와 조바심은 최근 게임물등급위원회(게임위)의 내년 예산문제와 관련해 조금 발을 담그게 된 경험에서 더욱 깊어졌다. 게임위의 내년 예산책정이 국회 심의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이 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역임한 입장에서 지난 달 관련 의원들을 접촉하고 도움을 청했다.

 

이 과정에서 의원들로부터 좀 난감한 얘기를 들었다. 게임위 예산을 줄인다거나 심지어 게임위 해체를 주장해도 업계나 단체, 기관, 심지어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별 반응 없이 심드렁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직 위원장이라고 나서서 이런저런 노력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좀 빈정거리는 투였다. 얼굴이 화끈하고 부끄러웠다.


국회에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안 개정안이 계류되어 있다. 연말까지는 결론이 날 이 개정안에 따라 게임위는 ‘게임관리위원회’로 간판을 바꿔달지도 모른다. 민간자율심의기구가 만들어져 12세, 15세 등급분류를 맡게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겉으로만 보면 업게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는 식으로 무관심과 관전자의 태도 일변도이다.


게임물 심의를 점차적으로 민간자율심의기구에 넘긴다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고 게임위의 설립취지에 비춰 봐도 맞는 흐름이다. 민간이양을 전제로 설립된 기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게임계의 수용태세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곧 시행될 수도 있는데 민간업계에서 이에 관한 공청회나 구체적인 의견제시라도 변변한 게 있었는가. 업계가 과연 민간자율심의기구를 단시간에 공신력 있게 만들어내고 운용할 수 있을까?


업계에서는 게임위에 대한 악평도 꽤 있는 게 사실이다. 게임위가 있어도 사행성 게임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위원회의 존립 필요성이 없다는 주장조차 나온다. 위원회가 등급분류 단계에서 사행성 확인을 철저히 하고, 사후관리를 통해 불법유통 또는 개?변조 게임물을 엄정하게 처리할수록 역설적으로 업자들의 불만은 높아진다. 사행성게임물 혹은 등급분류 거부 판정에 불만을 갖는 일부 업체들이 사정기관에 불만과 불공정성 의혹을 빈번히 제기하는 것은 게임위의 존립 의의를 흔들어 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게임위는 규제기관이 아니라 진흥기관이라는 게 초대 위원장으로서 필자의 소신이었다. 정확하고 공정하게 등급을 분류하고, 엄정하고 차별 없게 사후관리하면 그것이 업계에는 올바른 최고의 진흥책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게임위에 대한 게임업계의 시각과 관심, 그리고 애정이다. ‘게임위는 필요한 기관, 우리 식구’라는 인식의 큰 전환이 없다면 ‘도로아미타불’일 뿐이고 그렇게 돌아가는 듯한 현실이 참으로 염려스럽다.   

 

[김기만 군산대?우석대 초빙교수 whsoh@ie-s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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