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사회 틀 벗어난 잉여가 창작 씨앗”


잡스 등 중퇴자들이 SW 산업 키워…지금은 ‘아키에이지’ 성공 위해 ‘두문불출’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를 만든 천재 개발자. MMORPG의 시대를 연 개척자. 그의 앞에는 늘 이런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는 명실상부한 온라인게임 개발 1세대의 신화라 할 수 있다. 게임산업을 담당하며 취재하고 인터뷰를 해온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그를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송 대표를 만난 날은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타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스티브 잡스와 송 대표와 관련된 이야기로 말문을 텄다. 그는 스티브 잡스를 열렬히 추종하는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었기에 그의 심경을 물어봤다.


“그렇게 큰 느낌은 없고 오히려 담담하네요.” 의외의 답이 돌아왔지만 원래 큰 슬픔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 당시 세계 언론들이 왁자지껄 잡스의 사망을 빅뉴스로 전할 때 그는 사무실에 틀어박혀 ‘아키에이지’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인터뷰 당일에도 그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마도 전날 밤 늦도록 게임개발에 매달려 있느라 겉모습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지스타에도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 11월 말이나 12월 초에 진행될 첫 클로즈베타테스트(CBT)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의 온라인게임의 역사를 연 그가 게임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는지가 가장 먼저  궁금해졌다.

 

- 게임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언제였나요.


“게임을 알게 된 건 중학교 때부터 였습니다. 당시에는 8비트 컴퓨터를 갖고 할 수 있는 게 게임 뿐이었으니까요.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친구집에 놀러가 ‘나도 하게 해줘~’하면서 게임을 접했지요. 당시 간단한 게임도 직접 만들어서 친구들과 함께 놀았는데 인기가 꽤 많았어요. 하하.”


그의 천재성은 어려서부터 발휘된 것 같았다. 이미 중학교 때 어깨 너머로 컴퓨터를 배우면서 초보 단계의 게임을 만들 정도였다니 말이다. 


“학사과정 1년차 때 텍스트 머드게임을 하다가 그래픽을 입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직접 실천하지는 못했구요. 석사 과정을 마치고 잠시 쉴 때 텍스트 게임을 두 달 정도 했습니다. 그런데 게임 중간에 방향을 잡아 가기가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그래픽을 입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연구하게 됐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개발에 더 관심이 쏠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게임과 점점 더 가까워진 그는 대학 동창이었던 김정주 넥슨 회장과 함께 ‘바람의 나라’를 만들게 됐다.

 

송 대표와의 인터뷰는 기자의 의도대로 가기 보다는 그의 넘치는 에너지와 상상력이 이끄는 데로 자유롭게 흘러가는 듯 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처음으로 돌아와 꼭 해야 할 말들로 마무리를 했다. 그 때문에 송 대표에 대한 인상은 자유분방한 것 같으면서도 길을 잃지 않는 명확한 주관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올 여름 우리 사회의 화두는 ‘초등학생 무상급식’과 ‘소프트웨어를 육성하자’는 두 가지 였습니다. 그런데 애플에서 아이폰4S를 내놓았는데 소프트웨어 얘기는 쏙 들어갔어요. 디자인이 바뀐 게 없다는 것이지요. 하드웨어 사양만 놓고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쏟아내는 거예요. 하지만 제가 봤을 때 이 제품은 대단히 뛰어난 소프트웨어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얘기는 쏙 빼놓고 언제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있었냐는 듯이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소프트웨어는 잉여로 남은 사람들이 하는 겁니다. 지금의 학교 교육에서는 적응하지 못해서 중퇴한 사람들이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중퇴자들이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을 지배하고 있지요.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 등 모두가 대학을 중퇴한 사람들입니다. 학교 중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산업사회에서는 가능했지만 이제는 한계에 도달한 거지요. 이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버려야 해요. 공부 안하고 중퇴하는 아이들한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송 대표는 마치 불을 뿜는 기관차처럼 지금의 교육에 대한 문제들을 거침없이 지적했다. 그의 주장대로 우리나라의 교육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문제의 핵심을 꽤 뚫고 있는 듯 했다. 

 

- 지금은 개발자에서 CEO로 변신을 했는데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어떤 것을 더 하고 싶으신가요.


“개발자는 작품에 몰입하면 다 잊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됩니다. 하지만 CEO는 사람들과 일을 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수학 문제를 풀듯이 하면 안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개발을 하는 것이 더 편하겠지만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업체가 되기 위해서는 개발자가 CEO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 등도 개발자가 CEO로 세계 최고의 기업을 만들었다고 봐야겠지요.”

 

- 많은 개발자들 중에 특별히 스티브 잡스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스티브 잡스는 자기 고집을 끝까지 관철시키는 사람입니다. 뛰어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아이폰이 나오면서 사람들은 그 전에는 불가능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가령 길을 가면서 인터넷을 한다거나 사진과 음악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스티브 잡스는 제품을 통해서 인류에게 큰 기여를 했습니다. "


- 잡스 말고 또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면.


“KAIST에서 저를 지도해 주셨던 전길남 교수님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전 교수님은 한국이 일본 보다 더 빠르게 인터넷을 연결할 수 있도록 하신 분입니다. 전 교수님의 실험실 맴버들이 지금의 인터넷산업의 근간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전 교수님 같은 분들이 영웅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일본에서 출생했다는 점 때문에 주류에서 멀어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전 교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지금도 잊지 않고 있는 말이 있는 데 ‘공부를 너무 많이 하면 바보 된다’는 말씀이었어요.(웃음) 지금의 아이들을 보면 영어 수학 공부만 하는데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지식만 들어 있는 바보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집에서도 아이들한테 공부 그만하고 게임도 하면서 놀아라고 하는데 아내가 책임질거냐고 따지고 들면 제가 지고 말지요. 하하!”


회사 안에서는 폭풍 같은 카리스마를 갖고 있지만 그도 집에서는 아내의 파워에 밀리는 평범한 남편에 불과한 듯 했다. 그래서 더욱 인간미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가 독립을 해서 자기 이름을 걸고 만들고 있는 두 번째 작품이 ‘아키에이지’다. 첫 작품은 레이싱게임이었지만 시장에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만드는 작품은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는 진정한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몇 가지 물어봤다.


- 엑스엘게임즈가 만들고 있는 ‘아키에이지’에는 팬터지 소설가인 전민희 작가가 참여하고 있는데요. 그와의 특별한 인연이 있었나요.


“작품을 개발할 때 탄탄한 스토리텔링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그래서 팬터지 소설 작가를 알아보다가 전민희 작가를 알게 됐습니다. 전 작가는 게임에 대해 이해도 높았고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즐길 정도로 잘 알고 있었어요. 그는 초기에 1~2주에 한번씩 출근해 작품의 세계관과 인물 등 전체적인 그림을 그렸습니다. 


- 자체 퍼블리싱을 결정했는데요.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직접 퍼블리싱을 하는 것이 위험부담이 더 클 수 있습니다. 자금도 많이 들고 실패 했을 때 돌이키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개발과 퍼블리싱을 동시에 한다면 장점도 많다고 봅니다. 그때그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고 유기적으로 연계될 경우 시너지도 발휘할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직접 퍼블리싱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모두가 네 번째 클로즈베타테스트와 오픈베타테스트가 언제쯤 이뤄질 것인지 궁금해 하고 있는 데요.


“4차 클베는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오는 11월 말이나 12월 초가 될 것입니다. 완성도를 높여 나가는 데 주력하고 있구요. 송재경을 믿고 기다려주고 있는 유저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할 것입니다. 맵의 크기는 ‘와우’ 처럼 작품을 서비스 해 나가면서 차츰 차츰 넓혀나갈 예정입니다. ‘아키에이지’에는 모두 8개 종족이 등장하는 데 오픈 때는 지금까지 공개된 3개 종족 외에도 몇 개 종족을 추가로 선보일 계획입니다.”  


첫 만남이었지만 거리를 두고 탐색전을 펴기 보다는 오래 전부터 알았던 사이처럼 솔직담백하면서도 즐겁게 진행된 인터뷰였다.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금방 흘렀을 정도로 그와의 인터뷰는 유쾌하고 유익했다.

 

[더게임스 김병억 부국장 bekim@thegames.co.kr]


[사진 = 김은진 기자 dreams99@nate.com]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