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열린 한 세미나에서 셧다운제 도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법학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도입 시행에 따른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이다. 제도 도입에 앞서 벌어져야 할 풍경들이 지금에 와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게 우습고, 이같은 절차를 무시한 채 시행 절차만 찾고 있는 정부측 방침과 태도가 가당찮고 못마땅하다. 실효성조차 없고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올 게 뻔한데 굳이 해 봐야 겠다는 건 국민들을 상대로 한 시험적 전시 행정이자 독선이다.


 그럼에도 정부 일각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청소년을 보호하고 그들의 탈선을 막는 최소의 사회 안전판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리고 분위기를 보면 그보다 더 한 제도도 시행할 수 있다는 태세다.


  정부와 민간기업 그리고 학계가 각자 가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정부 정책의 경우 국민 정서와 국민적 반응을 살펴보는 일을 게을리 해선 곤란하다. 예컨대 셧다운제와 같은 네거티브 정책의 경우 소수의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다수의 침묵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사천리로 이를 처리하겠다고 달려든다면  그건 다름 아닌 아집이며 불과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졸속 행정의 전형이 될 게 뻔하다.


 사람의 됨됨이와 정부 정책 운용을 빗대어 그릇에 자주 비유된다. 그릇의 크기에 따라 스케일과 씀씀이가 다르고, 담아내는 힘 또한 큰 차이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최근 복지 문제를 둘러싼 여야의 공방도 실은 정책 운용의 크기를 놓고 서로 샅바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쪽에서는 정부가 자금을 더 풀라는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예산도 없이 정부에 무작정 퍼부으라고 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중국은 13억의 인구를 자랑한다. 땅 크기도 엄청나다. 대한민국에 비교하면 약 45배 정도 더 넓다. 민족 구성을 살펴보면 아주 복잡해 진다. 한족 조선족 등을 포함해 무려 56개 소수민족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다. 이처럼 대국이라고 칭하는 중국이 국제 무역 규범을 새롭게 명시한 세계 무역기구(WTO)에 가입한 것은 2001년 12월께 였다. 유엔 안보리 국가 가운데 가장 늦은 가입일 뿐 아니라 신흥국가 가운데서도 뒤쳐진 가입이었다.


 알려진 대로 지적 재산권 보호 기간을 둘러싼 서방 국가들과의 논쟁이 불씨가 돼  가입을 미뤄온 것인데, 이때 불거져 나온 얘기가 중국이 덩치 값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서방 국가들은 중국에 대해 대국이라면 좀 더 큰 그릇답게 행동하라는 것이었고, 중국은 할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버텼다. 하지만 세계 무역 규범에 역행하고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끝내는  좁쌀 정책을 내던져 버렸고  중국은 이후 3조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외환 보유고를 소유하는 나라가 됐다.


 정체성을 지키는 일과 무관한 것이면 그 어떤 무엇도 수용하거나 버릴 수 있는 유연성이 뛰어난 체제가 우월하다. 사상과 체제, 계층과 인종을 초월하고 이를 담아내고 녹여내는 곳이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논란을 빚고있는 셧다운제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아주 하위 개념의 정치 수단이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면 지금이라도 바로 잡는 게 맞다.


 최근 넥슨의 ‘서든어택’을 둘러싼 게임계의 논란도 그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면 어렵지 않게 풀릴 사안이다. 인문협 등 컨수머 쪽에서는 ‘서든어택’에 대한 요금 방식을 정액제로 해 달라고 하는데 반해 넥슨쪽에서는 메이플 스토리, 던전 앤파이터 등 일련의 작품들이 모두 종량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요금제의 변경이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궁색한 변명이다.


  2000년대 후반기들어 PC방 사업자들 대부분이 채산성을 확보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엔드 유저 추이 변화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PC방은 그러나 여전히 게임 메이저들의 주요 수요 거점이 되고 있다.또  과거를 되돌아 보면 게임계와 땔래야 땔 수 없는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게 다름 아닌 바로 그들이다.


   그런 그들이 지금 어렵다며 게임계에 도움을 간절히 요청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작품들이 모두 종량제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에 어렵다며 손사래만 치는 것은 너무 야박한 일이다. 또 그 것은 그들에게 변명을 위한 변명이라고 밖에 들리지 않을 게 뻔하다.


 넥슨은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게임 기업이다. 그렇다면 큰 그릇답게 PC방 사업주들의 주장을 수용해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넥슨은 아직도 담고 안아갈 공간이 많이 남아있을 뿐 아니라 큰 캔버스 안에 ‘서든어택’ 요금방식 변경은 불과 작은 점선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주변사람들은 이를 두고 옛 지우를 살피지 않고 우월적 지위만을 앞세운 채 자기논리만 펴고 있다며 넥슨의 속 좁은 정책을 질타하지 않을 까 싶다.


 대세에 지장이 없는 그릇안의 미풍은 그 바람을 더 키우려 하지 말고  그냥 즐기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셧다운제 시행과 넥슨의 ‘서든어택’에 대한 요금제 변경 여부 등 일련의 현안 과제들의 문제풀이는 당사자들의 그릇 크기에 따라 향배가 달라지지 않을까.


 이 기회에 실용 정부의 문화정책과 넥슨의 가격 정책을 들여다보면서 그 그릇 크기를 견주어 보는 것도 결코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더게임스 모인 편집국장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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