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하고 HP가 PC사업을 포기하는 등 글로벌 IT업계의 격변으로 한국 IT업계가 시끌시끌하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대학원장은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한국 대기업들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갖춘 글로벌 기업의 하도급 업체로 전락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소프트웨어는 없고 하드웨어만 있는 한국 대기업들이 결국 크게 당하고 있는 것이죠”라고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OECD 19개 회원국 중 14위,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 규모는 213억달러로 19개국 중 10위에 불과하다. 소프트웨어 연구개발 투자규모는 이보다 나은 7위(8억달러)이지만 미국(338억달러)과는 비교도 되지 않고, OECD 평균(25억달러)에 비해서도 크게 낮은 수준이다.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제2의 빌게이츠’를 꿈꾸며 세계적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 컴퓨터공학과로 몰려드는 학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지금의 NHN과 넥슨을 만든 이해진과 김정주 등이 바로 그런 꿈을 안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로 들어갔던 이들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이공계에서도 의예과로만 인재들이 몰려가고 있으며, 국내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들던 서울대와 카이스트의 소프트웨어 관련학과가 5~7년째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 기업들은 SW가 HW제품에 덤으로 얹어주는 부속품으로 인식하고, 중소 SW업체에 헐값으로 하도급을 주는 관행을 일삼고 있으며, SW개발 인재를 승진 등의 대우 면에서도 홀대했다. 또한 직원이 특허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면, 사내 발명이라는 이유로 격려금이나 주고 마는 형식적 포상에 그친다.

 

대기업이 중소협력업체의 아이디어를 거침없이 훔쳐가는 것 등도 SW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 중의 하나이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가 그럴듯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 M&A는 고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똑같은 소프트웨어를 대기업이 내놓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해당 소프트웨어 업체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소프트웨어 분야로 뛰어들어 도전하려는 젊은이가 드물다.


네오위즈게임즈 윤상규 대표는 “지금이라도 정부가 게임을 비롯한 소프트웨어 및 콘텐츠 산업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늦었지만 이공계 학생들에 대한 투자도 한층 강화해야 한다. 청년 실업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소프트웨어 인재에 대한 투자이다”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10년 전쯤에 ‘피파온라인’으로 유명한 EA 본사를 방문했을 때, 안내를 해준 직원은 스탠포드 전산학과를 나와 입사한 지 1년이 채 안된 한국계 젊은이였다. EA에서 무엇을 담당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 젊은이는 게임엔진 프로그램 담당이라고 했다.

 

몇 명이 게임엔진을 담당하느냐고 물으니 5명 내외이고, 그 중 게임엔진 프로그래밍만 20년 넘게 하는 사람들이 3명이라고 해서, 아니 이렇게 큰 기업에서 겨우 5명 내외라는 것도 놀랍고, 그렇게 나이든(?) 사람들이 게임엔진을 한다고 해서 되물었다. 연봉을 많이 주는 파트인지 물어봤더니 자신은 5~6만 달러 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아니 스탠포드 나와서 그것밖에 못 받냐고 묻자 그때 당시 스탠포드 전산학과 출신들이 받는 초봉이 7~8만 달러 정도 된다고 하면서 본인은 이 일이 하고 싶어 EA에 입사했다고 했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EA의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가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젊은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대웅 한국게임학회장(상명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rhee219@s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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