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계의 성수철은 바캉스 시즌을 낀 여름과 섣달 그믐을 전후한 겨울이다.  여름 성수철은 겨울보다는 못하지만 예전과 달리 무선 인터넷 등 게임 관련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빅시즌인 겨울철 수요에 버금간다.

 

특히 여름 시즌엔 테스트 베드 성격의 작품들이 많이 쏟아져 나옴으로써 기존 작품과의 시너지 효과 등 재미를 봐 왔다. 최근 대박 난 작품으로 꼽히는 게임들이 대부분 이같은 과정을 거쳐 왔다.


미국의 최대 성수철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한 연말 시즌이다. 이때는 각 백화점마다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다양한 행사를 마련한다. 성수철인데도 할인 세일을 단행하고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하면서 손님들을 끌어 모은다.

 

엔터테인먼트 관련 상품들이 러시를 이루는 시기 또한 이때다. 동화 속 캐릭터를 형상화한 인형과 영화 속 주인공들을 밀랍 형태로 제작한 상품들이 DVD(디지털비디오디스크)와 함께 패키지로 묶여 판매된다.

 

낱개로만 판매되던 비디오 게임들이 이때에는 몇장씩 묶여 세일 판매되기도 한다. 단순히 열거해서 그렇지 백화점 매장 상품 종류를 헤아리면 셀 수 없도록 다양하다. 상품 구매욕을 자극하는 한편 고객들이 아이 쇼핑에 머물지 않도록 적극적인 구매 행위를 유도하고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 때문에 시즌을 앞둔 상품 기획은 말 그대로 기업 사활이 걸려있다고 할 정도다. 이 시즌을 놓칠 경우 한 해 매출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임계가 여름 성수철을 앞두고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승자의 여유라고 한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게임계가 한가하게 손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닌데도 뒷짐을 지고 있다.


그 까닭은 안팎으로부터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잘 나간다고 하면 더 부추켜 줘도 시원찮을 판에 게임계에 브레이크가 걸려 버린 것이다. 그 것도 부양과 육성을 도맡고 있는 정부가 앞장서 발목을 잡아 버렸다.

 

이쪽 저쪽에서 장탄식이 나오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오랜만에 맞이한 시장 성장 타이밍을 어떻게 알고 그렇게 틀어막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인 것이다.


게임계의 앙금은 이 뿐만 아니다. 정부 일각의 사람들은 그렇다 손 치더라도 게임계를 끌어 안아주고  감싸줘야 할 문화 정책 입안자들 마저 슬그머니 손을 놓아 버린 데 대한 울화가 끝내는 의욕 감퇴를 불러 온 것이다.


몸부림 치면 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수심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에 놓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게임계의 자괴감은 그래서 더욱 심각하다. 이런 판국에 ‘시장 견인을 위한 마케팅은 무슨’ 이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올  여름 게임계가 바로 그런 모습이다. 기운을 완전히 상실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내밀어 상품 진열장에 쌓인 먼지를 닦고 새 상품을 진열하는 것은 유저들을 생각하며 마지못해 힘을 쓰는 것이라고 보면 맞다.


자괴감으로 인한 일탈 현상은 뚜렷한 투자 움직임 마저 보이지 않고 있다는 데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올 들어 주요 메이저들의 투자 건수를 보면 눈에 띠는 게 거의 없다.

 

반면 기업인수합병(M&A)을 통한 몸통 키우기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이를 뒤집어 해석하면 눈에 보이는 데만 투자하겠다는 것인데, 게임 산업계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매우 걱정되는 대목이다. 마치 새롭게 만들어 채워 넣지는 않고 매일같이 곶감만 빼내다 먹고 팔겠다는 것이 아닌가.

 

이런 현상이 이어지다 보니 개발사들은 자금줄이 막혀 아사 직전이다. 개발사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면 메이저사들의 위치도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지난해부터  부쩍 늘기 시작한 중국산 게임의 국내 유입을  중소 개발사들의 목마름과 연결해서 들여다 보면 교묘히 맞아 떨어진다. 퍼블리셔들이 투자를 안하면 개발사들이 어려워지고 끝내는 이로 인해 수입산 게임들로 시장 공간을 채울 수 밖에 없는 유통 구조는 필연적이다.


게임계의 일탈 현상으로 인한 피폐는 산업계의 문화마저 압살케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신명나는 일을 만들지 않으니까 유저들이 모여 들지 않는 식이다. 마케터들은 소비자(유저)를 불러 모으고 이를 통해 매출증대와 상품 이윤만을 챙긴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것은 한쪽 눈으로만 산업을 들여다 본 것이다. 마케팅은 다름 아닌 또다른 문화 창출의 행위이며 산업계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이를 통해 길이 형성되고 정서가 만들어지며 상식이 통하게 되기 때문이며 이는 넓은 의미로 보면 다름 아닌 문화 행위인 것이다.


게임계의 문화마저 흔들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면 한쪽 방향으로 쏠릴 수 밖에 없다. 즉 시장 왜곡 현상을 불러 오는 것이다. 산업이 자리를 잡지 못하면 문화 또한 꽃 피울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제도권에서는 게임계를 향해 또 목을 죄어올 게 분명하다.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이다.


게임계의 여름 성수철. 지금이 시작인데 마치 철 지난 바닷가처럼 휑한 모습만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숨이 붙어 있다면 산 게 아니던가. 창문을 열고 진열장의 먼지를 닦아내 보자.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힘을 내야 하는 까닭은 오늘 떠오는 태양이 내일 다시 그 모습 그대로 산등성이 위로 앉지 않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게임계가  정부로부터 언제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던가. 우리 게임계가 스스로 다해 오지 않았나. 예전 산업의 성상을 쌓기 시작하던 그 시절, 그 마음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정부에도 한마디 권면할 게 있다. 이 기회에 예전처럼 간섭하지 말고 산업계를 그냥 그대로 놔줬으면 한다.

 

왜냐하면 그 때가 지금보다 더 좋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더게임스 모인 편집국장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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