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다양한 삶을 존중하는 사회가 요즈음 새삼 그립다. 어렸을 때 꿈꾸던 삶을 꿈꾸듯 살아가는 사람은 아마 흔치 않을 것이다. 어느 샌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 꿈을 대신해 자리 잡은 객관식 문제집의 정답 같은 인생을, 사실은 정답도 아닌데 마치 그것이 정답인 양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리라.


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선뜻 대답을 못한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좀 더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나이가 들어가니 조금씩 느낌이 온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사실이.


필자가 아직도 이 나이에 꿈꿀 수 있다면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에게는 무한한 도전을 용기 있게 추천해야 하지 않을까. 부모로서 기성세대로서 우리의 할 일은 그들이 도전하다 지쳐있을 때 실패하여 좌절하고 있을 때 손을 잡아 주거나 어깨를 부축해 주거나 하는, 그들의 길 한 가운데 서 있는 주연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주변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보살피고 격려할 수 있는 진정한 조연(멘토)으로 자리잡기를 희망한다.


이런 의미에서 작금에 행해지고 있는 과도한 청소년 보호(?) 분위기에 대해서는 심히 유감이다. 어릴 때는 그 나름의 고민과 고통이 있고 시대에 따라 그들만의 색깔이 다를 진데 어찌 몇십 년 전의 사고와 잣대로 본인은 확실히 파악도 못하는 지금 이 시대의 그들 생활 양식을 자신은 마치 정답을 아는 양 일렬로 줄 세우려는 것일까.


실제로 그들과 함께 놀아 주고 그들의 눈높이에 자신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을 하는 기성세대가 얼마나 될까. 우리가 낳았고 기르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들이 우리는 아니다. 또한 우리와 동일한 시대를 살 수도 없고, 살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조로움이나 다양성의 문제를 벗어나 인류 발전의 원초적인 문제 일는지도 모른다.


너무 심한 발언인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현재 우리 기성세대들이 보이는 조급증에 불만이 많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다 큰 자식이 부모와 눈 맞추고 신실한 대화를 나누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할진데 너무 쉽게 방안을 찾고 그 방법 또한 쌍방의 대화기 아닌 일방의 대화로 이루어진 극히 불완전한 해결책들이기에 심히 걱정되는 바이다.


본인 스스로 몸을 낮추고 희생하지 않으면 진정한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내가 시간을 내어야 하고 내가 찾아가야 하고 말하기 전 우선 참고 들어주어야 하고 가르침이 아닌 배려와 이해의 마음으로 대해야 각 세대가 공감하는 대안이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


필자도 범생이로 태어나 한때 문제아로 취급된 적도 있었는데 스스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 당시 아무 말 없이 옆에서 지켜봐 주었던 어머님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고교시절 학교에서 친 사고가 심각하여 교장선생님에게 불려갔던 어머니가 학교에서 돌아오신 후 필자에게 한 말 한마디는 ‘원석아, 나는 너를 믿는다’였다. 백 마디의 말보다 천 마디의 매보다 엄청난 위력으로 나를 정신차리도록 만들었다.


나는 지금 우리에게도 비슷한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떨어져서 지켜볼 줄 아는 진정한 보살핌. 내가 잘 모르는 그들만의 세상을 알지도 못하는 내가 휘젓지 말고 그들이 한껏 즐기도록 그러다 스스로 답을 찾도록 먼 발치에서 지켜보다가 그들이 힘들거나 괴로워할 때 비로서 다가가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참을성 있는 용기가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게임 과몰입은 명쾌하게 답을 낼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 생각한다. 이 문제를 진정으로 풀고자 원한다면 기성세대 스스로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조력자로 부모로서 인생의 멘토로서 이 문제와 관련하여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따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그들 속에 들어가 문제에 접근해야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결코 법으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오원석 국제e스포츠연맹 사무총장 wsoh@ie-sf.org]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