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낙비가 쏟아질 때면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하지만,  이번 게임계에 몰아닥친 장대비와 같은 세상 사람들의 눈총은 쉽게 걷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시제(詩題)는 먼저 던지는 게 상대를 제압하는 데 유리하다 하지 않았을까.

 

셧다운 제와 같이 핫이슈가 될 만한 의제라면 차라리 게임계가 전향적으로 그 과제의 공을 세상 사람들에게 먼저 넘겼으면 어땠을 까 싶다. 그렇게 했다면 현안에 대한 문제 풀이를 더 쉽게 해 나가지 않았을까. 어찌됐든 그 것은 결과가 나쁜 까닭에 나온 가정론일 뿐이다.


중요한 사실은 앞으로 게임계에 대한 대 못질과 같은 현안들이 봇물처럼 밀려올 것이라는 점인데, 이를 어떻게 대처하고 풀어 나갈 것일까에 대한 고민과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뒤를 살펴봐도 우군이 보이지 않고 변변한 우산 하나 조차 거둘 수 없다면 그 방법은 단하나, 게임계가 정면 돌파하는 일이다. 이를 테면 현안에 대해 피하지 말고 드러 내놓고 같이 고민하자고 달려드는 식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싸움판도 마련해야 한다. 씨름도 하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도 하고, 또 서로 으르렁 대는 것이다. 그렇다 보면 실타래와 같은 문제의 솔루션은 자연스럽게 만들어 지고 풀리게 돼 있다.

 

그동안 게임계의 악수이자 패착이라면 너무 피해 의식에 젖어 드러내기 보다는 덮으려고 안간힘을 써 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싸움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씩 화두를 던져 문제의 솔루션을 마련해 가는 것이다. 그게 다름 아닌 세상 사람들과 대화이자 소통이 아닌가 싶다.


문제는 그런 싸움판에 나설 선수 선발 건인데, 이 또한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서로 미루기에 익숙한 게임계를 들여다 보면 각자 처해 있는 입장이 제각각이다.

 

예컨대 과몰입 논란에 민감한 기업과 사행성 제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기업들이 서로 다르다. 한솥밥을 먹고 산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입장이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비가오면 우산 장사는 좋지만 짚신장사는 울상인 격이다.

 

특히 수년간 기업 대표들이 서로 얼굴을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고 할 만큼 기업간 교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걸림돌이다. 막 말로 불거진 돌이 정 맞는다며 나섰다가 괜시리 밉보이게 될 것이라며 CEO들이 서로 안 나서도록 할 게 분명하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정부의 셧다운제 도입은 게임계가 정체성 혼란 등 산업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허우적 거리는 틈을 타 잉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솔직히 올들어 극심한 양극화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도,  그리고 중견, 중소업체들이 경영난에 봉착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정체성의 결여로 비롯된,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나홀로 아리랑식의 경영 방식이 게임계의 판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정체성에 대한 부정은 산업에 대한 책임 의식 결여와, 역사의식의 실종, 주변을 살피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 들여다보는 극단적 이기주의로 나타난다. 이런 기업과 인물들은 도태되거나 쫓겨나야 마땅하지만 대체로 참 얼굴의 진면목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그런데 이런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산업 자본의 수위는 낮아지고 시장 규모는 갈수록 헐거워진다는 사실이다. 선순환 구조가 와해되고 깨져 버림은 물론이다.


실례로 게임계에서 대박을 터트리고 떠난 인물들의 행동과 면면들을 보면 부끄럽다 못해 참담하다. 산업에 대한 투철한 정체성과 애정을 갖고 있었다면 그처럼 철저하게 보따리를 챙겨 나가지 못한다.

 

싸더라도 까치밥 정도는  남겨 놓는 게 도리다. 하지만 산업계에 남아있는 흔적이라곤 그들이 팔고 나간 게임 뿐이다. 이들의 이구동성은 벤처 기업이란게 다 그런 게 아니냐며 자신의 기업을 슬그머니 벤처기업으로 돌려 세우는 것.

 

그래서 다 챙겨 나가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정말 낯 뜨겁고 뻔뻔스런 논리다. 지난해 이런 식으로 빠져 나간 게임계의 돈이 약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산업계에서 굴러 다녀야 할 돈이 엉뚱하게 딴 데로 새 나간 셈이다.


이를 놓고 볼 때 중소 게임업체들의 자금난은  외부 환경 요인 뿐 아니라 게임계 내부의 원인도 큰 몫을 한 셈이다.


정체성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한 나머지 그동안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산업계의 나그네, 주변인만 키워 온 결과다.


세상 사람들과의 씨름도 좋고, 대응 논리 개발도 긴요하지만 게임계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시도해 보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 싶다. 그래야 전선에서도 전열을 흩트러뜨리지 않고 싸움을 하고, 산업에 대한 역사와 게임인들의 시선을 두려워 할 것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1970년 한 평범한 가정주부가 뉴욕 할렘가에 갱생 보호소를 설립했다. 그녀의 이름은 클라라 맥브라이드 헤일. 그녀는 이곳에서 갈 곳 없는 마약 중독 산모와 결손가정 아동들을 거두고 가르쳤다. 그녀가 가장 강조해 훈육한 것은 정체성에 대한 극복 노력과 힘이었다. “흑인이라서 달라질 게 없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그래 백인들이 하지 못하게 하니까 어쩔 수 없지’하고 체념해서는 안 된다.

 

결심을 굳히고 노력한다면 어느 것이든 다 할 수 있다.”  그녀는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미국의 영웅’으로 불렸고 그녀가 세운 ‘헤일 하우스’는 그녀의 딸 로레인 헤일박사에 의해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정체성은 다름 아닌 힘이다.


[더게임스 모인 편집국장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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