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거나 입상한 작품들이 흥행 시장에서 제대로 재미를 못 본 경우가 적지 않다. 오히려 이들 작품과 거리가 있는 흥행작들이 마치 그 것으로 인해 감점을 당한 것 처럼 상복과 거리가 먼 결과를 자주 보게 된다. 

 

예술성과 상업성의 간극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터무니 없는 흥행 실적을 거둔 작품이 그 것도 각종 국제 영화제에서 잇달아 입상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 작품을 본 관객과 그렇지 않는 관객의 심사는  복잡해 질 수 밖에 없다.

 

미리 예상하고 봤어야 했다는 후회의 심정과 내 눈은 결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영화에 대한 뛰어난  안목이 영화 한편으로 인해 엇갈리게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잡념의 수렁에는 특히 젊은 시절, 영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으로,  금주에 몇 편을 봤느냐며 친구들과 신경전을 부릴때 자주 빠져든다.

 

엔터테인먼트 요소만으로는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다. 이를 통해 그 무엇을 얹혀줘야 비로소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무엇이란  어떤 것인가. 다름 아닌 존엄성 의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것을 보고 즐긴다 하더라도 존엄성 문제가 상처를 받고 논란에 휩싸일 경우 그 것은 문화로써의 가치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일례로 투우 경기를 보면 아주 제한적인 나라와 지역에서만 열린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고 남미 일부지역에서만 열정적으로 열릴 뿐이다. 하지만 이를 그 누구도 대중 문화 스포츠라고 일컫지 않는다. 말 그대로 투우사가 소를 잡는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동물학대로 인한 인간의 존엄성 문제가 걸리고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투우 경기는 매년 폐지론자들로 부터 시달림을 받고 있다.


호주에서는 매년 힘센 남자가 난장이를 들어 올려 멀리 던지는 경기가 열린다. 마치 투포환 경기처럼 가장 멀리 난장이를 던지는 사람이 우승하는 방식이다. 이 대회가 열릴 때면 그 지역은 마치 광란의 축제가 열리는 것 처럼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 든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경기를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냥  호주에서 열리는, 한 지역의 전통 문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막나가는 사례이긴 하지만 포르노가 대중  문화의 한 지류라고 드러내 놓고 말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일각에서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견해도 있지만 그 목소리는 소수에 그칠 뿐이다. 주지하다 시피 낯 뜨거운 엔터테인먼트 요소만 있을 뿐 그 무엇 하나, 그 어떤 가치가 그 곳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게임에 대해 논란이 빚어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게임만큼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고루 갖춘 장르는 없다. 역사가 있고 삶과 죽음이 있고 야망과 꿈이 담겨져 있는 등 인생사를 고루 담고 있다. 현실과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를 자신이 이끌어 갈 수 있고 여기에다 자신의 분신이랄 수 있는 아바타까지 작품 스토리에 끼워 넣어 키울 수 있다. 인류가 지금까지 선보인 그 어떤 장르의 엔터테인먼트보다도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게 게임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논란의 중심에 서 는 건 게임계에서 존엄의 가치를 쉽게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존엄에 대한 가치는 부와 권력보다는 명예를 생각하고 스스로 그 것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있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례로 게임이 조금 상식선에서 벗어났다 손 치더라도 게임계가 이를 더하거나 벌충하려 노력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를 간과해 왔다.


올초 대한민국 게임인 대상 수상작을 가리기 위한 1차 심사위원회를 구성한 적이 있다. 그러나 최종 심사위에 올리기엔 역부족인 사례가 대부분이었고, 정작 받아야 할 사람과 작품은 공적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억지 춘향식으로 수상자를 가릴 수 있었겠지만 그럴 순 없었다. 상의 권위도  그 것이지만 산업계를 위해서도 소담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끝내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이 상의 제정 취지는 게임계에 대한 자긍심과 명예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그래야 게임계에 대한 사시적인 시각이 조금이라도 희석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작고 부족한 금액이지만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상금까지 내 걸기도 했다. 그렇게 3년을 이끌어 왔다. 그런데 그게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당시의 심정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참담했다.


뒤늦게 안 얘기지만 대한민국 게임인 대상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었다. 불과 3∼4개 정도에 머물 만큼, 많지도 않은 게임계의 각종 시상제도가 정작 당사자인 게임계의 외면으로 거의 폐지 직전의 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행사 참여 여부의 잣대로 게임계를 질타하거나 제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잘 나간다는 상당수 업체들이 상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게임계의 현실 감각과 사회의식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더욱이 회사와 자신에 대한 명예조차 필요치 않다면 게임계가 추구하는 최고의 선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게임계에 대한 존경과 동경심이 생겨나지 않으면 존엄의 가치를 획득할 수 없다. 대중문화의 킬러 콘텐츠로써 자리매김도 할 수 없다. 결국 게임계의 안팎으로부터의 비난과 수탈은 어찌보면 자업자득인 셈이다.


게임이 정신적 피폐를 불러오는 겜블 산업의 핵심이 아니냐는 세간의 비난은 그렇다면 게임 때문인가 아니면 게임계 때문인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말년에 이같은 얘기를 했다. “존엄은 명예를 누릴만한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데서 온다.”  


[더게임스 모인 편집국장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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