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 앞뒤 가리지 않고 막 말을 하고, 논리마저 가볍게 던져 버리는, 그런 억지 부릴 일이 곧 닥칠 줄 알았다. 그 같은 전조를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면 순진한 사람이거나 바보일 게 분명하다.


시민단체 등 사회 일각에서 게임 과몰입을 막아보겠다며 슬그머니 해묵은 제도를 끄집어 낼 때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다. 끄떡하면 비뚤어진 사회 현상과 게임을 결부시켜 얘기하는 단체들이 늘어날 때부터 분위기가 수상쩍다고 판단해야 옳았다.

 

그래도 법제화를 통해  게임을 통제해 보겠다고 하길래  그게 과연 그렇게 될까 싶었다. 그런데 교묘한 타이밍에 정부가 나섰다. 어찌보면 한물간, 시대의 역사 추를 한참 뒤로 돌려놔야 할 셧다운제를 정부가 법제화하겠다며 칼을 들이 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때 매우 놀라고 당황했다. 대통령의 뜻을 잘못 헤아리면 정부 내에서도 이 정도로 손발이 맞지 않을 수 있구나를,  부처가 각자의 목소리를 내더라도 눈치코치 없게 이렇게 흉하게 낼 수도 있는지를 처음으로 알았다.

 

내막을 들여다보니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고 한다. 마주  보기는 커녕 등을 댄 채 으르렁 대고 있다가 정치권의 큰 사람이 나서 뜯어 말리니까 마지못해 대화에 응했다고 한다. 그게 양 부처의 합의에 의해 발의하겠다는, 이른바 게임 셧다운제의 전말이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속내는 따로 있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겠다 싶으니까 드러내 놓고 속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숨겨 온 발톱은 기금 출연이라는 예쁘게 포장한 돈 갹출 문제였다. 이러한 기금 출연의 명분을 그대로 옮기면 다소 황당하고 낯 뜨거워 언급하기가 그렇다. 더군다나 수익자 부담 원칙까지 논하면서 나눔을 강조할 때는 기가 막히고 기가 질려 버려 입이 딱 벌어진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확실히 알게 됐다는 사실이다. 한참을 돌고 돌아서 그게 이거구나 하고 알게 됐으니 지치기도 하고 한편으로 화도 나고 짜증도 난다.

 

그런 목적이었으면 굳이 셧다운제 도입 문제를 운운할 게 아니었다. 막 말로, 고약하게 표현하면 게임계가 일정부문을 토해 내라고 하는 것이고, 좀 거룩하게 언급하면 같이 나누자는 뜻이 아니었던가. 그럼 그렇게 말해 버리지 이게 뭔가 싶다.


과몰입 문제 해결의 주체가 일차적으로 가정이고 정부의 몫이라고만 주장하지는 않겠다. 일정부문 수익을 거뒀으니 그 이익을 사회와 나누자는 지적에 대해서도  이중과세 또는 새로운 준조세의 성격의 재원이라는 업계의 주장도 강조하지 않겠다.


실로 안타까운 점은 아무리 자기 주장을 펼친다고 해서 상대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을 만큼 비하하고 깎아 내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 한쪽 판 만을  들여다 보고, 한쪽 눈의 시각으로만 그림을 그려놓고는 마치 모든 것을 보고  그린 것 처럼 주장하는 데 대해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자동차 사고로 인해  신체적 장애우들이 많이 생겨 나고 있으니 완성차업계가 외과병동을 의무적으로 짓고 운영해야 한다면 세상 사람들 모두  웃을 일이다. 셧다운제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이들의 주장대로 게임으로 인해 심신이 병들어 망가지고 있다며 게임계가 그 책임을 지고 정신병원을 짓거나 정신과 의사를 배출해야 한다면 그 또한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상대를 인정하는 자세를 가지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단언컨대 게임으로 인해 비행 청소년들이 증가했고 이로인해 정신 병력을 갖게 됐다는 객관적인 준거는 아직 없다. 돌아다니는 무수한 주장들은 모두 카더라는 얘기일 뿐이고 논란을 빚고있는 비행 청소년들의 경우 게임의 본질적인 문제로 비롯됐다기 보다는 게임을 즐기는 수용자의 주변 환경 또는 성장 배경으로 인해 일탈 현상이 빚어진 사례가 훨씬 더 많다. 그런 측면에서 게임과 비행을 연관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주장을 펼치는 일부 단체의 논리와 목소리는 그칠줄 모르고 더 커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주장들이 모아지고 증폭될수록 자녀의 게임 과몰입으로 고민하는 학부형이나 청소년들보다는 여기에 편승해 생존해 보겠다는 일부 단체의 절박한 외침과 절규만이 메아리쳐 들려 오는 까닭은 왜일까. 그런 전조를 사전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들의 행태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문뜩 중국에 사는 후배의 말이 떠올랐다. 그가 전해 준 중국 문화부 한 관리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한국 정부가 산토끼를 잡으려다 집토끼마저 놓치고 있고, 빈대를 잡으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 때문에 초가삼간을 태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콘텐츠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데 한국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킬러 콘텐츠인 게임, 특히 온라인게임을 먼저 빚어놓고 손을 털려 하고 있다. 이제 겨우 꽃을 피우려 하는데 한국은 벌써 샴페인을 터트린 격이다. 그 길은 곧 2류로 가는 길인데 말이다.


가만히 듣고보니  정부와 일부 시민단체, 일부 관리들이 그래서 이런 추임새를 보이지 않았던가 싶다. 정말 다 버리고 막가지는 건가. 솔직히 이런 일이 이렇게 빨리 닥쳐올지 꿈에도 몰랐다.   


[더게임스 모인 편집국장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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