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e스포츠에 관한 기사가 부쩍 늘었다. 블리자드와 한국e스포츠협회간의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둘러싼 갈등, e스포츠 서울축제에 대한 기대, 우리나라 e스포츠의 위기론 등 빛과 그림자의 뉴스들이 눈에 띈다.

 

그 가운데 한국e스포츠협회가 승부조작에 참여한 혐의로 특급스타급을 포함한 11명의 프로게이머에 대해 연구제명 및 포상박탈 처분을 내린 것은 충격적이고도 가슴아픈 일이다. 이제는 프로게이머와 관련한 근본적인 문제를 논의해야 할 때라고 본다.

 

얼마 전 소녀시대, 원더걸스, 슈퍼주니어 등 틴파워를 자랑하는 10대 아이돌그룹의 명멸에 관한 얘기를 듣고 매우 놀란 적이 있다. 이들을 키워내는 유명 연예기획사에는 한 주에 최고 7백 여명의 지원자가 몰려 매주 공개오디션을 치른다고 한다.

 

그 가운데 정작 선발되는 것은 대략 분기에 한 명 정도라는 것. 얼추 계산해 보니 5천명 중에서 한 명 정도 뽑히는 셈이다. 후보생이 되면 4∼5년 정도의 연습과정에 돌입한다. 노래와 춤이 기본이지만 외국어도 가르친다. 하루종일 지옥훈련을 거듭한다. 예뻐보여야 하기 때문에 성형은 물론이고 때로는 이빨을 다 뽑아 몽땅 바꾸어버리기까지 한다. 한 사람당 일년에 억대 정도가 투자된다.

 

이런 강훈련을 거치고도 정작 데뷔의 설레임을 맛보는 그룹은 기획사당 1년에 두어팀에 그친다. 기회를 잡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문제는 그만큼 힘들게 데뷔해도 인기몰이에 실패하면 그걸로 끝이라는 점이다.

 

어떤 사후조치도 없다는 것이다. ‘일찍 그만두면 다른 곳에서 연예인 안한다’는 노예계약 같은 조건에 이미 서명했기 때문에 다른 길이 없다. 당사자들에게는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는 셈이다. 연예인공화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이이돌의 화려한 꿈을 쫓아 모든 것을 바친 수만 명의 10대들이 매년 그렇게 비참하게 버려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프로 운동선수들의 경우도 별로 다르지 않다. 고교를 졸업하는 선수들의 극히 일부만이 대학, 프로, 실업팀 진입차표를 얻는다. 90% 이상의 선수들은 그냥 탈락하고 만다.

 

고교나 대학을 거쳐 프로팀에 가더라도 대부분은 2군에서 길고도 고된 수련과정을 거쳐 비로소 1군 선수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러나 그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2군에서 몇 년씩 머물다 운동을 그만두거나 은퇴하는 선수들도 부지기수여서 ‘운동폐인’이 해마다 양산된다.

 

그렇다면 프로게이머의 사정은 어떠할까. 임요환 선수의 팬클럽 숫자가 영화배우 배용준의 그것보다 훨씬 많은 데서 드러나듯이, 지난 10여년 사이 프로게이머는 우리나라에서 꽤 인기있는 프로선수로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스타도, 고액 연봉자도 많아졌다.

 

그러나 프로게이머 양성과정과 속사정을 좀 알고 나면 걱정이 절로 될 수밖에 없다. 연예계나 스포츠계 못지 않은 문제와 무척  열악한 현실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PC방 등에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시험을 치른 뒤 30∼300명으로 구성된 유명 ‘클랜’(길드)에 들어가는 프로게이머 후보생은 월 40∼60만원의 입주비를 내고 단체합숙에 들어가 하루종일 게임연습을 한다.

 

준프로 자격증을 위한 ‘커리지매치’를 거치면 프로게임단의 연습생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응시자는 5천명이 넘지만 드래프트를 통해 입단해 정식 2군이 되는 선수는 1년에 평균 75명 정도. 바늘 구멍이다. 이 가운데 소수만이 수천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1군이 된다.  준프로급 이상 선수 가운데 피어보지도 못하고 은퇴하는 숫자만 해도 연평균 40 여명이다.

 

프로게이머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선수협의회마저 아직 없다. 게임단 소속이 아니면 프로게이머 자격이 정지되고 출전도 불허된다. 출퇴근도 없이 365일 24시간 합숙하면서 식사, 청소, 빨래, 게임연습이 일과의 거의 전부인 2군이하 선수들은  ‘닭장’에서 사육되고 순치되는 ‘게임노예’ 신세나 다름없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프로게임구단, 선수, 협회, 게임언론 등에서 모를 리 없다.

 

스타급을 포함한 정상급 프로게이머들이 상상치도 못했던 승부조작에 관여했다면, 이는 아마도 선수생명은 짧고 미래는 불확실한 데 따른 초조감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e스포츠 종주국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 현재의 프로게이머 양성제도와 프로게임 운영방식 등을 혁신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게임계가 지혜를 모아 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김기만 전북대 초빙교수 kimkeyma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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