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동계올림픽 강국으로 우뚝 서게 한 쇼트트랙계가 요즘 홍역을 치르고 있다. 코치진이 한국체대 출신과 비한국체대 출신의 두 갈래로 완전히 나뉘어 있는데다, 선수들도 지도자들에 따라 확연히 편이 갈라진다고 한다.

 

어느 쪽에서 코치 감독을 맡느냐에 따라 출전선수가 달라지고,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서로 짜고 담합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국내 선발전 통과가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입상 못지 않게 어렵고 누구를 내보내도 금메달 후보이다 보니, 진정한 스포츠 정신에서는 있을 수 없는 썩은 병폐가 둥지를 틀 수 있었던 모양이다.

 

최경주와 함께 세계무대에서 한국 남자골프를 대표하는 양용은선수는 4월의 셋째 주와 넷째 주에 천당과 지옥을 넘나들었다. 그는 지난 4월 15∼18일 중국에서 열렸던 원아시아 대회에서 탁월한 기량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4월 22∼25일 제주에서 열린 유러피언투어 발렌타인 대회에서도 그는 유력한 우승후보였다. 자신의 고향에서 열리는 대회여서인지 그는 철저히 준비했고 우승의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그러나 웬걸, 그는 이틀간의 예선에서 무려 6오버파를 치고 예선탈락하고 말았다. 왜였을까. 컨디션도 좋지 않았겠지만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악명높은 제주도의 날씨였다.

 

양선수는 대회 첫날 맨 마지막 순서로 티오프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부터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경기는 계속 지연됐고, 결국 18홀 중 한 홀만을 돌고 첫날 경기를 끝냈다. 첫날 경기의 명암은 실력이 아니라 날씨에서 갈렸다.

 

이날 오전 날씨가 아주 양순할 때 티오프했던 40여명은 줄줄이 언더파를 치며 좋은 성적으로 경기를 끝냈다. 반면 오후조는 변덕스런 날씨로 스코아가 좋지 않거나 아예 경기를 진행하지 못했다.

 

양선수의 경우 이튿날 하루에 전날 치를 포함해 35홀을 도는 강행군을 해야 했고, 이날 역시 날씨마저 엉망이었다. 그는 결국 페이스를 잃고 뜻밖의 예선탈락이라는 수모를 당했다.

 

골프경기에서는 이처럼 날씨가 성적에 큰 변수로 작용한다. 그래서 대회 주최측은 첫날과 둘째날 오전 오후조를 바꾸기도 하는 등 선수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려 노력하지만 심술궂은 하늘의 조화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낸 모범사례는 한국 양궁 대표선수단이다. 알다시피 양궁은 한국이 지난 30년 가까이 세계 최강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국내 선발전 우승부터 3위까지가 그대로 세계대회나 올림픽 메달을 휩쓰는 일이 흔하다.

 

양궁협회는 과연 선수들에게 어떻게 공평한 기회를 부여했는가? 일단 선발전에서 선수들이 동시에 동일 환경에서 활을 쏘도록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시간에 활을 쏜다. 물론 사대(射臺)가 많은 양궁종목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 결과 선수들로부터 어떤 불만도 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국내 선발전을 한두번이 아니라 열차례 쯤 치러 종합성적으로 대표선수를 뽑았다. 대입 수능을 열 번 치른 셈이니 실력은 있는데 실수해서 고배를 마셨다는 변명 따위는 통할 수 없었다.

 

전대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무명의 여고생에게 선발전에서 나가떨어지는 일도 생겼지만 양궁협회는 걱정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쟁, 처절한 생존경쟁을 거친 선수들이었기에 누구라도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임업계에 또 강풍이 몰아치는 듯하다. 계절풍인가. 세상에서 게임 관련한 사건사고가 크게 한 번 터지면 으레 불어닥치는 모진 비바람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것도 이겨내야지. 솔로몬의 지혜가 무엇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러나 최소한 쇼트트랙이나 골프계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보다는 양궁협회의 지혜를 참고해야 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과열을 식힐 업계의 선제적 자구책 강구랄지, 공정경쟁을 위한 내부협약 성안이랄지 무엇이 되었든 필요하다면 하되 양궁협회처럼 하면 좋지 않을까.

 

 

김기만 전북대 초빙교수 kimkeyma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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