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사방(사면: 四面)에서 들려오는 초나라 노래라는 뜻이다. 백과 사전을 찾아보면 “주위에 반대자 또는 적이 많아 고립되어 있는 처지” 또는 “사방으로부터 비난 받음을 비유”하는 뜻으로 쓰인다. 글자 그대로의 뜻에서 벗어나 고립무원(孤立無援)과 동의어로 쓰인데는 그 나름의 연유가 있다.

 

‘스타크래프트2(이하 스타크)’ 출시를 앞두고 있는 요즘의 블리자드를 보면 ‘사면초가’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전세계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서의 상황은 이 단어의 연유와 의미를 되 새기게 한다.

 

물론 스타크2의 게임성과 성공 여부는 실제 출시된 이후 유저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정식 출시 D-데이를 2달여 남겨논 현재의 상황은 중국 초나라 왕 항우(項羽)가 유방(劉邦)에 쫓겨 사면초가를 듣는 그 당시를 연상케 한다.

 

그 전조는 스타크2의 클로즈 베타에서 시작됐다. 지난 2월 클베를 시작하면서 블리자드는 게임물등급위원회의 등급표시 사항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물의를 일으켰다.

 

뒤늦게 등급표시를 했지만 언론의 뭇매를 맞았고 게임위에 의해 경찰에 고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클베를 시작했지만 반응은 썰렁했다.

 

특히 인기 몰이의 바로미터 격인 PC방 쪽에서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스타크2’를 찾는 손님들이 거의 없는데다 PC방 업주들도 관심이 없다는 소리가 들려 왔다.

 

최근 가닥을 잡고 있는 판매 가격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6만9000원에 책정될 PC 패키지 가격에 대한 일반 유저들의 저항도 거셀 것 같지만 PC방 업계는 그 정도를 넘어 집단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이하 인문협)는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지만 정책에 변화가 없다면 최악의 경우 불매까지 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이같은 상황에서 게임위가 결정타를 날렸다.  스타크2에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을 부여한 것이다. 이대로 등급이 최종 확정될 경우 스타크2 서비스는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주 소비층인 청소년층이 잠재 고객에서 제외돼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광고 등 마케팅 활동에서의 제약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e스포츠를 통한 프로모션을 히든 카드로 생각해온 블리자드의 전략이 타격을 받게 된다. e스포츠 중계권을 두고 협회와 마찰을 빚고 있는 블리자드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e스포츠와 중계권 협상이 결렬되고, 별도의 리그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더라도 이런 저런 상황을 감안하면 블리자드가 누차 강조해온 스타크2의 e스포츠 강점을 제대로 살릴 수 없게 된다.

 

물론 앞으로 상황은 바뀔 수 있지만 ‘스타크2’ 출시를 앞두고 블리자드가 유독 한국에서만 잇단 악재로 몸살을 앓는다면 우연의 일치로만 볼 수 없다. 여러가지 상황을 말할수 있지만 원인은 단 하나인 것 같다.

 

‘사면초가’의 주인공 항우(項羽)에 빗대어 말하면 “자신의 힘과 기(氣)를 너무 믿은 나머지 충신의 말을 듣지 않고 무리수를 둔 것”이 패착였다. ‘역발산 기개세(力拔山兮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는다)’의 능력있는 항우도 교만이라는 덫에 걸리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이 ‘사면초가’의 또 다른 의미이다.

 

게임위, 인문협을 비롯한 PC방 업계, e스포츠협회를 비롯한 e스포츠산업계가 명시적으로 블리자드에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드러내 놓지 못하지만 정부기관이나 상당수의 언론도 블리자드에 대한 비슷한 ‘심사’을 갖고 있을 것이다.

 

블리자드는 지난주 전세계 기자를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 본사로 불러 스타크2 출시를 자축하는 쇼를 벌였다. 한국 언론사 20여 곳을 포함해 전세계 70여개의 언론사가 참가했다고 한다.

 

본지를 포함해 그동안 블리자드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써 온 몇몇 매체는 초청 대상에서 제외시켰다는 후문이다. 아마도 블리자드는 현재 한국에서 불려지는 ‘초나라 노래’가  부족한 모양이다.

 

 

[더게임스 이창희 편집부국장 changhlee@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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