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미디어연구실에는 밤마다 컴퓨터라는 것을 훔쳐 쓰려고 찾아오는 사회부적응자들이 있었다. 감지 않은 머리 냄새에 진한 발 냄새와 땀 냄새, 주침야활의 라이프 스타일과 어처구니 없는 패션 센스로 특징 지어지는 이 찌질한 젊은이들을 사람들은 ‘해커’라고 불렀다. 20대 초반인 이들은 대부분 ‘핵(Hack)’이라는 동아리 출신이었고 그 알음알음의 인맥으로 컴퓨터를 훔쳐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 해커들 가운데 스티브 러셀, 앨런 코톡, 야크 그라에츠라는 세 녀석이 이상한 손님 접대용 장치를 만들었다. 검은 CRT 스크린에  우주선이랍시고 깜박거리는 하얀 삼각형 두 개가 있고 그 중간에 하얀 점의 동그라미로 된 태양이 있었다. 연구실에 놀러 온 사람들은 컴퓨터 콘솔에 붙어 있는 4개의 버튼을 조작해서 우주선을 움직이고 31발의 미사일을 쏘아서 적 우주선을 격추시키는 놀이를 하면서 밤새 깔깔거렸다.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세계 최초의 컴퓨터 게임 ‘스페이스 워’라고 부른다.

 

‘스페이스 워’ 시대에 컴퓨터 기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 놓여 있었다. 기술이라는 객관적 산물은 E.E.스미스의 우주 전쟁을 다룬 SF소설을 읽고 즐거워하던 개발자들의 주관적 취향을 밖으로 드러낸 것이었고 연구실에 놀러 온 친구들은 스크린 위의 시뮬레이션이라는 객관에서 이런 쓸데없는 것을 좋아라 하고 만든, 찌질하지만 사람 좋은 녀석들의 주관을 확인했다.

 

헤겔은 이런 행복한 상태를 주객동일의 상태, 순환적 총체성의 상태라고 정의했다. 인식과 실천의 이상적인 형태는 주관이 객관으로 대상화되고 다시 객관이 주관으로 동화되는 순환적 총체성의 상태이다. 이 순환적 총체성이 파괴되면 주관이 객관으로 대상화될 뿐 더 이상 객관이 주관으로 동화되지 않는다. 이 때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물건과 물건의 관계로 변질되며 객관은 ‘죽어버린 객관성’ 즉 물건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현상을 물화라고 한다.

 

우리는 ‘스페이스 워’ 시대의 일화를 재현할 수 없는 고대의 전설처럼 느낀다. 컴퓨터 게임이 발전하고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개인이 하나의 게임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제한되어갔다. 여기에 투자와 배급과 마케팅에 대한 고민이 붙고 게임 운영과 인사관리와 사원 교육 등의 복잡한 프로세스가 개입되면서 기술은 개발자의 주관과는 무관하게 물화되고 일반인은 감히 범접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오늘날 창의적인 게임의 개발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이 같은 기술 물신주의(Techno-Fetishism)이다. 많은 개발자들이 컴퓨터 게임의 기술 의존성을 오해한 나머지 게임 개발을 공학적 창안의 문제로 간주한다. 게임 개발은 살아 있는 인간의 사회로부터 유리되어 어떤 아이디어를 어떻게 프로그래밍할 것인가의 실험으로 간주된다. 그리하여 더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과 더 정교한 공학적 아키텍처가 좋은 게임이라는 생각이 나타난다.

 

이것은 투입 값과 산출 값의 알고리듬이 사람의 감정을 좌우한다고 믿는 기술 물신주의이다. 진정 독창적인 게임, 사람들을 몰입시키고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안과 감동을 주는 게임은 1961년 MIT에서와 똑같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나는 당신의 게임을 플레이 할 사람들에게 어떤 스토리를 들려주고 싶은가? 그 스토리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며 나의 깊은 주관을 반영하는 것인가? 사람들이 스크린 위의 시뮬레이션에서 나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는가? 기술 물신주의 시대를 사는 게임 개발자들은 끊임없이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이인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lyoucg@hanmail.net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