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 법원은  닌텐도가 현지 ‘R4’ 제조업자를 상대로 건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앞서 스페인 법원에서도 닌텐도DS에 사용되는 R4의 판매가 합법이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로 인해 닌텐도는 더이상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는 R4의 판매와 사용을 막을 수 없게 됐다.

 

R4는 닌텐도DS에 장착하는 소프트웨어칩으로 불법복제된 다양한 게임들을 이식해 즐길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들 국가의 판결은 R4의 판매와 사용을 불법으로 보고있는 우리나라, 일본과는 다른 것이어서 각국의 법원이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시각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R4는 나라에 따라 불법물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애매한 물건이 돼 버렸다. 닌텐도로서는 속이 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 법원이 왜 닌텐도측이 아닌 불법복제 진영의 손을 들어줬을까.

 

프랑스 법원은 “아마추어 게임의 합법적 플레이를 지원하는 R4에 대한 판매금지는 정당성이 부족하다”며 “닌텐도는 독립 게임 개발자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게임 개발자들이 자작물을 닌텐도DS를 통해 테스트할 수 있도록 대승적 차원에서 개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나라 법원에서는 지난해 7월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에 근거해 R4 등 불법복제칩의 판매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제30조 제2항의 “누구든지 상당히 기술적 보호조치를 무력화하는 기기, 장치, 부품 등을 제조 혹은 수입하거나 공중에게 양도, 대여 또는 유통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는 프로그램 보호를 위해 R4를 불법물로 간주했지만 프랑스는 아마추어 개발자들을 위해 이를 용인해 줬다. 여기서 어느 판결이 옳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아직도 법리적으로 논쟁거리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프랑스가 R4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무엇인가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한국은 컴퓨터프로그램을 보호하기 위해 폐쇄적인 정책을 택한 반면 유럽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컴퓨터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한다는 입장을 택했다.

 

지금 세계 IT 시장은 개방이라는 트렌드로 급진전하고 있다. 플랫폼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으며 구글의 안드로이드 등  개방형 OS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닌텐도 만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폐쇄정책을 고집스럽게 지켜오고 있다. 닌텐도와 비슷할 정도로 폐쇄적인 곳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애플이다. 애플은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정식 소프트웨어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도록 운영체계를 막아놓았다. 그런데 아이폰이 나오자 마자 전세계의 해커들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장벽을 뚫어버렸다.

 

지금도 막고 또다시 뚫는 전쟁이 반복되고 있지만 애플은 닌텐도와는 다르게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관대하다. 그래서 아이폰이나 아이팟터치 등을 구매한 사용자들은 자유롭게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위해 해킹을 해 버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애플은 그들과 싸우기 보다는 공존을 택한 것이다. 정식 프로그램이 커버할 수 없는 영역을 불법 프로그램이 채워준다면 이들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인 하드웨어는 당연히 잘 팔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정품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고집할 경우 소비자들은 폐쇄된 공간에서 숨이 막히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사용자들은 닌텐도가 강요하는 제품만을 사야 했다. 이로 인해 닌텐도는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팔아 엄청난 수익을 올려 왔다.

 

최근 닌텐도가 판매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사용자들이 즐길만한 재미있는 콘텐츠가 줄어든 것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개발자들이 아무리 공을 들여도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아마추어를 당할수 없는 경우도 많다. 게임이 바로 그런 경우다. 빅 히트를 친 게임은 과거와 유사한 작품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시장을 개척한 작품들이었다는 것을 닌텐도는 다시한번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폐쇄에서 개방으로 도도히 흐르는 물결을 거스른다면 당장은 버틸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그 물결에 휩쓸려 자취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숱하게 증명돼 왔다는 것이다.

 

[김병억 부국장 bekim@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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