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초원에서 늑대를 만난 사람은 대부분 넋을 잃어버린다. 나는 1998년 8월 볼간 아이막이라는 몽골 북부의 타이가 지역에서 늑대를 만났다. 늑대는 단 한 마리였다. 회백색 털이 백금처럼 빛나는 늑대의 무서운 눈빛과 마주한 순간 나는 난생 처음 ‘살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말 그대로 극한의 공포감 때문에 생명이 끊어지고 영혼이 떠나간 듯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만약 내가 지프차에 타고 있지 않았다면, 손에 칼리시니코프 AK 소총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할 것이다. 타트, 타트.(쏘세요, 쏴요)하고 몽골군 소령의 목소리가 내 정신을 붙잡아주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선물한 한국 남자에게 베이커 미 국무장관이 다녀간 곰 사냥 코스를 구경시켜 주려고 직접 운전대를 잡은 인근 군부대 부대장이었다. 그와 동시에 쇠 냄새를 맡은 늑대는 재빨리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멀어져 가는 늑대를 향해 덜덜덜 떨면서 겨우 한 발을 쏠 수 있었다.

 

우리 지프차는 1시간 넘게 늑대를 쫓았고 늑대는 달아났다. 결론만 말하면 나는 탄창 8개를 허비하는 ‘삽질’ 끝에 늑대를 죽였다. 몽골군 소령은 대한민국 공군 출신의 형편 없는 사격 실력에 대해 하루 종일 투덜거렸다.

 

수년 전 처음 한국의 게임 개발자들을 만났을 때 나는 몽골초원에서 만났던 늑대를 떠올렸다. 60∼70 킬로미터를 계속 달아나면서도 끝까지 생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던 강인함. 지혜와 용기. 지프에서 내리기만 하면 바로 몸을 돌려 달려들고 발포하면 재빨리 후퇴하던 놀라운 재능. 그런 위대한 존재의 모습을 나는 한국의 게임 개발자들에게서 보았다.

 

그 시절 한국의 게임 개발자들은 반지하 스튜디오의 습기를 막기 위해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누렇게 때가 낀 냄비에 휴대용 가스 버너로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도 눈빛이 살기등등하게 송곳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운 게임을 만들겠다는 창조적 도전의 눈빛이었다.

 

늑대의 본질은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황야를 가로지르는 데 있다. 자신이 스스로 목적을 설정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 생명을 불태운다. 나는 가로지른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노마드(Nomade)의 혼과 기백이 사라지면 그는 더 이상 늑대가 아니라 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회사의 규모들이 커지고 게임을 보는 사회적 인식들도 개선되면서 나는 게임 개발자들에게서 이런 눈빛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만들어진 시장에 앉아 한숨을 돌리고 성공을 자축하고 있었다. 젊은 게임 개발자들에게서 연봉 자랑을 듣고 회사 자랑을 들을 때마다 나는 거미의 눈빛을 떠올린다.

 

거미는 앉은 자리에서 거미집을 짓는 것 외에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한 자리에 붙어서 날아오는 사냥감을 잡아 먹다가 늙으면 허옇게 말라 죽는다. 여건과 환경이 허락하는 대로 살아간다. 고만고만한 게임들을 고만고만하게 만들고 먹이를 먹는다. 그 현실 안주의 표정 앞에 나는 우울한 진실을 생각하고 가슴이 아파진다. 늑대가 도약하면 모든 거미줄은 사라진다.

 


이인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lyouc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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