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에서 뻣뻣하기로 소문난 문화부 신재민 차관이 큰 선물을 주었다. 아마도 내가 기억하기로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최근 신 차관은 출입기자단과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신 차관은 “정부의 게임 산업에 대한 정책의 기본 방향을 규제보다는 진흥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 차관은 심의 문제 등에 있어 산업계 자율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마도 게임 산업에 대해 관심이 없는 기자라면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밥먹으면 배부른 소리쯤으로 흘려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산업을 둘러싼 그동안의 상황과 최근의 정황을 알고 있는 기자라면 신 차관의 이날 발언에서 상당한 중량감을 느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신 차관의 이날 발언은 2006년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게임 산업에 씌워진 사행성의 멍예를 벗겨주겠다는 공식 선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총리실이 사행성 게임과 전쟁을 선포한지 3년만에 게임은 신 차관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나라 문화산업중 가장 규모가 크며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이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을 수 있는 산업”임을 공인받은 셈이다.

 

이어 신 차관은 산업계에 선물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각종 규제를 단계적으로 산업계 자율에 맡길 것이며, 이를 논의하기 위해 상시협의체를 운영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결정적으로 신 차관은 산업계에 ‘자율’을 돌려줬다.

 

신 차관은 게임에서 사행성의 꼬리표를 떼어 내는 동시에 업계 자율이라는 숙원을 모두 들어 준 것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쳐야하지만 웬지 찜찜했다. 원론이야 산업계의 ‘불감청(不敢請) 고소원(固所願)’을 모두 들어준만큼 환영해야 하지만 각론에서 걸리는 것이 많다.  무엇보다 신 차관이 산업계 자율을 이야기하면서 월간결제금액한도를 예로 든 것이 걸린다.

 

신 차관은 “지금처럼 월결제액을 제한하는 것 보다는 업계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인의 경우 결제금액에 대해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 법으로 이를 규제하는 것은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온라인 게임의 월간 결제한도는 청소년 보호와 사행성이라는 두 가지 이슈가 잠재해 있다. ‘바다이야기’ 사태를 불러온 경품 한도에도 비견될 수 있다. 월간결제한도를 업계 자율에 맡기겠다는 신 차관의 한 마디는 가히 메가톤급의 파괴력을 갖을 수 있는 발언이다. 그동안 정부가 눈을 부릅뜨고 감독했던 사행성 규제를 산업계 자율에 맡기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신 차관 발언 전체를 해석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업계, 학계, 문화부 주요 인사등이 모여 규제 개혁 방안을 논의하는 위킹그룹을 만들었고 그 첫번째로 오픈마켓 심의와 결제한도 등에 대해 논의했으며 그 결과를 소개한 것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烏飛梨落일지 모르겠지만 신 차관이 산업계의 숙원인 ‘자율’을 돌려 주면서 시민단체나 학부모 단체로부터 가장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문제를 예로 들은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산업계 내부로부터도 본말이 전도됐다는 오해를 살수도 있다. 물론 규제개혁 워킹그룹이 앞으로 얼마나 활성화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겠지만 만약 일회성에 그친다면 몇몇 메이저들의 민원인 월간 결제한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 차관이 나섰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몇몇 메이저 게임 포털업체들의 고민거리인 월간결제한도를 전체 산업계의 숙원인 자율로 포장해 신 차관과 워킹그룹이 들러리를 쓴 꼴이 된다.

 

물론 나의 이런 생각이 杞憂일수도 있다. 앞으로 워킹그룹이 제역할을 하면서 산업계 전체에 도움이 되는 자율 규제방안을 하나씩 내놓으면 된다. 그래서 하는말인데 다음번 2차 워킹그룹회의 때에는 산학관만이 모일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와 학부모 대표도 참석시키는 것이 좋을 듯하다. 또한 정작 규제 때문에 산업계 자체가 枯死상태에 이른 아케이드 분야의 규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도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더게임스 이창희 산업부장  changhlee@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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