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게임의 산업적 가치를  강조한다. 게임은 성장 산업이고 미래 산업이며 한국 문화 콘텐츠의 효자 산업이고 한국 온라인 게임은 세계 시장에서 강한 산업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순수한 산업적 관점에서 게임은 세계 시장 규모가 100조원도 안되는 비주류 산업이다. 시장 규모 자체가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는 왠만한 다국적 기업 한 개의 1년 매출액보다도 적다. 이런 비중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게임의 중요성은  다른 산업과 달리 개인에게 문화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에 있다. 한 사람이 인생의 험한 산봉우리를 넘으며 힘들어할 때, 고뇌하고 좌절하고 사랑할 때 게임은 그런 개인의 곁에서 그를 달래고 위로한다. 나아가 게임은 사용자가 직접 참여하는 체험의 형태로 한 개인에게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인생의 의미를 가르쳐준다.

 

오늘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 직장을 잃은 젊은이들이 PC방에 앉아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한다. 캐릭터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젊은이들은 얼라이언스 연합과 호드 연합의 우주적 전쟁이 벌어지는 거대한 허구적 세계에 압도되어 무자비한 상호 파괴의 스릴에 골몰하기도 한다.

 

그러나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세계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문화적 가치를 이해하게 한다. 젊은이들은 대족장 스랄이 어떻게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결심하게 되었고 호드 연합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고난을 겪었으며 오그림 둠해머가 얼마나 고귀한 동료애를 발휘했는지를 알게 된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젊은이들에게 글로벌 경쟁이 가속화되는 이 살벌한 세상에서 명예와 용기를 지닌 전사로서 살아가는 일의 중요함, 조직에 대한 헌신의 중요함, 고귀한 동료애의 중요함이라는 문화적 가치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게임을 산업, 즉 대박을 내어 돈을 벌어다 주는 수단으로 이해할 뿐 그것이 문화라는 사실을 무시해왔다. 그 결과 한국의 게임은 문화적 가치의 측면, 즉 한 시대의 집단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세계 해석이라는 측면에서 아직도 수준 이하의 바닥을 헤매고 있다. 

 

장르와 상업적 성공에서 ‘월드오브워크래프트’와  비견될 수 있는 한국의 온라인 게임인 ‘아이온’은 어떠한 문화적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는가. ‘아이온’은 사용자들이 마족과 천족이라는 종족(Faction)으로 나뉘어 각기 자기 종족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스토리를 가진 온라인 게임이다.

 

스토리란 현실 사회에서는 해결불가능한 행위와 가치의 모순을 상상력을 통해 종합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집단 무의식의 산물이다. 한정된 자원인 오드의 소유권을 놓고 천족과 마족이 벌이는 치열한 전투의 ‘행위’들은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 못지 않게 훌륭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이온’이 제시하는 ‘가치’는 참혹할 정도로 빈약하다. ‘아이온’을 통해 온라인 게임의 사용자 스토리텔링에 대한 필드 리서치를 하고 있는 필자는 랭커, 즉 최상위 0.01%의 유저이다. ‘아이온’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2009년 7월 29일 현재 필자는 아스펠 서버의 플레이어 개인 랭킹 21위이며 이화여자대학교 레기온의 군단장으로 지금까지의 PVP대결에서 1만1634명의 천족 사용자를 죽인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아이온’은  필자처럼 깊이 게임을 한 유저에게조차도 내가 왜 천족과 싸워야 하는지, 나의 행위가 만나게 되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배경 스토리는 지극히 정형적이며, 캐릭터 스토리는 앙상하고 퀘스트는 상투적이다.

 

이와 같은 문화적 가치의 부재는 한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온라인 게임 전체의 약점이며, 게임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무지와 편견이 빚어낸 약점이다. 우리는 게임의 산업적 가치가 아니라 문화적 가치를 이해하고 추구해야 한다. 이제 한국 게임산업의 화두는 매출액이 아니라 의미가 되어야 한다.

 

 

이인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lyouc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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