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그래픽 머드게임인 ‘바람의 나라’가 태어난 이후, 우리 산업에 ‘온라인 종주국’이라는 용어가 따라붙었다. 급성장하는 IT산업을 배경으로 게임산업은 ‘리니지’ ‘오디션’ ‘라그나로크’ ‘팡야’ ‘아이온’ 등과 같은 완성도 높은 글로벌 작품들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온라인 게임의 강국이라는 칭호도 덤으로 따라다녔다.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던 게임산업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자긍심을 불어넣어 주기에 충분했고, 2000년대 중반을 전후하여 온라인게임 제작 붐이 일어났다.

 

그러나 대다수의 개발된 게임들이 창의적인 작품과는 거리가 멀었다. 작품이 출시될 때마다 우리 업계는 화려한 그래픽, 타격감, 사운드만으로 플레이어들을 현혹시키기에 바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단순모방에 그쳐버린 작품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한 작품들에서는 주제의식의 결핍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창의력을 수반한 서사의 부재가 역력했다. NPC를 비롯한 몬스터들의 단순성, 서사적 사건의 빈약성, 세계관의 모호성, 메인 스토리와 화합하지 못하는 반복적 퀘스트의 노동성, 메인 스토리에 녹아들지 못하는 아이템 등의 문제들은 비단 개발사들의 문제뿐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게임산업의 전체적인 위기를 불러왔다. 종주국이니 강국이니 하는 용어들이 공허해지는 상황들이 전개되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미 유저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많은 게임들이 해외에서 새로운 삶을 열고 있다는 것이다. 반가운 일이다. 게임분야 후발국가들의 유저들은 저사양의 컴퓨터에서 게임이 그저 돌아가기만 해도 즐겁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컴퓨터가 더 좋아지고, 게임을 대하는 유저들의 안목이 우리나라의 유저들만큼 높아진다면, 그때도 우리의 게임을 선호할까.

 

지금 대한민국의 게임산업이 세계 3대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은 스토리텔링이 제대로 된 한국형 킬러콘텐츠를 탄생시키는 일이다. 정부의 뚝심 있는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도 우선은 창의적인 양질의 콘텐츠를 위해 기업들이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할 수 있는 개발사의 마음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단기간의 수익에 집착하기 보단 생명력이 긴 작품을 위해 유능한 스토리텔러를 영입하여 서사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종주국으로서,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살려 나갈 수 있다.

 

이재홍 서강대 게임교육원 교수 munsarang@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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