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게임스] 2004년 3월초, 그해 그 날도 어깨를 움츠릴 만큼 추웠다. 동장군이 자리를 물려주고 떠났어도 한참돼야 할 판에 계속 남아서 그렇게 심술을 부렸다. 나라 안팎으로는 IMF 졸업 이후 한국경제가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봄날의 심술한파처럼 체감 온도는 IMF 때 보다 더했다. 봄이 아닌 겨울이었고 그 추위는 한겨울의 그 것이었다. ‘더게임스’는 그때 태어났다.


그래도 열린 가슴과 하고자 하는 열정은 대단했다. 창간 예비호를 내고 9일 비로소 ‘더게임스’창간호를 발행 했을때의 그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티핑포인트’의 저자 말콤 그래드웰은 자신의 저서 ‘아웃 라이어’를 통해 성공하려면  1만시간 이상을 자신에게 투자해야 한다고 했던가. 그의 이같은 지적은 어떤 일이든 선수가 돼야 성공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더게임스’의 주요 스텝들은 10여년 이상을 산업전선에서 살아온 현장 기자 출신들이었다. 말 그대로 글발도 있고,글발이 있으면 사람 냄새가 안난다고 하는데 사람됨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산업계 현장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2009년 3월 ‘더게임스’는 그렇게  5개의 성상을 쌓았다.


5년의 세월은 인고의 고통, 바로 그 날들의 연속이었다. ‘더게임스’는 창간사에서 신명나는 게임문화를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개인의 지평을 열고 산업의 외연을 넓혀야 비로소 문화가 융성해 질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콘텐츠의 풍요로움에 고민했고 게임산업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다녔다. 천편 일률적인 규제보다는 점진적인 개혁을, 몰 개성적인 획일성보다는 컬러풀한 다양성을 주창해 왔다.


그 틈바구니 사이로 ‘바다이야기’란 오락 기기가 출현해 시장을 흙탕물로 만들어 버렸다. 산업 외연을 넓히기 위해 나팔을 불어도 시원찮을 판에 그들의 뒤치닥거리에 시간을 소일하고 말았다. 그 다음 수순은 업계의 추스림이었는데 말처럼 쉽지 않았다. 정부마저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등  뒷짐만 지고있는 판이었다. ‘바다이야기’사태는 어떻게 해서든 막았어야 옳았다. 그들과 맞짱을 떠서라도 걸러내야 했다. 그런데 그걸 못했다.


변명 같지만 본지는 수차례의 기획기사 등을 통해 그들의 행태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우리의 주장은 먹혀들지 않았다.큰 목소리로 외쳐 댔지만 세상으로 공명되는 소리는 작고 초라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옹알이를 하는 것이라는 듯 비웃음만 메아리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몇달후 게임계는 끝내 ‘바다이야기’ 사태를 맞고 말았다. 


그래도 살만한 게 세상이다. 솔직히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신명나는 일도 많았다. 캐주얼 게임 ‘카트라이더’가 국민적 게임으로 자리매김한 일과  6전7기의 주인공 김기영사장이 ‘오디션’으로 기염을 토한 일, 그리고 외산일변도인 FPS(1인칭대전게임)시장에서 새 장을 연 게임하이의 김건일사장과 드래곤플라이의 박철우 사장의 쾌거가 바로 그 것이었다. 특히 10억달러의 수출로 산업계의 자긍심을 한껏 높여준 4만여 게임전사들의 활약상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었다.


‘더게임스’는 그동안  말콤 글래드웰의 말처럼 ‘선수’가 되기 위한 필요 충분 조건인 1만시간 이상의 학습량을 채웠다. 아니 그 이상이다. 단순히 계산하면 4만3800시간을 게임만 바라보고 생각하고 고민해 왔다.


독자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약속하고자 한다. 이 순간 이후부터 ‘더게임스’는 진짜 ‘선수’가 될 것이라는 다짐이다. 그리하여 두번다시 ‘바다이야기’사태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청지기 노릇을 더 잘하고자 한다.

 

또 산업을 육성하고 게임 문화의 지평을 여는데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 임을 천명한다.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경제가, 대한민국 문화가 더 풍요롭고 더 기름지도록 목탁의 소리를 더 높여 나갈 것임을 밝혀둔다. 그게 독자 여러분이 베풀어준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이젠 진짜 ‘선수’가 되고자 한다.

 

 모인 편집국장 inmo@thegames.co.kr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