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김기만 전 위원장의 사퇴 이후 분위기가 어수선한 게임물등급위원회(게임위)가 여러 악재로 인해 신년 벽두부터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위기에 놓였다. 당장에 공석인 위원장 자리를 채우는 일부터 뭔가 쉽사리 풀리지 않는 모습이다.

 

위원 중에서 호선을 하는 절차상 새 위원을 뽑아야하는데다가, 개각 등 정치적 문제와 연결돼 있어 일정이 계속 지연되는 양상이다. 게임위측은 “남미영 부위원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 별다른 파행(跛行)없이 정상 가동중”이라고 강조하지만, “선장없는 배가 순항한다”는 말에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처리 기한이 15일인 등급 분류 신청을 무려 1년10개월 동안 질질 끌었다가 아케이드게임사인 H사가 제기한 ‘게임물 등급분류 처분 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에서 최근 패소했다.

 

게임위는 앞으로 이와 유사한 형태의 줄소송에 휘말릴 것이 불보듯 뻔하다. 여기에 다음달부터 심의 수수료를 최대 10배 이상 인상한다는 방침을 천명, 영세한 중소 게임 개발사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정부 지원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게임위가 그 책임을 힘없는 중소업체에 비용을 전가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게임산업진흥법 제16조1항에 근거, 게임위의 1차적인 존재 이유는 “게임물의 윤리성 및 공공성을 확보하고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이 늘 강조해 왔듯이 게임위의 또다른 존재 이유는 관련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법 조항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지만, 게임위가 지향해야할 근본적인 정체성은 규제와 진흥의 밸런스로부터 시작한다고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 게임위의 총체적인 위기는 자칫 게임위가 균형감을 잃는 결정적 계기가 되지 않을 까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비온 뒤에는 오히려 땅이 굳는 법이다. 비에 젖은 땅이 제대로 굳을 수 있도록 정부와 관계 기관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초대 위원장부터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뒤 표류하고 있는 게임위가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보다 성숙한 기관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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