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역사·물리·수학·생물 등 모든 학문에 해박한 지식 필요

모방이라도 '정체성' '전문성' 확립이 중요…상업·창조 둘 다 잡는 게 ‘과제’


 ‘최고의 게임 아티스트’. 이는 모든 아티스트가 바라는 꿈이자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게임 아티스트가 되기 위한 조건은 분명 무척 다양할 것이고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도 존재할 것이다. 또 모든 일이 그렇듯이 그 과정은 매우 길고 험난하다. 필자 또한 최고의 게임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길을 걸어갈 뿐 여전히 그 길에서 정답을 찾기란 요원하고 스스로도 최고가 됐다고 자부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10여년간 아티스트로서 살아왔고 그동안 최고의 게임 아티스트가 되기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했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다소 개인적인 주장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해 본다.

 


◆ 잘 쉬는 게 일 만큼 중요
 처음 시작부터 ‘쉬는 이야기’를 하면 의구심을 갖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것 만큼이나 잘 쉬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자신이 프리랜서가 아니라면 일주일에 며칠을 근무하든 일년에 휴일이 며칠이 주어지든 회사에 속한 이들에겐 일하는 날보다는 쉬는 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 계속 걷기 위한 휴식
 게임 아티스트로서 첫 발을 내딛는 순간 평생 짊어져야 할 난제가 있다. ‘평생 손은 눈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아무리 밤을 새며 열심히 자신의 손의 표현력을 향상시켜나간다 한들 자신의 눈은 그보다 훨씬 높아져 있기 마련이다. 다소 울적한 이야기지만 이는 아티스트가 짊어질 숙명과도 같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런 과정은 스스로가 충분히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기 때문이다. 설령 이런 기분을 느끼기 힘들지라도 제작한 작품의 수가 늘어나고 작품의 퀄리티가 향상될 수록 점차 손이 표현하는 능력과 눈이 평가하는 기준의 차이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이게 반복되면 언젠가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뒤돌아봐도 아티스트로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짧지 않은 여정 동안 지치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적절한 휴식’이다.


 지난 2000년 처음 게임회사에 입사했을 당시 게임 그래픽이라는 분야는 필자에게도 조금은 생소했고 경험도 전무했다.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극히 단순한 작업이면서 양적으로는 매우 많은 것들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야근을 했고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처럼 몸이 지쳐가는 와중에도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필자보다 좋은 실력을 가진 선배들의 작업물과 이를 따라가겠다는 의지였다. 하루라도 빨리 실력을 키워야 겠다는 강박관념이 매우 컸던 것이다. 덕분에 기술적인 능력은 좀 더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신을 채찍질 한 결과는 매우 나빠진 건강상태였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는 말로 위안을 삼기도 했지만 앞으로 갈길이 더 많은 시점에서 몸이 너무 일찍 지쳐버린 것은 큰 문제였다. 다시 예전과 같이 회복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밑거름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 많은 일들에 치여서 살기보단 자신을 좀 더 컨트롤하며 극복해 나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분명 실력적인 면에서는 좀 더 더디게 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휴식을 갖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게 된 이유는 아티스트에게 있어 휴식이란 단순한 휴가로써 지친 몸을 추스리는 것 외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티스트의 휴식은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생각을 통해 보다 창조적이고 동시에 생산적인 갖가지 시도와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물론 많은 아티스트들이 회사에 소속돼 자신이 맡은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휴식이란 참으로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필자 역시 과거에도 그랬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현재도 쉬고 싶을 때 쉬는 것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는 것’이 자신과 회사를 위한 것이라면 ‘휴식’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라도 실제 업무보다 더 필요한 시간으로 떼어 실천하는 것이 좋다. 필자 역시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 개인은 물론 회사에도 이득
 ‘휴식’의 의미와 방법은 모든 이들에게 있어 각기 다르다. 어떤 이는 부족한 잠을 해소하기 위해 수면을 취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한다.

 

 또 다른 이는 스포츠, 게임, 여행 등 취미생활을 영위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활동은 각 개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최근 업계는 환경이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져 과거처럼 중소업체에서 아예 개발자들을 위해 따로 사내에 침소를 마련해주는 사례는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개발자의 미덕은 ‘밤 새며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듯 하다. 물론 급박한 개발 일정 때문에 그렇게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납득이 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가능한 그렇게 일하지 않는 것이 개발자는 물론 회사 차원에서도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창의력(Creativity, 혹은 창조력)’이 중요시되는 아티스트에게 자신을 돌아보고 보다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은 회사가 개인에게 기대하는 작업의 능률과 퀄리티를 더욱 향상 시켜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티스트 본인 스스로도 이런 환경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전제돼야 할 것이다.

 

◆ 많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라
 한때 중세유럽을 배경으로 한 MMORPG가 유행을 했던 적이 있다. 현실적으로 비주얼 아티스트는 트렌드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당시 각종 온라인 포럼의 아트 갤러리에는 심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중세유럽풍 이미지로만 가득차 있었다.

 

 이것이 나쁘다고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아티스트 본인의 창조적 욕구에 대한 범위를 스스로 좁게 만들고 제한하려는 경향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 창조력은 세상 모든 것에서
 ‘창조력(creativity)’이란 세상 모든 대상으로부터 아이디어를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 사회, 정치, 물리, 생물, 지구, 수학 등 모든 학문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해박한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보다 논리적이고 설득력있는 창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아티스트가 일을 하면서 접하게 되는 각종 자료를 통해 자연적스럽게 지식을 쌓게 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는 지식을 쌓았다고 보기 어렵다. 모든 세상의 학문은 오랜 시간을 거쳐 논리적이고도 유기적으로 발전해 왔다.

 

 고대를 지나 중세를 거쳐 근대·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인 크고 작은 사건들은 독립적인 하나의 인과관계에서 발생했다기 보단 당시의 여러 환경이 연계된 복합적인 현상이다. 이는 수많은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모티브가 된 역사를 살펴봤을 때도 알 수 있다. 그 인과관계는 얼마나 살아움직이는 듯 생생하고 흥미진진한가.

 

 굳이 역사가 아닐지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자연적, 인공적 풍경들을 깊게 관찰하면 사람, 길, 건물, 자동차, 산, 하늘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에서조차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 쉬면서 고민하는 시간
 세상은 과거와 현재의 누군가가 수많은 생각과 구체적인 설계를 통해 구축해 놓은 완성물들의 집합체다. 실제로 혹은 자료로 남아있는 것들의 표면적인 모습에 집착하기 보단 그것이 왜 그런 형태로 밖에 나올 수 없었는지, 왜 그런 구조를 갖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이 과정을 반복한다면 ‘창조력’은 보다 더 설득력있고 강해지게 된다. 과학적 논리는 보다 창조적인 대상을 만드는 가장 강력한 지식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아티스트일수록 자리에서 열심히 모니터를 보고 작업에만 열중하기 보다는 적절한 휴식을 통해 다양한 바깥 세상을 경험하고 생각의 틀을 넓혀 가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개인적인 여건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서적이나 미디어를 많이 접해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가능한 직접 경험해 보고 생각의 틀을 바꿔가려는 노력을 할때 아티스트의 머리와 손은 무궁무진한 ‘창조력’이 살아 숨쉬는 보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휴식을 통해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 창조적·상업적인 아트워크
 창조적이면서 또 상업적으로 성공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은 모든 게임 아티스트가 지향하는 목표일 것다. 필자 역시 그러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그 목표가 더 어렵게 느껴지곤 한다.

 

 처음 게임 아티스트의 세계에 발을 내딛었을 때는 열정과 젊은 혈기로 인해 그 목표가 그리 멀지 않다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웃음이 나올 뿐이다. 이는 창조적이면서도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의 사례는 있지만 실제로 창조적이면서 동시에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작품은 어떤 것이다라는 명확한 기준도 정의도 없고 필자 또한 목표에 도달하기엔 한참 멀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 모방에 대한 입장 정리 필요 
 아주 오래전 일이다.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그 안에 들어갈 콘텐츠를 제작하게 됐다. 문제는 콘텐츠를 집어 넣는 것은 결정이 됐는데 이와관련해 내부 의견차이가 심해 컨셉트의 방향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누군가는 과거의 성공을 통해 검증된 외산 작품 하나를 제시하면서 작품성과 비주얼을 이런식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당시 회사의 좋지 않았던 대내외적인 여건으로 인해 이런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전혀 갖지 못하고 누군가의 작품 스타일을 모방(copy)해야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가슴 아팠던 일이기도 했다. 온라인 게임의 유지 보수 측면이 아닌 이제 처음 탄생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방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당시에는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얼마든지 자신의 노력에 따라 자신만의 전공(specilty)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성립시킬 수 있는 작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개발 프로세스 상에서 거쳐야 하는 수많은 검증 단계를 축소 혹은 간소화 시켜 업무 효율을 늘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몸부림 쳤었다.

 

△ 자신의 선택 문제
 아티스트에게 있어 자신이 창작한 작품이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경우 도대체 ‘진정한 상업적 가치’를 가진 아트워크는 무엇인지 혼란을 겪게된다. 더욱이 최선을 다해 제작한 결과물이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되면 어떤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해야 할지 판단조차 하기 힘들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런 것이 상업적인 가치를 가진 아트워크’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모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작품의 아트워크를 살펴보면 분명 일관됨이 없는 다양한 사례가 존재한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결국 ‘상업적인 가치’를 가진 아트워크란 무엇일까.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면 가장 먼저는 아티스트 본인이 만족하고 주변 동료가 만족하고 다시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인물이 만족하는 작품이다. 물론 이는 가능성을 높인 것일 뿐 최종적인 결론를 내놓는 것은 외부의 수많은 유저의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은 아티스트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비록 모방일지라도 자신의 개인적 역량으로 발전시켜 전공(Specialty)과 정체성(Identity)을 확립해 나갈 수 있다면 어떤 프로젝트에서도 충분히 가치를 지닌 인물이 될 수 있고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을 것이다.

 

rax74@naver.com

 

 

| 이종현 NHN 시니어 아티스트 |

2D 그래픽 아트의 최고전문가

 

 이종현 NHN 시니어 아티스트는 지난 2000년부터 온라인 게임업계에 발을 내딛어 2D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해 왔다.

 

 ‘노리텔’ ‘포레스티아 이야기’ ‘다크스토리 온라인’ 등의 컨셉트 디자이너로 활동했으며 ‘마구마구’의 캐릭터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현재는 NHN의 시니어 아티스트로서 한게임 전반에 걸쳐 컨셉트 디자인과 게임이미지소스 제작,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등 포괄적인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2000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학과 졸업
2000년 아라아이디씨 도트 컨셉트 디자이너
2003년 디지털어베뉴엔터테인먼트 메인컨셉트 디자이너.
2004년 애니파크 컨셉트 일러스트레이터
2005년 NHN GUI 아티스트 및 컨셉트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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